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표현하려는 작가
내 작업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자유로운 언어
유백색 도자기사발 안에 푸른 애벌레 사슴벌레 꽃 나무 새 들이 춤을 춘다. 백자가 먼저 있지 않고, 풍부한 농담을 구사한 코발트빛의 자유로운 필치가 나서지 않고, 산재된 요소들의 무정형의 구도도 거슬리지 않는다.
생활자기를 주로 만들어 판매하던 이세용 도예가(52)의 지난 12월 전시 화火 화花 화畵는 그간의 그의 그릇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은 삶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다양한 언어로 좀 더 솔직하게 근접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게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관념을 벗어난 현대적인 감각의 청화백자
주로 기器의 범주 안에서 작업해온 이세용 도예가의 작업에서는 그릇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꽃그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시에 도판이나 면이 넓은 항아리와 발 등에는 그림이 차지하는 면과 그 주체도 뚜렷하다. 지난 1999년 서울 신사동 핸드앤마인드에서 열린 <그림이 있는 접시전>을 통해 그림도자기에 대한 작가의 관심과 작업의 가능성을 표한바 있었다.
최근 열린 화火 화花 화畵전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과 꽃과 그림을 주제로 하고 있다. 3년 만에 갖게 된 이번 개인전은 그간 보편적인 관점을 염두하고 작업하던 것에서 자신의 주관적인 이야기로 변모하며 발전한다. 현대미술사에서 근대 다다이즘의 출발은 전통과 고정관념의 탈피였다. 이세용 도예가는 도자기에서도 고정관념을 깨야한다고 말한다. “도자기는 도자기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器는 기器이고, 오브제는 오브제이고, 이 둘이 소통할 수 있는 부분이 미약하다고 생각됩니다.” 청화백자는 거기에 상응하는 그림을 그려야한다는 생각이나, 색색의 안료를 사용한 백자를 전통적 분류 중 어느 분류에 넣어야 하는지 모호한 상황에서의 당황스러움은 고정관념 때문일 것이다.
현재, 경기도 여주 그의 작업장에서는 친분이 있는 회화작가 정길영씨가 함께 작업하고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화가는 전통적 방법이나 기형에 얽매이지 않고 물레로 빚은 그릇에 조형적인 굽을 붙인다. 한편, 이세용 도예가는 전통적기형의 도자기위에 전통적인 내용이 아닌 자유로운 그림을 그린다. “다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화폭이 아닌 것들-작업장의 의자나 문-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캔버스 작업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도자기위에 그림을 그린다. 더 이상 그림은 그의 도자기위에 장식적요소가 아니라 주체적인 요소이다. 고려도토로 빚은 하얀 도자기들은 유려한 물레선과 편안한 기형으로 완성도를 갖지만 거기에 그림이 더해져 상승효과를 낸다.
도자기제작에 관한 치밀한 이론 축적
한국전업도예가회 결성 판로 모색하기도
이세용 도예가는 경희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하고 요업기술원에서 근무하면서 도자기에 관한 기술적 연구로 이론을 다졌다. 이후 연세대학교 대학원 무기재료공학과에 진학해 수학했다. 요업기술원 재직시절 작업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킬만한 시간의 여유가 없어 과감히 전업도예가로 전향했다. 요업기술원 재직당시 1년에 5편의 논문을 작성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구는 태토와 유약 번조 뿐 아니라 성형기술과 인체공학적인 도자기형에 대한 연구, 도자기 포장기술에 이르는 전반적인 것들로, 분석적이고 치밀한 이론으로 축적돼 있다. 그가 전착하고 있는 그림 작업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고화도 안료의 활용이 가능하다는 데에 기인한다.
전업도예가로 전향한 후 도자기를 만들어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뜻이 맞는 작가들이 모여 한국전업도예가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며 판매전시들을 주로 기획하고 진행했다. “집 가家자가 붙는 직업은 그 일로 먹고사는 사람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업도예가는 프로입니다. 대학에서는 전업도예가를 양산하고 있지만 그들의 생계에는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최근 들어 산학협동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입니다.” 그는 도예가 후배들에게 특히 어린후배들에게는 도자기의 기술적인 능력보다는 감각과 이론을 충실히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서는 “솔직하게 작업해야한다. 추세를 따르느라 자기 것이 아닌 것들을 만들지 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99년 다른 언어로서 목엽천목도자기 전시
1999년에 가진 개인전 천목도자기天目陶磁器전 또한 그에게는 다른 언어로의 작가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검지만 각기 다른 결정을 갖고 있는 천목도자기들은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처럼 신비롭다. 특히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뭇잎을 이용해 시도한 목엽천목도자기들은 나뭇잎에 포함된 무기물들에 의해 세세한 잎맥이 도자기 위에 새겨진다. “실패율이 높은 만큼 완성됐을 때의 만족감 또한 컸던 작업입니다. 일본의 남방지역과 중국에서 많았던 작업으로, 현재까지 목엽천목도자기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원래 노천번조시 떨어진 낙엽이 도자기위에 새겨지는 것을 보고 시작된 작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전례가 드물다. 목엽천목에 적합한 나뭇잎을 찾으려 우리나라 각지의 산을 다니며 나뭇잎을 수집하고 실험을 반복해야했다.
시간축적에 따른 성숙함과 변화의 조화
그림과 오브제 선보일 <외도전>구상
작가의 작업이 변화하는 과정은 시간이 축적됨에 따라 성숙해 가는 쪽이 있고, 종전의 것에서 탈피한 새롭게 시도되는 쪽이 있다. 알에서 애벌레로, 애벌레에서 번데기로,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태하듯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성숙해진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 30여년을 도예와 관련한 연구와 작업에 몸담은 그에겐 적어도 연륜이 헛되지 않았음을 축적된 작품들과 현재의 작업이 보증하고 있다. 연륜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이듦이 아니라 지난세월을 보상받을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에게도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있고 생활이 있다보니, 하고 싶은 작업을 아이들이 성장한 후로 미루기도 합니다.” 예쁘게 만들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했던 작업보다 이제는 좀더 작가 이세용다운 작업을 하고자 한다. 자신을 드러내는 언어로서의 작업을 말이다. 도자기위에, 캔버스위에 그림도 그리고 오브제 작업도 시도해 보려한다. 다음번 개인전은 아마 <외도전>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수십년간 도자기를 했고 그릇을 위주로 작업했는데 다른 것도 해보고 싶지 않겠어요? 그림도 그리고 오브제도 만들고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이세용의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대상을 단순한 대상으로 보지 못하는 굴절된 망막 구조를 갖고 있는 내게 있어 이번 전시회는 또 다른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꽃보다는 그 주위에 존재하는 것들-(중략)-명쾌하고 싶으나 늘 명쾌하지 못한 시선이기 때문에 늘 내 시선보다는 정리해서 갈무리한 것들만 보여 주다가 이번에 보이는 대로를 처음으로 도자기와 평면에 옮겨 놓았다. 처음으로 날 내보였다.”-월간도예 2005년 1월호 중 작가의 말-새삼 자신에게 더 솔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작가의 다짐을 상기해 본다. 시종일관 도자기를 보여주고도 이번에 보여준 도자기로 처음으로 자신을 내보였다는 작가의 말이 앞으로 보여줄 작업들에 대한 기대를 안겨준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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