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도자기의 바람직한 재현과 발전방향
전통도예인의 시각변화와 도자기능의 다양성
글 윤태운 _ 이천도예협회 회장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가 방영될 때 많은 세계인들이 나의 뿌리를 생각하면서 과연 우리에게 있어서 ‘뿌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져 주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전통문화를 현대문화의 뿌리로 존중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성은 어제가 오늘의 과거이며 오늘이 내일의 과거이듯 시공간의 흐름이 한 끈에서 연결되는 연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
현대도자가 유입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승도자를 중심으로 한 지역 도예인들이 우리 도자 문화의 중심축이었으며, 현대도예가 등장함으로써 그 한계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보수성이 현대도예의 이질적 요소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도자를 전공한 많은 학부 출신들의 활동과 도자엑스포, 비엔날레 등의 축제행사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은 서로 섞이면서 이질적 요소를 극복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과도기적 시기에 접어들었다.
변화의 자각
지역축제와 국제행사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현대도자의 변화와 자유스러움은 전승 도예가들에게 많은 거부감을 주었으며, 이 시기에 이들은 자존심의 상처와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 전승이라는 제한된 범위의 기술적 요소가 갖고 있는 변화의 한계성
- 각종 축제, 세미나 등을 통해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현대도예에 대한 위기의식
- 한국 도자기의 중심축이었던 역할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자존심의 상처
- 지나치게 변화를 주장하는 분위기에 대한 반감
- 현대도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시장의 잠식성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최근 들어 서로 인정하고 어우러지면서 변화를 주는 자극제가 되었으며, 기본이 튼튼한 전승 도예인들에게 미술적 요소를 눈뜨게 하고 변화의 환경을 만들어 준다면 머지않아 훌륭한 결과물들이 탄생될 것이라 생각한다.
변화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한 국가의 특징적 문화가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세월을 거쳐 조금씩 조금씩 시대적 상황에 맞게 변화해 가는데, 일례로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든 같은 고전음악이 바로크 낭만파 음악의 시대적 변화를 거쳐 오늘날 재즈와 팝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현대음악이 탄생하게 되었고 ‘음악’이라는 장르 속에서 두 이질적 요소가 서로 충돌하며 갈등을 느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전통은 현대의 뿌리이자 밑거름이기 때문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변화에 성공
변화는 우리 삶 속의 자연스런 현상이며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오랜 정서를 통해 숙달된 기술을 유지하고 보존해야 할 문화의 전통적 가치를 어떻게 지탱할 것인가의 정책적 대안이 제시되는 한편, 도예인 스스로가 변화에 눈을 뜨고 자각함으로써 독창성을 유발하고 경제논리에 적응하는 힘을 길러 나가야 한다.
따라서 농익은 정서를 통해 깊이 있는 기술적 요소를 소홀히 한 채 잘 팔리는 상품을 문화적 가치 또는 발전의 기준으로 오인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가능성 시대에 진입
요즘 같은 불황기에 그래도 꾸준히 판매되는 도자기들을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은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고 꾸준한 개발과 실험정신을 통해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높아진 소비자의 안목을 파악하고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는 노력을 꾸준히 하였거나, 나만의 독창적 색깔을 잘 표현하여 꾸준히 매니아를 형성해 가는 도예인들이다.
이제 이 대열에 진입하고자 노력하는 도예인들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앞서가는 이들에 의해 우리 도자문화는 변화의 속도를 더해 갈 것이다. 얼마 전까지 오랜 세월 잠자고 있던 우리 도자문화가 비로소 눈뜨기 시작한 시기가 불과 40여 년이다.
반세기의 ‘근대도자 50년사’는 도자문화의 인식 - 도자문화의 재발견 - 가치성의 확대 - 도자문화의 대중화 - 현대도자의 유입과 발전 - 도자문화의 다양성 - ‘국제무대의 진입’이라는 짧은 기간의 큰 변화가 있어 왔고, 이것은 다른 어느 나라의 발전 속도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변화의 동인은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지켜 왔던 전승도예가들과 현대도예를 통해 기초이론과 국제도자의 흐름에 적응해온 학부출신 모두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능의 다변화
‘도자기의 쓰임새’라는 말이 일반화되고 있는 요즈음의 우리 도예계의 흐름은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무의하며, 쓰임새라는 실용성의 변화는 그동안 보수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많은 도예인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었으며 새로운 도전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생활도자 분야>
- 기물의 형태, 유약과 색상의 다양화
- 동서양의 식문화가 혼재된 그릇 쓰임새의 다양성
- 디자인 감각에 눈을 뜬 소비자 요구의 다양성
이러한 때에 요즘 유행하는 ‘웰빙’시대에 기능을 강조한 건강용기, 건강기구 등의 개발과 우리 가족만의 식기, 나만의 화병 등 맞춤형 생활용품 시장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건축. 인테리어 분야>
벽걸이 스탠드 화병 거울 화장대 등 인테리어 분야의 다양한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시장 창출의 분위기를 열어갈 수 있으며, 한 편에서은 서서히 눈뜨기 시작하는 건축벽화 내장타일 조형물 설치 등이 전문 도예인들이 개척해 볼 시장으로 남아 있다.
<이질적 요소와의 결합>
지금까지의 전문성을 벗어나 목재와 도자기의 결합, 금속과 도자기의 만남 등의 소재를 찾아 시야를 넓힌다면 시도해 볼만한 많은 개척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맺음말
우리는 인류 문명사의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세라믹의 범주에서 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갈 수 있다는 의미이며 문명의 발달이 끊임없이 치달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아야 할 당위성은 인간의 극단적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황폐해 가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고 도자문화를 통해 잠시 사색의 공간을 넓혀 줄 수 있는 예술의 범주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상 흙을 만지며 흙에서 나오는 자연의 감성을 느끼지 못하고 단순히 경제논리의 도구로만 생각한다면 너무나 서글프다.
흙과 불을 통해 얻어지는 작은 기물일지라도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며 그 결과물에 겸손해야 한다. 감성과 인격이 없는 기물은 단순한 공산품이기 때문이다.
국제경기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에게 던져 주는 화두는 그래도 이 직업에 자긍심을 갖고 인내심으로 도전해 보자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넓은 공간이 보인다.
필자약력
서울시 초대전 / 다기명품전 3회
이천도예가회전 4회 / 2인전 2회
프랑스 파리문화원 초대전
캐나다 캘거리 초대전
전 이천도자기조합 이사장
현, 이천도예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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