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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발(井戶茶碗)의 진실 : 미학적인 파격이 돋보이는 조선의 제기였다.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4:10:20
  • 수정 2016-04-16 01: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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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신한균 사기장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책에 조선 제기에 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모든 제기는 사용하고 난 뒤에 깨끗이 씻어서 다시 궤 속에 넣어 보관해야 한다.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않으며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제기를 팔아서는 안 된다. 무릇 제기를 놋쇠나 주석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는 추세가 있지만, 마침내 깨끗하고 청결한 도자나 나무로 만든 것만 못한 것은 가난함으로 인하여 팔거나 도적 맞을 염려를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에는 집안에 불이나 도적질이 있을 때에는 신주(神主)와 유서(遺書)를 옮긴 후, 제기를 옮긴 다음에, 그 다음으로 가재도구를 구해야 한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우리 조상들이 제기를 얼마나 중요시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일상생활에 쓰는 도자기는 제사 때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제사를 위한 제기를 특별히 구하여 사용하였다. 제기의 형태는 일반 그릇과 다른 미학적 파격을 통한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다. 진주사발(井戶茶碗)을 신성시하는 일본에서 근래에 이 사발에 대한 하나의 가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요약하면 자기들의 지배를 받은 한민족이 이 위대한 진주사발을 만들었다는 것은 못 믿겠다는 논리이다. 그리하여 이 사발은 일본에서 디자인하여 조선 사기장이 빚은 밀무역에 의한 주문품이라는 주장이다. 임진왜란 후에 일본에서 한반도에 찻사발을 주문한 적은 있다. 이 주문품은 임진왜란 전의 조선 사발을 모델로 하여 주문한 것이 대부분이다. 임진왜란 전에 건너간 진주사발이 만약에 주문품이었다면, 우리 조선사발의 아름다움이 일본인에 의해 탄생되었으며 모두 일본의 미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필자는 대를 이어 찻사발을 만드는 사기장이다. 필자는 20년 전부터 일본의 유명 화랑에 초대되어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때마다 항상 일본의 도자기 사학자나 차인들과 치열한 논쟁을 하곤 했다. 진주사발에 대한 잡기설과 필자의 제기설의 논리적 격론을 여기서 말할 것이다. 일본 다도계와 차인들과의 논쟁과정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1. 일본측 주장 : 진주사발은 굽이 높고 좁다. 조선은 숟가락을 쓰므로 굽이 넓어야만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굽 안의 도킹과 자완 가장자리의 패인 흔적은 찻사발로서의 볼거리이지 식기로서의 볼거리는 아니다. 이것은 일본에서 찻사발로 사용하기 위해 주문했기 때문이다. ▶ 필자 반박 : 야나기(일본의 저명한 미학자)의 민예론에 기록된 진주사발의 잡기설(雜器說)을 맹신하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제기로 쓰는 그릇은 도자기뿐만 아니라 금속기, 목기도 굽이 좁고 높은 것이 대부분이며 굽이 높은 이유는 조상을 높이 섬긴다는 뜻이 있다. 2. 일본측 주장 : 진주사발의 가장 큰 약속 중에 하나가 비파색이다. 조선의 도자기는 중성염이나 환원염이다. 유독 진주사발만 산화불이다. 이렇게 특별히 불을 땐 것은 주문품이 아니라면 강도가 약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산화불을 땔 이유가 없지 않은가? ▶ 필자 반박 : 비파색이란 비파라는 과일의 색깔과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 초기에 궁중이나 양반이 제기로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금색처럼 노랗게 빛나는 유기(놋쇠)였다. 궁중에서는 설부터 추석까지 식기는 도자기를 사용했으나 추석부터 설까지는 노란 유기를 사용했다. 여기서 한국의 옛 기록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희경의 설수외사(雪岫外史)란 책에서는 … 동과 주석은 우리나라의 인삼과 베로 교환하여 중국에서 가지고 온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보아 유기가 고급품이며 조선 민족에게는 인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민족의 제기는 처음에는 중국의 고동기(古銅器)를 모방했고 조선 초에는 유기를 모방했으나 점점 금속기에서 느껴지는 권위적인 문양, 형태의 생략, 단순화를 통해 한국적 제기로 정착화되었다. 진주사발은 조질백자의 한 종류이다. 백자가 산화 불을 받으면 노란색을 띤다는 사실을 조선의 사기장이 모를 리가 없다. 결론적으로 진주사발의 노란색은 유기(놋쇠)의 색깔을 닮기 위해 작위적으로 산화 불을 땐 것이다. 3. 일본측 주장 : 가이라기를 보아라. 조선 어느 사발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굽이 있느냐? 진주사발로 차를 마실 때 가이라기에서 느껴지는 손맛은 다도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결정적 매개체이다. 일본 차인의 주문이 아니라면 굽 부분의 가이라기는 왜 만들어겠는가? ▶ 필자 반박 : 당신들이 매화피라 부르는 가이라기에 대해서 설명하면 굽 부분의 유약말림 현상이다. 한반도에서 제기는 제사상 위에 놓고 여럿이 바라보고 감상하는 기물이었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제기는 일반 사발과 분위기가 달라야 했다. 유약말림 현상 또한 작위적으로 제기임을 표현하기 위해 거친 태토를 이용한 유약처리의 특별한 기법이다. 4. 일본측 주장 : 다른 조선사발과 달리 진주사발은 물레선(로꾸로메)이 강하다. 왜 유독 진주사발만 물레선을 제거하지 않고 강하게 남겼는가? 이 이유는 일본의 주문에 의해 다도세계에서 추구하는 와비사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 필자 반박 : 앞에서 언급했듯이 조선 제기 중 특징 중 하나가 미학적 파격을 통해 일반 사발과 차별성을 부여했다. 진주사발이 다른 사발에 비해 물레선이 뚜렷한 것은 청동기나 유기로 된 제기에 등장하는 요철문양을 표현한 것이다.(주:와비사비란 조선사발에서 일본인이 느끼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말한다. 고독하고 외롭다는 일본말의 합성어이다. 우리말로 하면 비장미에 해당된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젊은 청춘남녀를 볼 때보다 석양빛 아래의 노부부의 잔잔한 미소가 더 아름다울 수 있듯이 조선사발에는 깊은 철학적 정감이 간다는 뜻이 내포되어있다.) 5. 일본측 주장 : 한국 일부에서는 井戶茶碗을 만든 고요지가 경남 웅천 두동리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경남 웅천은 조선시대 일본에 개방된 3포 중 하나이며, 웅천항을 통해 많은 교역이 있었다. 또한 일본인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경남 웅천 두동리에 진주사발 가마터가 있으므로 조선 사기장에게 찻사발 주문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 필자 반박 : 조선시대에 진주부에 속했던 웅천 두동리의 가마터가 일본에 있는 진주사발 중 한 두개를 만들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를 들면 일본에서 주문한 양산사발 (일본분류:이라보 자완)이 있다. 이 양산사발을 주문 받아 만든 장소인 양산의 법기리 부근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금파리는 단 하나도 출토되지 않는다. 그러나 진주사발과 비슷한 사금파리는 웅천 두동리를 비롯하여 하동, 사천 등에서도 발견된다. 대명물이라고 분류되는 진주큰사발은 형태의 특징상 珠光形, 喜左衛門, 筒井筒形, 細川形, 加賀形으로 나눈다. 이 진주큰사발들을 필자가 직접 확인한 결과 두동리 한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인정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간다. 예를 들면 덤벙분청사발(일본분류:粉引茶碗)의 옛 도요지는 전남 고흥군 운대리가 많이 알려져 있으나 사실 도요지는 보성, 무안 등에서도 발견된다. 만약 두동리에서만 진주사발을 빚었다면 일본의 주문설을 인정하는 결과가 될까 봐 두렵다. 아직도 많은 연구가 요구된다. 두동리의 가마터는 아직도 정확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6. 일본측 주장 : 왜 한국에는 井戶茶碗과 비슷한 井戶脇茶碗 종류는 출토되어도 왜 井戶茶碗만은 출토되지 않는가? 이유는 주문품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의 주문품인 이라보, 고혼자완은 단 하나도 조선에서 출토된 적이 없지 않는가? ▶ 필자 반박 : 물론 일본에서 주문한 사발이 한국에서 출토될 리는 없다. 그러나 조선의 제기도 출토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제기가 제기로서의 생명을 다했을 때에는 따로 부적과 함께 별도로 처리해야 한다라는 기록도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골동상에서 말하고 거래되는 진주사발과 비슷한 식기는 아직도 경상도 곳곳의 옛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일본에서 말하는 자완으로서의 진주사발과는 자세히 보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다. 7. 일본측 주장 : 만약에 일본에서 주문하지 않았다면, 말차를 마시지 않는 민족이 어떻게 진주사발 같은 찻사발을 빚을 수 있었는가? ▶ 필자 반박 : 한국 조선의 책인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원래 차는 달여서 탕으로 마신다. 점다하는 데 찻가루를 잔 속에 넣고 끓인 물을 부은 다음 차 솔로 휘젓는다. 이는 지금의 일본차와 같다. 차와 도자기의 무역을 담당했던 네덜란드 인이 10년간 조선에서 생활한 경험담을 기록한 책(, “Noord en Oost Tartaryen”, Nicholas Witsen 著)에도 조선의 말차 마시는 관습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에 말차를 마셨다는 기록은 아주 많다. 한국인은 제수용 쌀은 별도로 모아서 보관했을 정도로 조상에게 올리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했다. 조선 초에 차를 제사상에 올렸다는 기록은 많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 진주사발은 한반도의 영남 땅에서 제사 때 조상에게 차를 올리는 가장 정성스럽게 조선 사기장이 만든 찻사발용 제기였던 것이다. 필자는 도자기를 빚으면서 우리사발의 역사적 발자취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가칭 우리 사발 이름 붙이기 운동도 하고 있다. 진주사발(井戶茶碗) 등 각 지역의 지방사발을 최초로 재현한 필자의 부친 신정희의 대업을 승화시키는 일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나라와 민족과 역사를 위한 소명의식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방가마라 하여 항상 도자사에서 변방에 있는 우리사발의 위치를 되찾는 일, 일본학자에 의해 왜곡된 우리 도자사를 바로잡는 일과 또 일부 식민사관에 빠진 미학자들에 의해 왜곡된 우리사발의 진실을 되찾는 일은 사기장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필자의 가슴 벅찬 의무라고 생각하며 최선으로 노력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의 거리낌 없는 의견과 응원은 필자의 고독한 노력에 큰 힘이 될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한국 사발의 명칭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세요 쪾연락처 : 055-382-6616 쪾E-mail : shindo7@naver.com 필자약력 1960년 경남 사천에서 申正熙 장남으로 출생. 1984년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1989년 日本 東京 東急美術畵廊에서 도예 개인전 개최 (이후 매년 개최) 1993년 한국공예대전 동상수상 1996년 회령유약 국내 최초 재현. 2001년 NHK(日本 공영방송)에서 申翰均 作陶 과정 日本 전역 생중계. 2002년 한국 사발이야기 집필 중. ▲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간 김해의 제기이다. 하다께야마기념관 소장 ▲ 임진왜란 전 일본으로 건너간 김해의 제기이다. 일본 香雪미술관 소장. 대명물이다. 조선의 제기로서 일본 주문 찻사발과 일본 오리베야끼의 모델이기도 하다. 喜左衛門井戶라는 일본국보와 쌍벽을 이루는 筒井筒茶碗. 본래 국보였으나 현재에는 개인소장품이므로 중요문화재로 격하됨. 필자는 두 사발의 한국 KBS, MBC 촬영을 성사시켰으며 출판물 게재를 승인 받았다. 좌의 사진은 중국 고동기(古銅器)를 모방하여 분청사기로 된 제기이다. 고동기에서 느껴지는 난해한 문양을 단순, 간략화 시켰다. 우의 사진은 조선의 궁중용 제기이다. 유기이며 궁중유물이다. 궁중유물도록에서 발췌한 사진이다. 코끼리처럼 생겨 상준(象樽)이라 부른다 細川井戶라는 일본 중요문화재로서 가이라기라 부르는 유약말림 현상이 아주 독특한 진주큰사발이다. 좌의 사진은 靑井戶라 부르는 진주보시기이다. 제기로 사용되었다. 몸체의 물레선이 강하다. 이 물레선은 고동기에서 느껴지는 난해한 문양을 단순, 간략화 시켰다. 우의 사진은 중국의 金屬器 제기이다. 송시대이며 조선은 처음에는 중국의 금속으로 된 제기를 그대로 모방하다가 세월이 지나 과감한 생략을 통해 한국적 특성을 나타나게 된다. 일본인이 주문한 이라보자완이라 부르는 양산사발이다. 일본 다도의 어울리게 만들었다. 일본 석천현미술관 소장 옛 무덤에서 출토돼 일본에서 이도자완이라 부르는 진주사발과 비슷하다. 한국 골동상에서는 이런 종류를 이도자완이라 부르며 거래하고 있다. 경남대 박물관 소장 조선초기의 분청사기. 花椀이라고 기록된 것은 花는 말차의 거품을, 椀은 사발을 뜻함. 이 기록으로 보아 말차 사발임을 알 수 있다. 굽이 칼로 나누어진 진주보시기이다. 제기용으로 만들었다. 일본根津미술관소장. 진주지방의 향로이다. 현재 일본의 중요문화재이다. 일본根津미술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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