고도의 기술이 그려내는 아름다움
글 손준호 _ 도예가
작년 여주 국제도예 워크샵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반가움과 설레임이 교차하였다.전통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명제 하에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지만 우리의 도예 현실은 아직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고 그 중에서도 이중투각백자는 좀처럼 찾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투각백자는 파손율도 높고 오랜 기간의 숙련이 필요하기에 남다른 ‘장인정신’을 가지고 접근하지 않으면 작품으로 완성해 내기가 어렵다는 점도 많이 접할 수 없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전성근은 밑그림을 거치지 않고 바로 문양이나 그림을 조각하고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구도를 잡아 나간다. 마치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거와 같다. 복잡하고 반복적인 전통 문양이 그의 손에서는 쉽게 투각되고 좌청룡, 우백호는 한국인의 기개를 새삼 느끼게 해주며, 동백, 목단, 매화문 등은 조각도로 이루어지는 고도의 테크닉을 그 부드러운 선으로 따뜻하게 감싸 기교만 보이는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또한 거기에서 나타나는 선과 입체에서 나오는 명암은 개개의 요소들을 현존하는 자연의 생명으로 느끼게 해준다. 그는 평면에서 깍고 투각할 뿐 흙을 덧붙여 묘사하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구도를 잡은 후에 하나 하나 조각을 하면서 부조적 양감으로 표현한다. 빛의 강약에 따라서 백자의 백색이 가지는 오묘한 색상의 변화는 각도에 따른 양감의 시각적 변화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느끼게 해준다.
그가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점은 그의 투각과정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진행되며, 단순히 기술적인 면을 보여 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림과 문양에 나타나는 선들이 그만의 감성을 갖기 때문이다. 치밀하고 정교한 기교는 자칫 잘못하면 감성의 단절을 가져 오고 작품의 내용과 의미를 방해 하기 쉬우나 그의 작품에서는 그러한 고난도의 테크닉이 뒤로 조용히 숨어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 문양들을 효과적으로 부각시켜준다.
창작과 모방의 경계도 모호하게 구분되고 현대적인 도조의 작품이 진정한 창작품 인양 인식되는 현시점에서 시류에 얽매이지 않고 전성근 처럼 묵묵히 자신의 길을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나가는 작가는 흔치 않다. 또한 국제화된 현대에서는 어떠한 작품이 더 국제적 경쟁력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많은 작가들이 해외에서 전시도 하고 각종 국제워크샵에도 참가를 하며, 한국 도예가의 숫자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결코 적지 않은 현실에서도 아직 해외에 알려지고 경쟁력 있는 작가는 많지가 않다.
따라서 앞으로 있을 그의 해외 전시가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를 살펴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국제 시장에서는 모호한 도조 작품 보다는 전성근과 같이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접근해 나가는 작가에 대해 더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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