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미학과 담론의 활성화
한국전통도자의 미의식
글 이복규 _ 도예가
조선에서의 도자에 대한 미의식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와 연구는 오랫동안 이어져 왔지만 이성적인 측면이 아니라 감성적인 미에 대한 의식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고 연구해온 것은 서양에서도 겨우 18세기에 이르러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체계화 시키는 과정에서 또 다시 이론의 틀 속에 묶이면서 일반인들과는 상당한 거리를 갖게 된다. 또한 가치로서의 미, 현상으로서의 미, 미의 체험을 연구하는 미학은 19세기 후반에서야 관념론의 사변적 미학을 대신하여 경험주의와 결합하면서 비로소 실질적인 미 이론美理論을 구축해 나간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연구 분야로 발전하게 된다.
동양에서도 미에 대한 연구는 정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미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도자기는 고대에서부터 사용되어왔지만 서화書畵에 밀려 특별한 직인들에 의해 생산되는 일용품으로서의 아름다움만 인정을 받아왔다. 또 오늘과 같은 도자로서의 의식보다는 그릇으로서의 인식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릇을 아름다움의 주체로서 인정한 것이 일본의 다인들이었다고 본다. 서양에 앞서 16세기에 생활 속의 아름다움에 대해 눈을 뜨면서 구체적으로 이를 대상으로 사유하고, 실험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단계를 거친다.
그러나 고려와 조선에서의 도자의 미에 대한 담론은 찾기 힘들다. 그것은 도자 미에 대한 것뿐 아니라 우리문화 전체와도 관련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몇 가지 측면으로 살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우리의 말과 글이 달랐다는 점이다.
도자에 대한 기록은 생활에 대한 기록이어야 한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말과 그것을 기록하는 글이 다름으로 인해 식자들만 기록을 할 수 있고, 설혹 기록을 한다고 하여도 감성적인 표현을 이성적인 글로 표현해야하는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로 조선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의 범주 안에 도자기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자의 미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생활과 신변잡화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선사회에서는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왕도 정치와 도덕적 가치 기준의 설정과 그의 해석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므로 도자를 비롯한 생활 관련한 공예에 대한 관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신분사회에서 도자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와 구성 그리고 도자기를 만드는 곳의 지리적 위치가 제도권에서 밀려나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의 도공들은 가장 낮은 신분을 갖고 있었으며, 생활 근거지도 다른 신분 사회와 구분되어 있었으며, 중앙 집중적인 제도에서 중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고, 감독기관에 의해 엄격한 생산통제가 이루어져 있으며,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연계 기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넷째로 도자기의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과 인접해 있고 그와 유사한 그리고 자신들의 일상에서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도자문화를 누리고 있었기에 그의 아름다움에 눈을 돌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생산을 할 수 없거나, 어렵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만든 것보다 뛰어난 도자기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일본과 유럽처럼 광적인 관심은 유발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도자기에 대한 미적인 관심을 고취할 수 있는 상황은 없었기에 우리 도자에 대한 아름다움은 감춰진 채로 우리 생활 속에 묻혀져 있었다.
일본의 다도와 도자기
조선도자의 미에 대해 언급을 할 때마다 서두에 일본의 다도와 야나기무네요시의 민예론을 꺼내야 함에 심히 불만스럽고 조심스러우며 그런 가운데 위축된 나를 보게 된다. 그러하기에 더더욱 이런 담론의 시작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며, 언제가 새로운 우리만의 시각으로 우리 도자기의 미를 볼 수 있기 바라면서 글을 계속한다.
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일본에서의 우리도자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것은 다도였다. 초기의 일본다도에서는 서원차라고 하여 화려한 명품을 뽐내고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일종의 사교적인 모임일 뿐이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접하고 그것을 즐기겠다는 생각은 자신이 위치한 공간을 인지하고, 그 속에서 구성 요소들 간의 상호 기능과 역할에 대한 사고를 넓혔다는 점에서 오늘날 일본 실내 장식의 기본을 성립하게 하였다. 뒤 이어 일본의 승려들과 차의 선지자들이 차에 정신적인 요소를 가미하게 된다. 넓고 화려하고 귀한 것으로 치장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비록 부족하고 단출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마음의 충족을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화려한 공간이 아닌 초옥에서 세속을 벗어나 모든 것을 버리고 인간의 본질을 붙잡으려는 정신세계로서의 차 공간을 마련하게 된다.
이 차 공간을 구성하는 그릇으로 중국의 화려한 그릇도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도 없는 치졸한 일본의 그릇으로 채울 수 없었다. 그들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공간 그곳에 어울리는 것은 그와 같은 공간에 놓였던 그릇이어야 가능했다.
이들이 만든 공간은 조선의 초가집 사랑의 구조와 흡사한 공간이었다. 서원처럼 넓지도 않았고, 큰 문이 달려 환한 곳도 아니었다. 사람 출입에 필요한 작은 문, 채광을 위해 작은 봉창이 하나 있을 뿐인, 나무골조에 황토로 마감한 아무런 장식도 없는 벽, 방을 들어서기 위해 견고하고 치밀하게 만든 마루가 아니라 디디기 편한정도의 댓돌이 갖추어져 있었을 뿐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시골 사랑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지금까지의 일본 건축양식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자연주의 양식을 지니고 있었고, 많은 자연 재해를 통해 완벽성을 추구하던 일본인의 정신세계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그런 구조였다. 지금까지 차그릇으로 사용해오던 중국의 명품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에는 명품보다는 그런 공간에서 사는 사람이 사용했던 그릇이 더 어울리게 된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조금씩 변화되어 가장 합리적이고 어울리는 문화로 형성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일본 다인들에게는 그런 그릇이 필요했고, 조선의 사발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것이다.
조선의 그릇은 그렇게 일본의 차실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된 것이다. 여기에서 일본의 도자기에 대한 미의식은 새롭게 정립된다. 단순한 다완으로서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다인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공간 속에서 아름다움의 주체로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 새로이 미의식을 정립하면서 태어난 와비1)와 사비2)라는 미의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그릇이 조선의 사발이었던 것이다. 결국 일본 미의식의 정점에 조선의 사발이 있었던 것이다. 고려다완이라는 이름의 이런 사발을 갖추는 것은 최고의 미를 구가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를 확보하려고 했던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조선의 다완은 미의 표준으로서 일본다실의 중앙에 앉게 되었다. 일본 다인들은 아름다움을 이론이 아니라 경험과 체험을 통해 공간을 구성하고 음양이론을 접목시켜 동양미의 기준을 완성 시켜나간다. 다실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어떻게 차그릇과 다른 도구를 배치하여야 가장 아름답게 보이고, 정신적인 안정감과 최고선이라고 하는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실험을 통해 정립한 것이다. 몇 세대에 걸쳐 확립된 다도의 미의식은 정치력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을 하게 된다. 그로인해 진일보하던 미의식은 제재를 받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일본의 정신세계를 이끌어 간다. 그러나 군국주의와 물질만능 시대를 걸어오면서 그 껍데기만 남아 다도 선지자들이 의도했던 실천미학이 아닌 형식미학만 남아있는 실정이다. 전후 일본의 행동은 이런 와비와 사비정신이 집권층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야나기무네요시의 민예
일본 다도의 미의식을 우리의 모든 도자기에 접목하고, 그 아름다움을 해석하려는 이가 바로 야나기무네요시다. 야나기는 일본 다도에서 정립된 미의식을 민예품에 적용하여 나름대로 새로운 이론처럼 펼쳐나간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이었고, 정치 군사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야나기가 의도했던 안했던 간에 야나기의 도자기에 대한 미의식은 상당히 정치적으로 편협된 이론이기도 하다. 다인들이 이룩해 놓은 성과를 이용해 민예를 해석했으면서도 다도와 다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그 결과물을 이용하였다. 그리고 다인들이 의도했던 것과 다인들이 그러한 결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조선의 도자기를 바라보았기에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조선도자에 대한 미학적인 접근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이를 해석한 야나기의 조선도자 미론은 여과 없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처음 접근 자체가 자신의 확고한 미론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의 글이 대부분은 미사여구와 분명한 결론이 없는 문장의 나열로 이루어졌으며, 어설픈 불교적인 접근이 자신의 부족한 미론을 합리화 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조선도자를 보는 시각은 야나기에 의존하거나 일제 강점기에 정립된 편년체적 역사 기록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폐해는 커서 우리 도자문화의 비정상적인 성장을 이끌어 왔고,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현재도 우리의 정체성을 뿌리 채 흔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야나기의 도자미론은 일본에서도 다실 밖으로 확장되어 도자기를 해석하는 유일한 잣대가 되었으며, 민예운동에 의해 그 기반을 확고히 하였기에 일본의 도자 미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세계 자기제조기술의 전파자적 역할을 했던 일본과 일본의 국력과 맞물려 전 세계의 도자 미학의 바이블처럼 여겨지고 있다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전통도자의 미학
결론적으로 조선의 도자에 대한 미는 일본 와비다법의 형성과정에서 다도 선지자들의 생각과 시각에 따라 상당부분 변질되어 정립되었다. 또 이미 밝힌바와 같이 야나기에 의해 또다시 변질되면서 정체성이 혼돈된 미학으로 남아있다.
또 우리나라에서 전통도자에 대한 미학의 일부는 사학자들에 의해 정립되어왔다. 그러나 그 기저에 사학이 위치하고 있기에 이를 해석하는데 편년체적 사고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자의 아름다움에 대해 써놓은 책 내용 대부분이 아름다움을 얘기하기보다는 역사성에 할애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다 읽고 나도 무엇 때문에 아름답다고 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대부분 독자들의 평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다도가 재정립 되면서 우리도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러나 그 관심도 우리 전통도자의 진정한 아름다움보다는 일본 다인들이 선별한 아름다움의 기준에 따른 조선다완에 쏠려있다. 물론 그것은 아름다운 명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 다인들이 뽑은 명품이고, 조선 도자 명품이 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조선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아름다움을 해석하고 정립한 것은 일본의 다인들이기 때문이다.
전통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의 정체성 위에서 부족하지만 그래도 정립되었다면, 아마도 오늘의 다완을 보는 시각은 틀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생활도자를 만드는 많은 도공내지 도예가들이 모조 다완을 만드는데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어도 새로운 도자문화를 선도해야할 대학 교수가 일본이 뽑은 조선다완 명품들의 모조품을 만드는데 혼신의 노력을 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그리고 그들에게 배운 학생들도 아무 생각 없이 모조 다완을 만들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본인도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우리 전통도자의 미에 대한 담론에 끼어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 더 문제라고 본다. 분명 우리 전통도자를 사랑하거나 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 전통도자의 아름다움을 해석하는데 갈증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와비와 사비의 독특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야나기의 미의식을 수용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의 한恨이란 정서를 다른 어느 나라 사람도 이해할 수 없듯이. 그러하기에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담론을 통해 우리 전통도자에 대한 미가 이해될 수 있고, 현대도자에 대한 방향이 설정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에 대한 정확하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정립이 있어야 현대의 이해와 방향 모색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도자는 이론이 아니라 생활이기에 서로의 생활이 다른 데에서 나오는 다양한 담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담론의 활성화로 일본의 다도 미학과 야나기의 민예론, 무미건조한 편년체적 도자미학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약력
개인전 8회 / 단체전 92회
한양공대 요업공학과 졸업
단국대학원 응용미술학과(도예전공) 수료
대구공업대학 도자기공예과 교수 역임
저서 : 도자기공예, 도자원료, 문양연구Ⅰ·Ⅱ, 소지연구,
향과 맛을 찾아가는 녹차여행
e-mail : woodkil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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