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좋은 단어이자 마음에 와 닿는 글자이다. 인간이 갖는 어떤 슬기나 지식으로 삶이 보다 더 풍요롭고 편리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 몸과 정신의 평안함, 이것은 자신을 일컫기도 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도 포함된다. 자연은 어쩌면 스스로 존재하면서 인간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주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자연으로부터의 시작이며, 그 자연은 흙이라는 원소이다. 특별히 사람들이 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며 도전하는 일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흙과 더불어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흙으로 돌아가는 윤회이며, 또 다른 시작과 그의 끝도 이와 같으며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온 인류의 역사인 것이다.
이렇듯 흙이 갖는 중차대한 의미는 수식이 필요 없으며 누누이 설명하지 않아도 미루어 짐작이 되는 것이다.
시야에 들어오는 들판과 야트막한 야산의 짙푸른 녹음은 누가 만들었을까? 산이나 바다가 그렇고 얼마 전 ‘민들레’라 이름한 큰비와 바람 그리고 구름들은 누구의 작품인가에 대한 한 가지 긍정하고 수긍해야 하는 답이 있다. 그것은 위에 열거한 물질 본디의 성질들을 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흙이다. 흙이라는 거대한 그릇인 것이다.
대양의 바닷물은 무엇에 담겨있는가? 다름 아닌 흙 그릇, 거대한 지구라는 흙의 그릇 아닌가. 참으로 대단한 자연의 섭리이자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리들이 만들고 또 만들고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을 담을는지에 대한 성찰의 그릇이기 때문이다.
야트막한 야산과 들판을 보고 있노라면 짙은색의 푸르름이 한 여름을 말해주고 있으면서 왠지 평안함을 선사한다. 도시의 건물 숲들을 지나 그저 한 두 시간 달려 보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것들이 다 흙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들의 의식주가 거의 그렇다. 입는 옷은 황토 물들인 것이 최고가 되어있고, 자연 친화적인 식물은 부르는 게 값이며 거할 집도 평당 오백은 넘어야 흙을 섞어 나무 집을 지을 수 있단다. 이쯤 되면 흙을 만지며 흙과 더불어 일생을 지내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 흙이 인류에게 대단한 유익을 끼친다는 사실이 또한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 같다.
옹기장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거기에 우리들의 어머니가 계신다. 은근과 끈기로 자녀를 돌보시는 분, 그리고 고향이 보이며 향수에 젖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제 우리 고향노래를 부르면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옹기를 얘기하여 보기로 하자.
옹기의 역사는 언제부터인가, 어디서부터인가, 길고도 먼 여행을 시작해보기로 하자.
인류생활이 시작되면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여 왔다. 가장 손쉽게 쓸 수 있었던 게 아마도 흙이 아니었을까? 주무르고 만져서 물도 섞고 그러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거기에 담기도 하고, 오래도록 보관해 두기도 하였을 것이다. - 가끔 이웃해 있는 학교에서 현장 체험학습 한답시고 데리고 온 고사리 손 아이들과 흙 놀이를 하고는 하는데 이 아이들에게 그릇을 만들어 보게 하면 그저 원시적 형태의 기형이 된다. 그렇지만 무언가는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만들어진다.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에 놀라움과 감탄사가 연발되기도 한다. 왜냐면 역사는 흐르는 것이지 변하는 게 아니라는 확신과 믿음 때문이다.- 물기 없는 내용물은 그런데로 쓸 만하지만 축축한 것들을 담게 되면 이내 그릇까지 못 쓰게 되므로 불에 넣어 구워서 사용하게 되는데 이렇게 하기까지는 여러 시행착오와 많은 세월이 흐르게 되었다. 이때의 그릇들을 즐문(그릇 바깥벽에 사선이나 여러 모양으로 난 음 또는 양각의 무늬), 무문(그릇 외벽에 아무 무늬가 없음)토기라 한다. 이러한 기물들은 주로 선사시대의 것들이다. 불에 구워서 사용하였지만 아주 낮은 불에 익혀서 쉽게 깨지며 물기를 잘 빨아들이므로 물이 다 배어 나온다.
유사시대가 시작도래하자 남쪽의 영산강(지금의 나주인근 지역)유역에서는 지금도 수수께끼 같은 옹관이 제작되었다. 두 개가 하나의 관인데 한쪽의 큰 것은 2m가량이다. 실로 엄청난 크기이며 대단한 기술력이라 하겠다. (MBC가 ‘마한’이라는 특집 프로를 만들면서 필자에게 옹관 재현을 요청하여 특별히 크게 제작한 물레로 전통기법인 쳇바퀴 타래를 이용해서 만들어 보았다. 높이가 2m이며 넓이는 1m이고 기물의 외벽은 수레문양인데 너무 커서 전통가마로도 구울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는 기형도 다양해지면서 굽는 기술도 발전한다. 그리고 획기적인 진전이 있는데 잿물의 발견이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에게 맞는 색깔과 옷을 입어 개성을 나타내듯이 그릇에도 검은 빛, 붉은 빛 등이 나타난다. 이것은 가마 때는 기술로도 표현이 가능한데 어느 정도의 온도에서 아궁이와 굴뚝을 동시에 완전히 막아 버리면 공기의 유통이 없으므로 환원염이되어 회색이나 검은 빛이 되고, 적당히 막아 공기가 어느 정도 들어가면 산화염이되어 붉은 빛이 돌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구워진 그릇들은 회청색 연질, 회흑색 연질, 검은색의 연질도기, 붉은색 도기로 불리워진다. 이 시기를 청동기시대라고 하는데 좀 더 발전하여 쇠를 잘 다루는 시기로 오면서 약하게 구워지던 것을 강하게 굽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아마도 쇠를 녹이는 기술이 좀 더 발전된 형태로 경질의 단단한 도기가 나오게 된 듯하다. 그러면서 급속한 발전이 이루워지는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나라가 셋으로 나누이고 도기의 발전도 나라마다 다르게 전개된다.
다음 호에는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 근현대 시대 옹기의 역사와 배경을 회상해 보길 원한다.
필자 이학수씨는 전남 보성 미력면에서 9대에 걸쳐 300여년간 전통옹기를 고집스레 지켜온 미력옹기의 대표이며 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 전수자다.
e-mail : onggikam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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