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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희순
  • 편집부
  • 등록 2005-04-26 22:39:58
  • 수정 2015-08-27 21:3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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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꺼먹이가 좋아 라쿠기법으로 작업 남들보다 멀리 돌아온 도예인생은 유희의 과정 튼튼한 집게로 벌겋게 달아올라 불덩이처럼 투명해진 도자기를 가마에서 꺼내 톱밥 속에 묻는다. 붉은 불길이 휘익 치솟으면 톱밥통의 뚜껑을 닫기도 하고 그대로 두어 불을 피우기도 한다. 라쿠번조 광경은 마술 같다. 톱밥에 불이 옮겨 붙고, 검고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석양처럼 붉었던 도자기는 검게 변한다. 물에 담가 닦아 내니 온통 검둥이가 된 줄 알았던 기물에 아른아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톱밥연기를 먹인 검은색 속에 갈색 회색 주홍색 누런색 남색 등 갖가지 색들이 들어있다. 꺼먹이 그릇이 좋아 라쿠기법의 작업을 하는 도예가 이희순(50)은 검은색이 갖고 있는 변화무쌍한 화려함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작가에게는 꺼먹이 그릇의 역사적 과학적 우수성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검은색이 갖는 아름다움만으로도 몰두할만한 이유가 된다. 6번째 개인전 한층 정돈된 조형미 구현 도예가 이희순은 얼마 전(2005.2) 인사동 통인옥션갤러리의 초대전으로 6번째 개인전을 갖게 됐다. 다른 장소라고 해서 같은 작품을 다시 보여주기를 꺼리는 작가는 지난해말 뉴욕통인갤러리에 선보인 전시작들을 서울에서 다시 전시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새로 제작해 선보인 이번 작품들은 기하학적 형태와 종전보다 간결한 문양으로 한층 정돈된 조형미를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라쿠번조를 하기 위해서 라쿠를 하는 것이 아니고 검은 색을 내기 위한 방법입니다. 지금 작업공간이 장작가마 번조가 어려운 여건이어서 저에게는 라쿠가 적합했습니다. 물론 앞으로 장작가마 등의 다른 기법으로 꺼먹이를 시도할 계획입니다.” 88년부터 라쿠작업을 해 온 작가는 다양한 변화와 실험을 겪고 나서야 익숙하게 자신이 계획한대로 작업을 완성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자신이 의도할 수 있는 부분이 점차 많아졌다 해도, 라쿠번조는 같은 재료, 같은 방법으로, 번조해도 그때 그때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준다. 한강변 붉은 흙과 화장토장식과 꺼먹이 단순한 조형과 분청 장식기법을 응용 검은색이 갖고 있는 어둡고 암울한 이미지는 이희순의 꺼먹이 그릇에서는 달라진다. 선사토기와 몽촌토성의 재료이기도 했던 한강변의 붉은 흙과 화장토의 경쾌한 대치와 여기에 배경이 된 검은 색은 단정하다. 은근한 화려함을 감추고 묵묵히 배경이 되기도 하고 투각과 음각 등으로 장식성을 더하기도 한다. 직접 수비한 한강변의 흙으로 선사토기의 단순한 조형을 토대로 성형한다. 상감 인화 덤벙 등의 우리 전통 분청기법을 응용해 장식한 후 원래의 색을 남기고 싶은 부분에 투명유를 시유한다. 이후 라쿠 번조로 시유되지 않은 부분은 검은 연기가 침투해 검게 변하고 분청부분의 균열도 검게 변한다. 시유하지 않은 꺼먹이 부분도 층위를 나누어 시차를 두고 톱밥에 묻거나 톱밥의 재료를 다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변화를 의도한다. 작가는 번조과정에 계획된 변화를 의도하고 의도와 우연함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검은색에 흥분을 감추질 못한다. 이희순 도예가에게는 고화도자기와 저화도 라쿠도기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고화도 자기는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고 저화도 토기도 나름대로 장점을 갖는다. 고화도에 비해 화려한 색감이나 자유로운 표현은 고화도보다 단단하지 못하는 단점으로 일축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저화도 번조기법인 라쿠만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근 20여년간 작업하고 있는 라쿠기법에 안주하지 않고 고화도 꺼먹이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자신에게 충실한 본연과 자유로움은 고정관념을 떠나 나만의 정도를 걷는 비결 도예가 이희순은 남이 정해 놓은 길을 가기보다는 스스로 정한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자유롭게 자신의 길을 걷는다. 대학 재학시절 군제대 후 복학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했다. 이후 다시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껴져 복학해 학교를 마쳤다. “필요할 때에 공부를 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빠르게 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선별할 수 있었습니다. 작업하면서 의구심을 품었던 것들을 학교에서 해결하고자 했고, 얻어야 될 것들을 알차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작업만 하다가 대학원에 다닐 필요성이 느껴질 때 다시 대학원을 다녔습니다.” 대학교 2년을 마치고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빠른 것인지, 76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졸업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걸렸으니 남들보다 느린 것인지 모호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자유분방함 속에는 자기 자신에 충실한 본연의 모습이 내재돼 있고, 세상의 관념에 매이지 않는 과감함이 있다. “때때로 남들보다 천천히 가지만 제가 늦는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모교인 서울산업대학교 도예과에 라쿠 강좌가 개설되고 이 강의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라쿠는 번조상의 편리함 때문에 게으른 학생들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하는게 안타까웠습니다. 즐거움이 있다면 먼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스스로 ‘그때는 철이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해왔던 20대 초반의 작업들로 많은 시행착오를 직접 겪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남들과 비교하면 느리지만 스스로 즐겁게 멀리 돌아온 길은, 그를 과정에도 충실한 작가로 만들었다. 관람자와 공유하는 완성품 이면에는 작가자신만의 유희와 번뇌가 담겨 흙을 파다가 수비하고 밟아 성형하고 번조하기까지의 작업과정은 작가자신의 유희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번뇌의 시간이다. 도예가 이희순은 “작품은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작자와 관람자가 공유하는 결과물과는 달리 작업과정은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여러 즐거운 요소들이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이 시간을 최대한 즐기려고 합니다.”라고 말한다. 인근 지역의 흙을 사용해 각 지역마다 흙의 성질에 따라 정착한 도자기의 지방색이 갖는 의의를 크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흙이 도자기의 바탕이기 때문에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작업장과 살림집이 나란히 붙어있어 이희순씨가 대부분의 시간을 지내는 서울 상일동은 선조 대대로(7대) 살아온 곳이다. 8년전부터 이곳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이제 재개발계획에 밀려 자리를 내주게 됐다. “서울 외곽지역이긴 해도 장작가마는 땔 수가 없었는데, 어쨌든 작업장을 옮기면 장작가마 작업도 시작할 계획입니다.” 가까운 데에 우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서울 밖에 터를 잡아 1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꾸준히 새로운 작업장을 자신의 손으로 지을 계획이다. 60의 나이에 완성될 작업장 계획하는 도예가 이희순에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처럼 남들과는 무관한 여유로운 행보가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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