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전신연 _ 도예가
필자는 지난 2월 25일과 26일 양일간 미국공예협회에서 주최하는 <미국공예협회 볼티모어쇼2005American Craft Council Baltimore Show 2005>에 다녀왔다. 이 쇼는 미국 전역의 6지역(Baltimore, Atlanta, St. Paul, San Francisco, Charlotte, Sarasota)에서 1년에 걸쳐 차례로 열리는 행사로 볼티모어의 쇼는 그 중 제일 규모가 큰 행사이다. 쇼는 모두 엿새간 열렸다. 2월 22일부터 24일까지는 wholesale show로서 사업자 등록을 한 갤러리 소유주, 콜렉터, 기자만이 입장할 수 있었고, 25일부터 27일은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올해로 29번째 열린 볼티모어 쇼에는 미국 각 지역에서 참가한 약 650여명의 재능 있는 작가들이 엄정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었고, 볼티모어 컨벤션 센터의 각 부스는 참여작가들의 아름다운 작품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은 도예를 비롯해 유리 금속 종이 섬유 장신구 목공예 등 공예작품들과 입체오브제 조각 작품까지 총망라되어 있었다.
예년과 달리 새롭게 시도된 내용은 볼티모어, 워싱턴 D.C. 지역에서 활동 중인 최고 인테리
어 디자이너 3명이(Mary Douglas Drysdale, Victor Liberatore, Shari Daniels) 행사장의 일부에서 전시 작가들과 협력해 그들의 작품을 이용해 설치공간을 활용한 것이었다. 전시장의 곳곳에는 실내 혹은 야외에서 어떻게 공예작품이 배치될 수 있는지, 작품들이 놓임에 따라서 공간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는지의 예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디자이너들의 독특한 시각과 최고수준의 작품이 어우러져서 완벽하게 재창출된 공간이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필자는 이번 볼티모어쇼를 둘러보면서 많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보는 것에도 의의가 있었지만, 직접 작가들과 대화하고 몇몇과는 깊이 있는 인터뷰를 하면서, 대규모 공예쇼에 참가해 적극적인 자세로 관객과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또한 많은 수의 참여 작가가 이러한 쇼에서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함으로써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본 지면을 통해 필자의 견해로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판단되는 세 명의 작가들을 소개해 보겠다.
린제이 페어Lindsay Feuer
올해의 세라믹 조각상을 수상한 린제이 페어Lindsay Feuer는 10여년 경력의 세라믹 조각가로 실물의 유기적인 형태와 자연의 모습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다시 직관적인 작업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포셀린을 이용해 섬세하고 얇은 꽃잎이나 꽃술, 긴 줄기 등을 손으로 누르고 늘리고 하며 형태를 잡아 나간다. 모든 형태는 속이 빈 상태로 하나하나 더해 나가는 과정을 거친다. 때때로 그녀는 슬립을 써서 표면 장식을 하기도 한다. 천천히 말리는 과정을 거쳐 Cone10에서 한번 번조로 마무리한다. 작품의 표면에 유약을 사용하지 않고 포셀린 자연의 색 그대로를 살리는 것을 좋아한다. 자연에서 따온 이미지 위에 유약을 입히지 않고 원래의 포셀린색 그대로를 사용하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재창조 행위의 결과로서 보다는 자연에 존재하던 객체를 새로운 공간에 재배치한다는 데에 의미를 더욱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인위성이 최대한 배제된 상태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공간이나 해석을 반영하여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고자 한다. 그녀는 템플 대학의 타일러 예술 학교Tyler School of Art에서 M.F.A.를, 펜실베니아 주립대Pennsylvania State University에서 B.F.A.를 취득했다.
테리 게스Terry Gess
테리 게스Terry Gess는 노스캐롤라이나 서쪽에 있는 ‘블루 릿지 마운틴 스튜디오Blue Ridge Mountains’에서 작업하는 전업 도예작가이다. 그는 작품의 유일성을 중요시하는데, 전업작가들이 기계처럼 똑같이 만들어내는 반복적인 행위에서 나오는 완벽한 원이나 전혀 흠이 없는 도자기보다는 약간 변형되었거나, 불완전한 형태를 좋아하고, 표면은 패턴 장식이나 붓을 이용하여 간단한 도형을 그려 넣기도 한다.
그는 서너 가지의 다른 포셀린 슬립을 도기의 표면에 입히고 프로판 가스를 이용해 소금 번조를 한다. 또한 슬립 표면에 유약을 입히거나, 담금기법을 이용해 발생하는 슬립과 검정 유약의 색상의 대비를 즐겨 사용한다. 그는 쿠바나 인디안 의복 디자인, 패턴, 혹은 체커 보드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이것은 종종 관객들이 그의 작품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아주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리는 남일리노이 대학에서 M.F.A.를,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 예술학교Cleveland Institute of Art에서 B.F.A를 받았고, 1998년부터 3년간 노스캐롤라이나의 펜랜드 공예학교Penland School of Crafts에서 레지던트 아티스트로 지낸 바 있다.
라우라Laura Jean McLaughlin
올해로 3년째 ACC쇼를 방문하며 어떤 작가는 매년 똑같은 작품을 들고 나오는 반면, 조금씩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들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후자에 속하는 라우라Laura Jean McLaughlin는 올 행사에 더욱 릴리프적이고 초현실적인 요소들이 기존의 작품에 가미된 흙 조각, 베이스, 병vessels, 접시 등을 선보였다. 인간미가 넘치는 라우라는 그녀의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나온 그녀의 삶, 스승들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펜실베니아 피츠버그의 열한명의 형제 중에 하나로 자란 그녀는 언제나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소망이 있었지만 주위의 기대로 의학 기술medical technologist을 전공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마지막 학기 때 수강했던 도예수업에서 그녀의 새로운 열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고임금의 병원 연구실을 떠나 전액 장학생으로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교West Virginia University의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정규 미대 실습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작품을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어떤 것을 피해야 하는지, 아트 작품이 어떻게 보여져야 한다든지 하는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 직관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졸업한 웨스트 버지니아 대학원은 물레작업 중심의 전통적인 도예수업방식을 중요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지도교수인 밥 엔더슨Bob Anderson 교수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그녀는 전기가마 번조방법조차 모르고, 물레작업 한 번 안 한 상태였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그녀는 물레작업을 거의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사발과 접시는 제형기와 플래스터 몰드 작업에서 나온다. 흰색의 스톤웨어나 포셀린을 써서 형태를 만들고 화장토를 입힌다. 그 후 조각칼로 깎아내거나 판화기법을 써서 이미지를 남기고 바탕을 따내어 나간다. 성형된 기물에는 저온 투명유약을 입혀서 cone9 번조로 마무리한다. 일상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위 등이 그녀의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나온다. 그녀는 계획하거나 미리 생각하지 않고 작품에 임한다. 그리고 두 번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의 직관적인 이런 작업방식은 미국의 펑크운동funk movement, 초현실주의 운동surrealistic movement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즉, 그녀의 작품은 정물화나 인물화처럼 일부러 의식하고 보이는 대로 그리고 순서대로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기억이나 생각들이 직접적으로 흙을 만지고 깎아내고 하는 순간에 자연스럽게 형태화, 구체화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에 입혀진 이미지들은 심리적인 갈등struggling과 혼란chaos, 폭력성violence 등 우리들의 생활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들을 암시한다.
이상과 같이 필자가 2005 ACC 쇼에서 본 몇 작가들을 소개해 보았다. 쇼의 홈페이지 http://www.craftcouncil.org/baltimore에는 분야별 참여작가와 작가의 홈페이지 링크가 있다. 이번 쇼를 통해 느낀 것 중 가장 큰 것은 참여한 대부분의 전업작가들이 이 쇼를 그들의 작품을 판매할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고, 행사장을 찾은 일반관객이나, 갤러리, 콜렉터들 또한 좋은 작품을 한곳에서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액수는 알 수 없지만, 로드아일랜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금속공예가 이홍석 씨의 말을 빌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공예작가들은 볼티모어 ACC쇼를 비롯한 3~4회 정도 큰 쇼에 참여하면 충분한 전업작가로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모든 작가들의 작품이 잘 판매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오로지 예술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조각 작품 등은 가격이 대중화되지 않아서인지 부스 앞이 한산해 보이기도 했다. 예술성, 대중성, 독창성 등 예술가가 지녀야 하는 특성을 생각해볼 때, 창작에만 몰두하고 생활에 신경을 쓰지 않는 작가, 아니면 마케팅에도 눈을 돌려 작품 제작과 판매에 균형을 맞추는 작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옳은 길인지는 이 글을 읽는 작가 분들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필자약력
이화여대 미술대학 BFA
미국 메릴랜드 프레데릭 후드 대학원 도예과 CE
미국 메릴랜드 그린벨트 시티 커뮤니티센터 레지던트 아티스트 (2001~2004)
현, 메릴랜드 타우슨 대학 도예 전공 MFA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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