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최대규 _ 도예가, 도자공방테라 대표
들어가며
세계적으로 도자의 도시 ‘자도瓷都,Ceramic City’로 불리는 중국 징떠전景德鎭(우리발음 경덕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에 대해 글을 쓰며 필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과거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징떠전 도자에 대한 방대한 내용과 수많은 관심을 이 짧은 글로 갈음할 수 없음은 막론하고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징떠전에 대한 아주 작은 이해나마 얻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수교 이래 점점 빈번해지고 다양해지는 문화교류와 함께, 최근엔 중국 측의 억지로 발발된 고구려사왜곡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지만 도자에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징떠전 도자의 이해는 하나의 통과의례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올해 징떠전은 도시건립 1000년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징떠전은 송대에 도자산지로 도시가 건립되어 원·명·청대를 거치며 오늘날까지 도자를 통해 존립하며 외부에 명성을 알리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징떠전에서는 올해를 천년축제의 해로 명명하고 도시계획을 전면 바꾸는가 하면, 도로확장과 노후된 건물의 철거, 대규모 도자공장의 교외이전을 통해 도시의 면모를 현대화하며 10월 12일~18일에는 제1회 국제도자박람회를 개최한다. 다른 도자선진국에 비해 국제적인 행사를 치러내기에 부족한 역량과 예산에도 불구하고 도자종주국으로서 그들이 외부에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명성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들의 도자문화를 외부에 알릴 수 있고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라 할 것이다.
징떠전을 이해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그 지리적 위치와 자연환경일 것이다. 그리고 징떠전 도자의 역사와 도자 제작상황을 이해한 후 오늘날의 징떠전을 조명해본다면 독자의 이해를 어느 정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과거의 도자사와 징떠전 도자의 변화, 발전을 중심으로 기술하여 이 글이 징떠전 도자가 가지는 역사적 가치와 도자를 제작하는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가치를 함께 추구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도자발전을 가속화하는 주위환경
징떠전은 중국의 강서성江西省 동북부, 안휘성安徽省과의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 징떠전으로 가는 길은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등지에서 육로와 항로를 이용할 수 있다. 베이징에서는 기차로 약 24시간, 비행기로 약 2시간이 소요되며, 상하이에서는 기차로 7시간, 비행기로 약 1시간이 소요되는데 징떠전을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상하이에서 30인승 경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최적이다.
징떠전 도자의 발전은 지리적인 환경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위는 울창한 산림과 높고 깊은 산, 많은 강과 계곡, 호반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자산업의 필수인 목재의 수급과 운송의 용이함을 제공하여 왔다. 도시를 둘러싼 많은 산 가운데 최고봉은 우꾸지엔五股尖으로 해발 1618m에 달하며 계곡은 창강昌江, 동하, 서하, 남하로의 강줄기로 뻗어있어 도시 전체의 산지면적은 69%, 강면적은 7%에 이른다. 창강은 전 도시로 통하는 해운의 길로 과거 도자운송에 큰 역할을 한 수로이며 징떠전은 창강의 남쪽에 위치하여 과거 창난전昌南鎭으로 불리었는데 송대 경덕년간景德年間에 연호를 따 징떠전으로 개명되었다. 중국 또는 도자기를 뜻하는 CHINA의 기원은 바로 이 ‘창난昌南’의 발음이 기원이 되었다.
또한, 소나무, 삼나무, 양치류가 주종인 산림자원과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고령토는 과거 고온번조를 요하는 자기를 생산하는데 필수적인 재료가 되었다. 소나무는 주로 불의 길이가 길어 고온번조의 장작가마에 소제되었고, 삼나무는 도자기를 만드는 공장이나 가마 윗부분을 축조하는데 쓰였다. 또한, 소나무의 잔가지와 양치류는 강 상류에서 뗏목으로 운반하여 저온번조에 쓰였는데 주로 도기나 거친 자기를 생산하는 가마를 뗏목가마[木+差窯]라 하여 이원화되었다.
징떠전의 자토는 초기에 부근의 마창산麻倉山에서 채취되었으나 원대에 관요로 승격되며 민간에서 사용이 금지되었다가, 명말 징떠전에서 45km 떨어진 까오링산高嶺山에서 우수한 자토가 채굴되면서 도자산업은 더욱 발전된 모습으로 부흥하였다. 징떠전의 자토광산은 화강암과 장석암의 풍화로 이루어진 순수한 물질로 돌형상은 자석瓷石, 토질로 된 것은 고령토로 불린다.
원대 이전에는 자석만으로 도자를 제조하였고, 원대 이후에 자석에 고령토를 넣어 이원화된 혼합법으로 도자기의 경도를 높였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자토를 명명하는 고령토kaolin 역시 이곳에서 유래되었다. 이 곳 외에 징떠전 부근의 씽즈星子, 위깐余干, 린추안臨川 등지와 근교의 다쩌우大州, 산빠오펑三寶蓬, 리우지아완柳家灣, 인컹銀坑, 야오리搖里 등지에도 자토산지가 있다. 몇몇 곳의 자토는 백돈석白敦石이라 하여 유리질 자토로서 고령토와 배합해 맑은 반투명성을 얻을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투광성을 가진 상질의 자토이다. 징떠전에서는 자토의 질에 따라 보통 약 30등급의 백색도가 존재하며 자토를 생산하는 대형공장과 소규모공장 등에 따라 다양한 성질의 자토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징떠전의 도자산업은 풍부한 자토, 산림과 더불어 수로운송의 편리함을 통해 천여 년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천여년을 이어 내려온 도자산업의 흐름
원래 한대부터 도기를 소제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시대를 거쳐 동진시대에 진鎭(행정구역)이 설치되어 도자를 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당대로 오면서 창난전의 자기는 이미 유명세를 떨쳤으며 송대 진종眞宗 경덕년간에 궁중에 자기를 상납하면서 명성이 높아졌다.
당대에 유명했던 형요邢窯의 백자, 월요越窯의 청자를 모방하던 것에서 벗어나 송대에는 잉칭影靑이라는 청백자를 독자적으로 개발하였는데 현재까지도 징떠전 자기의 주류 중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잉칭자기는 세밀한 자기질 태토에 소량의 산화철 성분이 있는 투명유를 시유하여 환원 번조한 전형적인 청백자의 모습을 띠는데 유색은 맑으며 특히, 음각한 부분에 몰린 유약이 주변보다 푸른빛을 띠어 백색과 대비되는 맛을 보여준다.
원대元代로 오면서 징떠전 자기는 또 한번의 걸작을 창출하는데 그것이 바로 청화백자靑花白瓷이다. 청화백자의 기원에 대해서는 현재 두 가지의 학설이 있는데, 청화백자의 제작기법과 원료가 모두 페르시아에서 전래되었다는 것과 또 다른 학설은 중국자체의 독자적 창조품이며 단지 코발트 원료를 수입하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들은 대부분 후자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청화백자는 코발트원료에 망간과 철을 섞은 안료를 자기면에 그리고 장식한 유하채釉下彩 자기이다. 유하채 기법은 원대이전에 이미 호남성의 창샤요長沙窯에서 산화동이나 산화철로 그린 기법을 시작으로 송대 하북성의 자주요磁州窯 등지로 계승되어 이미 존재하였다. 원대에서는 코발트원료를 운남성, 절강성, 강서성 등지에서 채굴된 망간의 함량이 많은 것과 철분 함량이 많은 수입한 것을 동시에 사용하였는데 수묵의 농담과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병행되었다. 청화안료를 사용함에 따라 태토의 백색도와 강도 또한 중요시되어 원대에 오면서 고령토의 성분이 많은 태토를 사용하여 백색도를 높이고 알루미나 성분이 높아지고 더 높은 고온번조가 가능해져 강도는 더욱 커졌다.
청화자기의 맑은 청색과 깨끗한 백색은 뛰어난 대비로 미감美感이 뛰어나 추후 유럽자기의 장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오늘날 징떠전 도자기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원대에는 또한 유리홍釉里紅이라 불리는 산화동 계열의 붉은 안료가 쓰여지는데 명·청대의 아름다운 동홍자기銅紅瓷器을 만드는데 기초가 되었다. 현재에 있어서 유리홍은 청화안료와 함께 병행하여 쓰기도 하는데 유하채 자기의 가장 중요한 안료중의 하나로 쓰이고 있다.
명대明代(1368-1644)에 이르러 징떠전은 다른 요장에 비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규모가 커졌는데 송대에 유명했던 균요, 용천요, 자주요 등은 징떠전에 모두 관요의 자리를 내주었고, 명실공히 징떠전은 도자의 번영기를 맞이하여 전국 도자산업의 중심지이자 상공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명황실에서는 어기창御器廠을 설치, 궁중용 자기를 전문적으로 제작하게 되었고 수백기의 가마를 비롯, 도공은 10만여명에 이르렀다. 관요와 민간요에서 대량의 도자기가 생산되면서 도자산업은 더욱 전문화, 세분화되며 전국에서 우수한 도공들이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청화자기는 계속 제작되었으며 자화된 자기에 저온안료로 장식하는 유상채자釉上彩瓷, 유하청화와 유상채색을 함께 한 투채자기鬪彩瓷器, 유면釉面을 깎아내고 황·녹·자색으로 다시 저온 번조한 소삼채素三彩, 홍·황·갈·자·담록·심록으로 장식한 오채자기五彩瓷器, 종이처럼 얇은 박태자기薄胎瓷器·첨백甛白·황유·홍유·남유·공작록 등의 단색유자기單色釉瓷器 등 다양한 기법과 스타일이 개발되어 제작되었다.
청대淸代(1644-1911)에 이르러 징떠전의 도자는 화려했던 명대의 채자를 더욱 발전시켜 완벽에 가까운 자기의 절정시대를 맞이한다. 유상채로 분채粉彩, 법랑채琺廊彩, 만화채萬花彩 등의 새로운 시도가 있었으며 단색유자기도 더욱 발전하여 랑요홍郞窯紅, 강두홍, 제홍霽紅, 취홍吹紅 등 홍유계통의 다양한 창조와 청유靑釉, 흑색의 빛나는 오금유烏金釉등을 생산하며 자기의 황금시대를 맞이하는데 정치력이 융성했던 강희康熙, 옹정雍正, 건륭乾隆황제 시기에 가장 번성하였다.
청말淸末 영국과의 아편전쟁에 패배한 청조가 몰락함에 따라 중국 도자의 중심지인 징떠전 관요자기의 생산은 막을 내린다. 그후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될 때까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중일전쟁, 내부 이데올로기의 갈등을 겪으며 징떠전 도자산업은 민간의 소규모공장을 통해 새로운 창조보다는 전승도자를 지속적으로 답습하며 침체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1949년 당시에는 약 2000여개의 크고 작은 도자공장이 도자를 제작하였다.
1950년대 각 도자산지를 중심으로 중국 근대도자가 태동되는데 징떠전에서는 1958년 경덕진도자대학과 도자공업연구소의 설립으로 대학교육과 전문연구기관을 두며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도자발전을 이끌게 된다.
(다음 호에 계속)
참고문헌
중국도자사(中國陶瓷史) 중국규산염학회(中國硅酸鹽學會) 문물출판사(文物出版社) 1982
전통과변천(傳統與變遷) 팡리리(方李莉) 강서인민출판사(江西人民出版社) 2000
징떠전전통제자공예(景德鎭傳統制瓷工藝) 바이밍(白明) 강서미술출판사(江西美術出版社) 2002
필자약력
69년 강원 강릉 출생
90~92년 서울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 회원
88~93년 중앙대학교 화학공학과
93~98년 (주)LG화학 근무
99~01년 중국 청화대학 대학원 도예디자인과
99~01년 중국 도자산지 답사(경덕진,이싱,정요,월요,용천요,쯔보,요주요,자주요,당삼채요,균요,여요 등)
99년 중국,영국,일본,터키 4개국 국제전 외 중국서 6회전시 참가
현, 도자공방테라, 디자인테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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