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함께 느끼고 꿈꾸는
글+사진 황현숙 _ 도예가
겨울날 햇살은 참으로 찬란하다. 둥그스름하게 만들어 놓은 형상위에 나무 한그루를 올린다. 낙엽마저 스러진 겨울 동산 위의 한그루 나무, 혹은 그 동산을 싸고 있는 하늘일까? 스쳐가는 바람 소리, 유난히 찬란한 햇빛을 그려 본다. 동산에 내려앉은 햇살, 주저앉은 하얀 눈.
어머!, 저 아래로 나뭇잎 끌어안은 흰 눈길이 보이네. - 「겨울 햇살」
난, 흙을 주무르고 쌓아 올리고 쓰다듬으면서 흙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나의 손과 손 사이에서 성글게, 쫀쫀하게, 섬세하게, 단단하게 끊임없이 변화하는 흙에 귀 기울이며 그의 언어로 나는 ‘아름다움’이라는 가장 소중한 가치를 구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눈에 익숙한 형태가 아닌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형태를 체험해 보고자 노력한다.
아이들이 뛰어 논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온몸이 땀에 절은 것도 모르는 채 즐거이 뛰어 논다. 누군가 무등을 타기 시작하고 서로 엉겨 붙은 아이들은 아! 하고 기쁨의 함성을 질러댄다. - 「환희」
“아!” 같이 미쳐 언어화되지 않은 소리라 할지라도 우린 듣는 순간 놀라움인지 탄식인지 기쁨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내가 작품을 통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또한 그렇게 느끼도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주관적인 생각과 체험을 객관화하여 공동의 정서를 끌어내는 것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작업하는 내가 감당해야만 하는 나의 몫일 것이다.
바닷가, 사람도 물결도 빠져나간 모래사장에 새들이 이리 저리 발걸음 옮기며 한가한 때를 즐긴다. 바다 속 물고기도 하늘 보고자 얼굴 내밀고 져가는 석양은 그들 위에 사랑의 눈길을 보낸다. - 「바다, 새」
밖의 형태만을 다루는 조소 작업과 달리 언제나 안과 밖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것이 도자 작업의 가장 큰 매력이고 다른 흙 작업과의 가장 큰 다른 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기에 안 보인다 하더라도 속은 밖만큼 소중하고 언제나 열어 볼 수 있기에 더욱 흥미롭다. 또한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생각만으로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기에 나는 가급적이면 무엇인가 담을 수 있게, 열어볼 수 있게 만들고자 노력한다. 비록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 인류에게 길들여진 기능을 아름다움을 만드는 한 요소로 이용함으로 인해 습관화된 우리의 일상에서 미적 체험을 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떠나가서 보거나 멀리서 혹은 높은 데서 보면 모든 것이 명료하고 단순하게 보인다. 바닷가 가파른 낭떠러지 위에서 고개 들어 높이 높이 날고 있는 독수리를 보았었다. 세밀한 날개깃을 서서히 여유롭게 조정하는 그에게 숨차게 올라간 우리의 산길은 그저 하얀 곡선이 아니었을까. - 「번지는 미소」
지금도 하늘 높이 어딘가엔
따스한 남쪽 나라를 향해 날개를 퍼득이는 새, 한마리 있을거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뿌연 뭉게구름
들리는 것이라고는 사나운 바람 소리 뿐.
맑은 물, 푸른 숲, 향기로운 공기,
만날 친구들, 나누게 될 사랑.
가슴 채운 희망으로
번개도 천둥도 아랑곳 않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가는 새.
나는 그 한마리 새이고프다.
도전을 감수한 용기, 인내로 얻어 낸 평화, 기쁨, 행복.
그 아름다운 가치를
흙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이루고 싶다.
형태없는 그 소중함에
조화와 균형으로 새로운 질서를 지닌
형태를 주고 싶다.
세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작업에 임하는 나의 마음의 자세를 정리해 보았다. 마치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듯한 흙은 상태와 여건에 따라 다른 명제를 언제나 내게 던져 준다. 오늘의 이것이 내일도 이것으로 완성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난 흙을 통해서 내 의지와 소망이 있는 한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리라는 확신을 배우게 되었다. 도전을 감내하는 용기가 있는 한 기쁨이 따르리라는 것을 나는 오늘도 배우련다.
작가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 졸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버클리대학원 졸
개인전 3회
초대전 다수(72년 미국 스크립스대학 연례초대전, 87년 일본 쇼데이샤창립기념전, 89년 미국 NCECA초대전, 92-93년 서울공예대전 등)
초빙교수, 서울대 서울여대 건국대 동덕여대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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