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미학과 담론의 활성화
현대도자조형의 미학 - 형식의 반란
글 강재영 _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국제전시팀장
노회한 예술장르, 도자 예술을 해체하라!
도자 분야의 연구에 있어 고고학적, 미술사적 연구 성과물들은 양과 질에 있어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용기로서의 도자는 인류의 생활사를 짐작할 수 있는 증거물이며, 각 문명권별로 양식사적 발전사, 문명 상호간의 교섭사적 연구까지 풍부하다. 그러나 현대 도자 예술에 있어 미학적, 이론적 연구는 부족한 현실이다. 현대 도예의 서적, 잡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만 다뤄진다. 흙, 유약, 번조, 가마 제작 등 도자예술의 제작 과정에 관한 것들이다. 또한 현대 도자 이론서들을 볼 때도 현대 미술사조의 형식을 빌어 현대 도예의 양식적 분류와 미적 규범을 다루는데 그치고 있다.
근대 이후 일부 도예 작품들이 기능성과 기술적 완성을 거의 배제하고 심미적 기능을 강조한 것은 기능으로부터의 독립을 그 특징으로 하는 순수미술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유발한다. 현대도자예술의 태동은 순수 예술 형식으로서 도자예술을 다룬 시초가 된다. 그 이전 근대에 일어난 미술공예운동과 버나드 리치에 의한 미술 공예 철학, 일본의 도자 미학이 도자 예술의 독자적인 맥락을 다루고 있었지만, 이는 공예로서의 도자 혹은 도자를 매체 탐구적 입장에서 도자 고유의 내부적 환원적 입장의 모더니즘적인 시각의 연구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현대 도자 예술을 다루는데 있어 광범위한 맥락에서 도예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전략적 이론 정립이 시급하다.
‘후기매체시대’라 불리는 오늘날의 미술상황 속에서 한 매체의 본질을 기준으로 한 내재적 환원이란 개념은 시대착오다. 이제 포스트모던적 사고의 패턴에서 도예와 미술을 둘러싼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전형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존의 미적 분류와 규범들을 해체·재조합하여 현대도자 조형의 새로운 범주를 논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특히 순수미술 - 공예 - 디자인 - 건축 등 모더니즘적 질서의 장르 구분이 허물어지고 있는 동시대 도자 예술의 흥미롭고 혁신적인 작품들을 해석함에 있어 작품들이 풍자하고 대립하는 규준들의 체계를 재구성해야만 한다. 이를 통해 공예 장르로서가 아닌 시각 예술의 중심에서 공정한 도자 예술의 위치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도자와 타장르와의 만남, 매력적인 이중주
포스트모던 이후 시각 예술 전반을 강타한 현상 중의 하나는 하이브리드Hybrid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주머니와도 같다. 그 안에서 응용 미술과 순수 미술은 시각 예술이라는 동일한 분류 항목으로 거기가 더욱 가까워졌고, 다양한 양식, 이론, 접근방식이 생겨났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유익 중의 하나는 미술가와 공예가, 디자이너들을 과거와 재연결 시킨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으로 형태, 양식 등의 무한한 이야기들을 창출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것은 도자 예술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잠재력을 새롭게 조명하는 단초가 된다.
흙이라는 매체가 지니는 고유의 속성을 실험하고 탐색하며 전통적 가치들을 부정하는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전통적 도예의 반란, 형식의 반란을 일으켰다. 피터 볼커스의 혁명 이후 많은 현대 도예가들이 이러한 반란을 통해 현대 도예의 다양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다. 특히 현대미술과 도예 사이의 사라져 가는 경계 혹은 현대 도자의 영역 확장을 이뤄낸 것이다.
2004년 영국의 대표적인 미술상인 터너프라이즈 수상자로 그레이손 페리Grayson Perry가 결정되었을 때 30년 이상 도자 작업을 해 온 그에게 이 상은 도예계만이 아닌 전 세계 미술계 전체에 커다란 이슈와 충격을 주었다. 전통적인 가치에 신경을 쓰지 않은 정치적인 내용의 메시지 가득한 그의 작품들(사진1)은 모든 장르의 현대 미술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화려한 등극을 하였다. 전통적인 도자 항아리 형태 위에 전쟁, 아동학대, 젠더 등의 문제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여 그의 작품은 도자와 회화라는 경계를 허물고 순수예술과 비순수예술의 우열에 대해 카운트 펀치를 날렸다.
도자 작품으로 맥아더상을 수상한 미국의 데이지 영 블러드Daisy Youngblood의 작품(사진2)은 저화도Law fired Clay 번조로 나뭇가지, 이빨, 머리카락 등의 오브제들과 결합하여 두상, 인간의 토르소, 새, 동물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작은 사이즈의 재현적이고 형상적인 조각들은 손상되기 쉬운 재료의 취약성을 예술성으로 이용하여 명상적이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현대 도시인의 삶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자연 세계와 인간의 본질에 대한 탐구로 원시성과 자연 환경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흙의 물성을 조형적 매스로 다뤄온 거대한 추상 도조들과는 상이하게 또 다른 차원의 매체적 접근이며, 조각과 도자 사이의 매력적인 결합을 보여준다.
폴란드 출신의 도자 디자이너 마렉 세쿨라Marek Cecula는 도자 디자인과 개념미술의 새 장르를 열었다. 하찮은 도자 접시 위에 디지털 전사 기법으로 전통 회화의 이미지를 복제하여 3차원의 회화를 완성하기도 하고, 페르시아 카펫의 전통 문양을 프린트 하여 거대한 도자 카펫(사진3)을 제작 발표했다. 기계 생산되는 산업 도자의 접시가 설치 미술로 확장되고, 디자인과 도자 예술 간의 가로지르기를 시도한 예이다.
후기 미니멀리즘의 세계적인 작가 제임스 터럴James Turrel의 인테리어와 도자 디자인(사진4, 5)은 예술가에 의한 디자인의 모델이 된다. 18세기 후반의 웨지우드의 흑색 자기를 변형하여 현대적 문맥에 재배치하여 가구디자인과 그 선반 안에 놓인 흑색 도자 용기들을 진열했다. 아이리쉬 도자 용기의 전통을 재해석하여 도예가와 함께 공동 작업한 그의 작품은 미술 - 디자인 - 인테리어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는 시도이다.
위의 네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했지만, 도자 예술의 영역 확장은 도예계 내부뿐만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최근의 도예 연구가들이 조각, 건축, 생태, 문명사 등으로 학제적 연구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경향은 동시대 도자 미학의 이론 정립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미의 형식과 도자예술의 범주와 형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보다 광범위한 논점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도자와 회화, 조각, 환경미술, 개념미술, 건축, 디자인까지 장르간의 연결고리를 찾고 발전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도자 예술 이론의 재정립
지난 4월에 이천에서 국제도자학술회의가 열렸을 때 다뤄졌던 논제가 이러한 확장된 현대 도자 예술의 방향성을 타진하는 것이었다. 작가, 큐레이터, 저널리스트, 이론가들이 모여 전시 큐레이팅과 디스플레이, 도자 이론과 저널리즘 등의 폭넓은 주제를 가지고 논의하면서 도자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상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도예계 내부의 인사뿐만 아니라 현대 미술계 일반의 이론가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도출한 내용은 이제 도자예술을 어떻게 재정립하는가로 좁혀졌다. 그러나 동서양의 시각 차이는 분명히 드러났다.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마와기 가츠오는 서양의 미학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양의 도자 미학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예작업을 도자 매체 내부의 근원적인 이론으로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네덜란드 유럽도자센터 쿠스 드 종은 도자 예술의 연구와 실험을 통해 도자라는 매체의 새롭고 신선한 측면을 다루는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도자와 건축, 도자와 패션, 도자와 디자인 등 시각 예술 전 장르의 작가들을 초대하여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그러한 실험과 연구를 통해 차원 높은 도자 예술의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수공성과 공예성의 전통이 뿌리 깊은 동양의 특성으로서는 도자 예술이 최고 경지의 예술 형식으로 간주되고 있는 관점을 보여주며, 순수미술과 공예 사이의 우열이 명확했던 서양의 입장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둘 사이의 전복을 통한 새로움과 혁신을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도자를 바라보는 관점이 중심을 향해 안쪽으로 향하느냐 밖으로 향하는냐의 문제인 것이다. 재료, 기술 등의 도자 기술적 측면을 강조하여 도자 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특질을 도자 이론의 핵심으로 귀결시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이나 도자이론의 부재 속에서 일반화된 현대미술 이론을 무조건적으로 대입시켜는 입장은 모두 반성이 요구된다. 자넷 코플러스Janet Koplos가 지적했듯이 도예 비평은 지나친 자기 옹호적 입장과 자기 방어를 위한 배타성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도예가 미술 속에 일방적으로 흡수된다는 위험성을 과감히 뛰어 넘어야 한다. 전통의 변형과 도자 미학의 근원적인 원리 탐구 VS 새로움과 혁신의 모색은 대립적이고 이분화 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융합을 통한 새로운 도자 예술 이론 정립의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도자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와의 교차, 융합을 통해 현대 도예에 나타나고 있는 혼재적·다중적 현상들을 분석하고 재정립해야 한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환기미술관 큐레이터, 미술평단 기자 역임
문예진흥원 기금 수혜 - 일본 아이치현미술관 큐레이터 연수
현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국제전시팀장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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