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알 속의 시대정신
글 김재용 _ 원광대학교 국문과 교수
작가 한봉림은 식민 시대 후 좌우익의 이념대립이 격심했던 시대에 태어나, 유년시절에 비극적 한국전쟁과 가난을 경험했으며, 젊은 시절에는 오랫동안 한국의 근대사를 짓눌렀던 정치적 억압 구조와 부딪히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고난의 주름살이 깊게 패인 현실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원칙과 예술을 지켰다. 투쟁이 요구될 때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나아갔으며, 냉정함이 필요할 때는 인내할 줄도 알았다. 단호하고도 유연한 삶의 진행 방식은 그의 예술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예술이 시대정신을 구현한다는 것은 괴테의 말이다. 그런데 그 시대는 한 예술가가 살아간 구체적이고 재현적인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에서 이어온 현재, 미래로 나아갈 단계로서의 현재가 가져야 할 가장 최상의 정신이며 가치가 바로 괴테적 시대정신이다. 그런 점에서 한봉림 교수의 「뿔」과 「알」은 오늘을 표상하는 시대정신의 백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격변의 시대가 지나면서 한봉림 교수는 「알」이라는 새로운 표현 양식을 선보였다.
얼핏 보기에 날카로운 뿔과 부드러운 곡선의 알은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내적인 의미체계에 있어 둘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알은 뿔보다 더 근원적이며 우주론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 신화학에는 우주란(cosmic egg)의 개념이 있다.
최초의 우주가, 최초의 인간이, 그리고 최초의 생명이 알에서 기원했음을 뜻하는 이 관념은 특히 동아시아의 제 민족들 신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알에는 약동하는 생명력이 숨쉬고 있는 것이다. 그 생명력은 알의 깨어짐에서 실현된다.
한봉림 교수의 알은 깨어져 있다. 갇혀있고, 정체되어 있으며, 나아가 구체적 형상을 얻지 못한 생명은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이 아닌 것이다. 구체적인 형상을 받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그 생명은 힘을 갖는다. 깨어진 알은 여성성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그럴경우 성적 결합에 따른 풍요의 의미가 그 깨어진 알에 끼쳐져 있다. 남녀 양성의 성적인 결합과 탄생 그리고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힘으로 이어지는 의미론적 층위가 ‘깨어진 알의 신화론’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주의를 기울여 보면, 알의 표면에 상감의 기법으로 새겨진 문양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혹시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문명이 한 쪽으로만 극단적으로 나아갈 때 발생할 부정적 국면을 치유하기 위해 원시성이 회복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는 지금 알의 신화를 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깨어진 알속의 어둠을 응시하며 원시적 사유의 건강함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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