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전신연 _ 도예가
스미소니언 쇼는 수십 년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수천 명의 워싱턴 지역의 사람들을 흥분시켜온 행사로서, 해가 갈수록 더욱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쇼이다. 최근에는 명실공히 미국 전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심사의전시회로 알려져 있으며, 당대 최고의 미국 공예품 판매장으로 지속적인 명성을 쌓아 오고 있다. 올해는 이 공예 쇼의 공동 회장에 신시아 레딕(Cynthia Redick)과 헬렌 가렛(Helen Garrett)이 선출되었으며, 명예 회장으로는 핀란드 대사인 쥬카 빌타사리(Jukka Valtasaari)와 그의 부인인 에텔(Etel Valtasaari)이 추대되었다. 이 공예쇼는 스미소니언 여성위원회의 자원 봉사자의 수고와 헌신적인 노력으로 진행된다. 여성위원회 회원들은 매년 이 쇼에 참가하는 작가들과 관객들의 편의를 돌보아준다.
올해로 22회를 맞는 스미소니언 공예쇼는 지난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워싱턴 DC, 내셔널 빌딩 박물관에서 개최되었고, 4월 21일에는 전야제 행사가 있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진행된 전야제는 입장료만도 125달러였지만, 참석자에게는 일반 관객들보다 우선해 그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미리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인기를 모았다. 참고로 일반 관객의 입장료는 12달러였다. 올해에도 예외 없이 도자기를 비롯해 베스케터리(바구니 공예) 장식적인섬유 가구 유리 보석 가죽 금속 믹스미디어 종이 의복 나무 등 모든 분야의 공예 작품이 전시되었다. 웅장한 국립 빌딩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의 다채로운 색상과 다양한 전시 스타일은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 1>
명예회장으로 추대된 핀란드 대사 부부는 인사말에서 공예에 열광적인 방문객들이 종종 묻는 질문인 “무엇이 좋은 공예작품을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 “좋은 공예란 좋은 정책과 마찬가지로 지속되는 원칙과 논리가 필요하다. 공예가 줄 수 있는 시각적인 기쁨, 마음의 평화 그리고 환경적인 보존성 등이 그 예이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작가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형태란, “어떠한 것도 추가 될 수 없고, 또한 어떠한 것도 삭제 될 수 없는 상태”이며, 이를 위한 핀란드 식 접근법은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미니멀리즘과 순수하고 깨끗한 형태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 책자에는 인사말과 함께 핀란드 공예의 역사와 몇몇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되어 있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의 명예 회장으로 핀란드 대사 부부가 추대된 것에 대해 무척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러운 생각을 하였다. 이런 전시회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됨으로써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도 있는 자국의 공예 문화를 소개하는 기회가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많이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공예 역사와 작품들도 이런 수준의 지원을 통해 미국 사회에 소개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게 됐다.
스미소니언 쇼의 심사 과정에서는 매년 각기 다른 팀으로 구성된 세 명의 전 미국 공예 분야의 전문가 심사 위원이 다양한 분야의 지원자들 중 120명의 아티스트들을 뽑는다. 각 영역에서 10~12명의 아티스트들이 선발되는데, 별도로 작가들이 초대되지 않으며, 이전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도 반드시 다시 지원하여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위원들은 그들의 작품의 수준, 예술적 구상, 독창성을 기본으로 지원자들 중 가장 완성도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낸 뛰어난 작가들을 선택한다. 올해의 심사위원으로는 전 미국 공예 협회 전시 디렉터인 조안 브라운(Joann Brown), 전 ‘렌윅 갤러리’ 디렉터이며 현재는 큐레이터 겸 비평가인 로이드 허만(Lloyd Herman), 그리고 현대 공예 위주의 ‘W.D.O. 갤러리’의 소유주 롭 윌리암스(Rob Williams)가 맡았다.
심사과정에는 스미소니언 여성위원회와 Juried Art Service에 의해 개발된 첨단 전자 선출 시스템이 3년째 사용되었다. 심사 위원들은 지원자들을 카테고리에 따라 심사하는데, 지원자들의 작품은 컴퓨터 스크린에 이름과 재료와 함께 나타난다. 스크린에 뜬 그림을 클릭하면 작품의 크기, 재료, 테크닉 등을 함께 볼 수 있다. 그들은 각자 독립적인 세 개의 컴퓨터 터미널을 이용하여 각각 지원자들의 작품에 대해 투표하고, 컴퓨터는 가장 높은 점수를 가진 작가들의 리스트를 출력한다. 심사위원들은 투표과정 중 작품을 토론하기 위해 언제나 멈출 수 있고, 의견을 나누거나 전자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심사과정의 결과로 이번 2004년 공예 쇼는 미국 공예의 뛰어남을 알리는 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발표장의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 올해에는 총 120개 부스에 134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였으며, 그 중 30명은 새로운 작가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들은 어느 영역이건 스미소니언 공예 쇼에 참가한 것을 그들의 작가로서의 이력에 있어서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그 장르나 형식을 망라한 공통점이 있다. 즉, 현대 공예 운동이 자기 표현과 개인기 등에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는 하지만, 시대를 넘어서 존중되는 손으로 제작한 작품이 갖는 우주적인 언어와 그를 통한 의사소통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수공예품은 그것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라도 그 자체로서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손과 마음, 정신의 조용한 연결을 통해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어떤 특정한 재료나 형식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품 그 자체로서 즉각적이며 직접적인, 시간을 초월하여 전해 내려오는 순수함에 기인하는 것이다.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일차적인 즐거움은 각 작가의 다양성, 독창성, 그 기교 등을 감상하고 그것에 감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디서건 공통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형식과 재료에 무관하게 다가오는 미적 가치의 즉각적인 전달이었다.
필자가 만나 본 도예가들 중에 작품세계가 아름답고 독특한 다섯 명의 작가를 인터뷰하여 그들만의 제작기법이나 작품 전개과정 등을 알아 보았다.
퐁 츄 Fong Choo
아주 쾌활한 성격의 싱가포르 미국인 퐁 츄(Fong Choo), 그는 필자와 작년에 이은 두 번째 만났다. 여전히 활달하고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그는 켄터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워크숍도 의욕적으로 열고 있었다. 그는 아주 조그만 자기 주전자를 만들어 스프레이 건으로 유약을 입히는 그만의 테크닉을 쓰고 있었는데, 특이한 점은 cone 6 전기가마 번조이지만 저온소성 유약을 써서 아주 맑고 컬러풀한 색상과 역동적인 형태를 가진 주전자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사진 2,3>
리나 페그 Rina Peleg
이스라엘 아메리칸 리나 페그(Rina Peleg)는 세 아이의 엄마로서 15년의 독자적인 물레 작업 후에 알프레드대학 대학원에 입학하여 거기서 조소작업을 시작했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베스케터리와 도예를 기법과 재료면에서 합쳐 놓은 그녀만의 세계를 엿 볼 수 있었다. 리나의 작품은 주로 인스탈레이션으로 전시하고 있었고, 또한 집안의 코너 장식장 같은 곳에 전시된 사진은 필자의 눈에 정다운 민예품 같기도 했다. 그녀는 주로 하얀 토기 흙과 테라코타 흙을 사용하고, cone 05에서 번조한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익스트루더를 통해 뽑은 코일로 만든 둥그런 작품은 우리가 사는 지구 또한 우주를 상징한다고 했다. 한편 그녀는 자신의 작품이 지난 해 한국 제2회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 수상작으로 뽑혔다며 자랑스러워 했고, 또한 한국 수집가가 그녀의 작품을 구입했다고 했다. 지금은 뉴욕 부르클린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공동 스튜디오를 쓰고 있고 뉴욕에 오면 꼭 놀러 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진 4,5>
호이나스키 Zbigniew Chojnacki
폴란드에서 오래 전 미국으로 이주해 온 뒤 필라델피아에서 작업을 하는 호이나스키(Zbigniew Chojnacki)는 라쿠번조 인간조소 작품과 벽걸이용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전업작가이며, 필라델피아 미술 박물관을 포함한 여러 유명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영구 소장되어 있다. 특히 그의 두상 작업 에서는 언뜻 보면 비슷한 얼굴이지만 조금씩 눈, 코, 입 등에 변화를 주어 조금씩 다른 성격의 얼굴을 표현해 내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 고딕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드로잉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는 모두 조각을 전공했다. <사진 6, 7>
롭 시멘스키 Rob Sieminski
롭 시멘스키(Rob Sieminski)의 작품을 대하면 무언가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지는데 그의 설명에 의하면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흐르며 나무에 부딪히고 계속적으로 흘러 내려가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표현한다고 했다. 특히 드넓은 바다 저 아래에서 폭발하는 화산 용암이 나오는 즉시 바다의 찬 물에 의해 얼어버리는 현상에 대해 공부를 했다며, 그는 그런 자연의 힘찬 에너지를 그의 작품을 통해서 관람자나 수집가들이 볼 수 있고 좋아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메인 주의 시골에 장작 가마를 세우고 부인과 함께 자연에서의 생활을 누리고 있는데, 주위의 여러 야생 동물들과 격변하는 날씨를 통해서 작품 활동에 힘을 얻는다고 한다. <사진 8, 9>
케빈 크로우 Kevin Crowe
케빈 크로우(Kevin Crowe)는 워싱턴 DC에서 약 세 시간 정도 떨어진 버지니아 시골에서 3-쳄버 히카리 장작 가마를 가지고 있다. 한 번의 번조로 대개 1000개 가량의 작품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은 10cm~120cm로 크기가 다양하다. 그의 1m가 넘는 큰 항아리는 밑부분만 물레로 제작하고 그 위로는 코일을 하나씩 얹어가며 완성해낸다. 그의 작품은 주로 기능적인 물레 작업들이고 cone 10에서 번조한다. 약 3년 전 필자가 참가했던 그의 워크숍에서 그는 매우 성실한 자세로 시범을 보여 주었는데,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아침마다 그는 시를 읽어 주며 참가자들과 같이 그것을 나누고는 하루를 시작했었다는 것이다. <사진 10, 11>
이상 본 글에서는 도자 작업을 하는 다섯 명의 작가들에 대한 소개만을 실었지만, 쇼에 참여한 모든 작가들이 나름대로의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어서 모두 이 글을 통해 알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특히 보석 분야에는 조나무씨와 왕기원씨가 유일한 한국 작가로서 참여하고 있었는데, 조나무씨는 작년 최고상에 이어 올해에도 은상을 수상하였다. 필자는 두분 작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어떻게 그토록 활발히 활동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고견도 들을 수 있었다. 쇼를 둘러보고 오는 필자의 머릿 속에는 ‘미치도록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피땀 흘린 작업만이 어디서건 인정 받고 성공하는 방법이다’라는 조나무씨의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필자약력
이화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 프레데릭 후드 대학원 도예과 졸업
현, 메릴랜드주 그린벨트시 커뮤니티센터 Artist in Residence로 활동 중
shinye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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