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과 예술의 이상적 동거
글 윤두현 _ 독립큐레이터
공예의 한 범주로서 도예에는 생활과 예술이라는 일견 서로 쉽게 곁을 내주지 않을 듯한 두 개념이 동거하고 있으며, 또한 이는 그 존재론적 근거로서 요구되어 왔다. 하지만 그간 생활과 예술의 동거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은 더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눠요 갤러리의 <이세용 도예전>은 하나의 방법론적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는 전시였다.
이세용의 작업 방향은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재료의 치밀한 연구, 도예에 대한 회화적 접근, 기물의 다양한 조형적 가능성 시도가 그것이다. 먼저, 기존의 재료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각 지방의 산천을 떠돌며 새로운 재료들을 찾아내 자료화하는 것은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고 언어적 자율성을 확장하기 위한 작가적 노력이다. 비단 도예뿐 아니라 미술 전반에 걸쳐 재료에 대한 과학적 이해와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형식이나 매체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스스로 제약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세용의 재료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두 번째로 도예를 전공하기 전 회화과에 잠시 적을 둔 적도 있는 작가는 도예에 대한 회화적 접근을 꾸준히 시도해 오고 있다. 그 결과 뱀, 사슴벌레, 애벌레, 꽃 등 주로 코발트에 의한 갖가지 친근하고도 소박한 민화적 도상이 백자의 기면과 절제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물의 다양한 조형적 가능성에 대한 실험은 공간을 능동적으로 반영하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도예의 존재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쓰임이라는 기능성과 공간예술raumkunst로서의 조형성에 대한 동시적 고려다. 즉 일상적 공간에서 기물이 어떤 조형적 형태로 어우러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정리하여 보면, 이세용의 이러한 작업 방향의 근저에는 공예로서의 도예는 곧 삶의 총체성으로서 생활이자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명확한 인식에 근거한 치밀한 노력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후관계는 좀 더 포괄적인 맥락에서 다시 살펴봐야 할 것이지만, 생활과 예술의 불협화음은 주로 생활이 배제된 단면적 예술성의 추구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예술성에 집착하면서도 정작 그에 대해서는 표피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왜곡된 인식과 접근으로 일관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진정 그렇다면, 전통의 현대적 가능성이라는 필생畢生의 화두를 안고 재료, 회화, 형태에 대한 부단한 고민과 노력을 지속해온 도예가 이세용을 우리는 반드시 주목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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