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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상차림과 참살이 - 전통식문화와 도자상차림의 흐름
  • 편집부
  • 등록 2006-01-12 10:2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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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상차림과 참살이
전통식문화와 도자상차림의 흐름 
글 김명란 _ 수원대학교 공예디자인전공 교수

 

자연식품 수렵, 채취시대 - 조리용기출현
우리나라 식생활의 전통은 구석기시대 자연식품을 수렵 채취하던 시대를 지나 신석기시대부터 토기가 발명되면서 문화형태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지구촌 어느 곳에서나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이 이 신석기시대 토기의 출현이다. 앨빈 토플러의 제3의 파도 중 제1의 파도혁명이 바로 이 토기의 발명에 의한 인류생활문화의 변혁이다. 특히 식생활문화는 먹을 것을 쫓아 수렵 채취하던 유랑민들이 음식물 저장하면서 한곳에서 정착생활을 하고 계획적으로 생활도구들을 제작하게 했다. 따라서 인류에게 있어서 토기의 발명은 생활문화를 발전시킨 주요 원인이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인 패총을 보면 주된 식품이 어패류였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토기시대라고도 불려질 만큼 북유럽과 시베리아에 걸쳐 광대한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빗살무늬토기의 기본형은 뾰족밑토기이다. 초기의 토기들을 보면 바닥에 그을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조리용기와 배선용기(조리용기에서 담아내는 용기)양쪽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아프리카와 중국산지 등에서 조리된 음식을 그릇에 담아 손이나 식봉 등으로 식사를 하는 것을 보면 신석기인들의 식생활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사진1-성산패총사진, 화덕형태)  

 

청동기시대 - 저장·배선配膳용기
청동기나 농경문화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면서 빗살무늬토기는 민무늬토기로 바뀐다. 민무늬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보다 경도가 높지만 흡수성이 있다. 민무늬토기의 대표적 기형인 항아리형과 바리형을 보면 이미 식기의 기능이 분화되어 액체성 음식물을 담는 용기와 배선용 식기류가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당시 음식기 형태의 다양함을 알 수 있는 것은 중국 은대 청동기제의 정鼎:솥, 두豆:굽이 있는 고깃국을 담는 그릇와 같이 우리나라 토기의 형태에서도 기능적 형태가 다양해져서 조리용이외에 저장, 배선용기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철기시대 - 주·부식 분리와 배선용 식기 발달
농경중심의 부족국가시대에 들어서면서 곡류를 중심으로 하는 주식생활이 시작된다. 즉, 주식과 부식이 분리되어 농업중심 경제시대의 국가적 행사로서 곡물의 신에게 제사하는 제천의식이 있었던 것이다. 신에게 제사할 때는 연일 주야 음주가무를 했는데 오늘날도 제사 때는 필히 술을 올리는데 이것은 이 시대로부터 전해내려 온 풍습이다.
농경생활이 정착되고 식생활이 다원화되면서 식기역시 주식기(밥그릇), 부식기(반찬그릇)형태로 차별화되고 당시 중요 행사였던 제천의식용의 의식용식기는 배선용식기의 대표격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시대의 식기는 생활용기로는 연질토기가 일반적이었으나 등요登窯에서 구워진 경질토기(김해식 토기)가 제작되면서 연질토기는 조리용으로 국한되고 제작량도 줄어든다. 당시 배선용 식기의 종류는 바리형, 접시, 잔, 손잡이달린 컵(사진2) 굽달린 그릇高杯이 대표적이며 특히 고배는 이후 크게 유행했던 기물로써 신라, 백제인들에 의해 일본에서도 나라시대까지 대량으로 제작되었다.

 

삼국시대 - 식기의 다양화 그리고 신라경질토기
삼국시대의 논농사 정착은 농경경제의 식생활 안정과 함께 계층화한 신분제도로 식생활자체를 귀족식과 서민식으로 분리시켰다. 이 시기엔 메주를 발효시킨 장제조에 따라 식품저장 방법이 발달했고 주요 부식으로 된장, 간장에 절인 김치 등이 특기할 만하다. 그외 특기할 만한 것은 기호품으로 당나라에서 수입한 차茶를 제물로 사용했고 일반에는 그 대용으로 5곡을 볶은 차나 오가피, 오미자, 구기자의 열매를 볶아서 차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통일신라시대 귀족층의 연회식이 사치스러웠음을 알 수 있는 것이 수구에 잔을 띄우고 시를 노래하며 즐겼던 포석정이다. 안압지의 유물을 보면 식기의 재료도 다양해지는데 귀족계급 밥그릇은 금, 은, 금동제의 최고급품의 기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용도에 따라 그릇의 형태가 다양해지는데 배선용의 바라기(춤이 낮은 바리형 접시)와 토기 제품의 풍로, 접시, 완 등의 야외용(피크닉용) 식기 등도 출토되고 있어서 당시 귀족들의 풍류를 알 수 있다.

 

고려의 식생활 변천시대 - 식기의 고급화 그리고 고려청자
고려시대 관료제도의 발달과 불교적 분위기가 귀족문화를 꽃피웠고 도살, 어류까지 살생을 금하였던 적도 있으나 몽고전쟁으로 육식이 확산된다. 고려시대엔 금속식기에 차등을 두어 신분에 따라 사용을 금했다. 한 예로 청자제품은 귀족계급에서만 쓰였고 그 수량도 극히 한정되었다.
차문화는 궁안에 차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자세한 사용은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의 청자상감국화문 탁잔, 석류형 주전자 등을 보면 고도의 번조기술로 최고의 예술품을 제작하였으니 당시의 도자식기문화의 수준높은 조형감각과 식기의 고급화를 증거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한식의 발달과 완성시대 - 식기의 정형화 그리고 조선백자
조선시대는 농사직설農事直說 등의 농서農書와 풍향관측기, 우측기, 태양시계, 물시계 등을 만들만큼 과학적인 농업기술이 크게 발달했던 시대로 유교의 이념과 대가족 제도 확립에 따라 식생활도 정비되었다. 기본적인 상차림은 오랜 전통과 풍습대로 밥과 국, 김치, 나물류로 이루어졌는데 각 가정의 웃어른께 드리는 진지상은 반상飯床이라하여 반찬의 내용은 같은 식품, 같은 조리법으로 겹쳐지지 않도록 3~9첩까지 여러 단계의 원칙을 규범화했다. 보통은 3, 5, 7첩이고 대가나 궁중에서는 9첩 또는 12첩을 쓴다. 첩이란 뚜껑이 있는 반찬그릇을 말하며 국과 김치를 제외한 반찬그릇의 수효에 따라 첩수를 센다. 이와 같은 반상의 규범에 따라 식기도 ‘반상기’로 정형화되었다. 상차림의 종류에는 반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객상客床, 돌상, 명절상, 연회상, 궁중수라상 등 다양한 형식이 확립되었다.
조선시대 식생활에서 특기할만한 것은 고춧가루의 전래이다. 고춧가루의 전래는 한국 식생활사에 일대변혁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도자기는 초기의 분청사기가 임진왜란을 분기점으로 그 자취를 감추고 백자류를 중심으로 순백자, 철화백자, 청화백자 등이 생산되었다.

 

19세기 식생활의 다양화시대-서구화된 대량생산 식기
개화기의 서양식품과 요리법 등이 전해져서 한식과 양식의 혼합식이 되어 식생활이 다양화 된다. 따라서 서양식사법이 한국의 전통적 식생활 속에 정착되면서 식생활상의 2중 구조를 형성하여 쌀밥대신 빵, 숭늉대신 커피와 우유, 젓가락대신 포크 오목한 바리형 접시대신 서양의 편평한 바라진 접시를 쓰게되어 재래의 식습관과 혼합되어 병용된다. 1945년부터 한국의 대표적 식기업체로 ‘행남사’, ‘대한경질도자기’ 등이 설립되어 57년부터 근대화과정으로 터널가마가 설치돼 대량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식기 제조 공장들이 증가했지만 재래시설에 의존하는 소기업이 대부분이었는데 60년 이후 식기류를 주도하는 도자기산업이 급속히 발전, 제품의 고급화가 진행된다. 도자식기제품의 대부분은 서양의 시설, 기술 등을 도입했기 때문에 제품, 디자인 등은 서양식 그대로의 서양식기들로 생산·소비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전통과 단절된 혼돈의 식탁문화를 이루게 된다. 조선시대에는 불교의 쇠퇴와 함께 차마시는 예법도 사라지고 그 유습은 차례茶禮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현대 도자상차림 
한국인의 식문화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주, 부식이 분리된 식사형태로 국에 밥을 말아놓은 국밥이라는(설렁탕, 곰탕 등) 식생활풍습과 건더기가 많은 국, 나물 등의 습성음식의 발달과 함께 숟가락, 젓가락을 세트로 사용하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된장, 간장 비롯해 특히 김치라는 우리만의 고유한 음식이 있으며 4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저장음식이 발달되었다는 점. 그리고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의례儀禮, 빈례賓禮음식이 발달되었고 예전엔 개인상독상:獨床이 기본이었지만 현재는 한 번에 모든 음식을 내놓는 공동식기사용의 공간전개형空間展開形 음식 서빙 방법이 일반적이다.
필자는 1980년대 일본 경도공예섬유대학京都工藝纖維大學의 대학원 논문 <일본·한국의 식문화 비교에 의한 대량생산도자식기 디자인 연구>를 준비 할 때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본이 세계최초의 테이블코디네이터란 직업을 탄생시켰다는 점이다. 오히려 테이블세팅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유럽은 일상 생활화되어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특별히 없다는 해설이 인상적이었으며, 당시 일본에선 테이블코디에 관한 서적들이 5, 6권 정도 출판되어 있었다. 당시의 책자들 중에서 서구의 전통을 일본화한 세팅에 힌트를 얻어 한국의 식탁에도 세팅개념을 넣어보자고 생각하게 되었다. 귀국하여 세팅에 대한 논문으로 1993년 <테이블세팅과 우리나라 식기디자인 제안>이화여대 도예연구소 연구논문집을 발표하고 1995년 디자인학회 춘계 학술발표대회에서 <테이블세팅과 도자식기디자인 연구>를, 1997년엔 일본 디자인학회 연구발표대회에서 <일상의 테이블세팅과 한국도자식기 디자인 연구>를 발표하고 우리나라 한식기를 중심으로한 세팅전시를 1996년 11월 일본문화원 실크갤러리에서 시작한 이후 대한도자기타일공업협동조합이 주최하는 행사에 협찬, 밥그릇을 중심으로 한 세팅전을 열었다. 이후 2004년 고운미술관의 <밥그릇세팅전>까지 세팅전시만 개인전으로 4회 치뤘다. 1996년 세팅전시 이후 우리나라 도자기 전시 중 특히 도자식기 전시의 기법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세팅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음을 볼 때 한식기 디자인의 개선을 위해 일본의 선진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한식기 세팅전을 아무런 선행 참고자료도 없이 용감하게(?) 시작하였던 무모성에 보람을 느낀다. 특히 사업운영 초기에 필자와 몇차례 미팅한 일이 있었던 광주요의 사례처럼 도자식기 세팅전으로 시작하여 인테리어용품으로까지 아이템을 확대하는 업체의 성공사례를 보면 행복하기까지 하다.

 

현대 한국식탁의 상차림 문제점
- 동·서양의 식사스타일의 혼합에 따른 상차림의 부조화문제
우리나라 상차림은 전통적인 상차림으로 반상기의 형식이 있으나 서구화된 식생활에 의하여 전통적인 반상기의 상차림을 사용하는 곳은 드물다.
일상적인 가정이나 한식당의 경우는 대부분 퓨전식, 혼합식으로 변화되어 식기도 서양식기양식, 동양식기양식이 섞여서 사용되는데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요는 소비자의 니즈Needs와 생산자의 기술이 연계되지 못하여 일어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현대 식탁의 변화, 특히 공동용 식기와 개인용 식기의 공존에 따른 식기 구성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규범화하여 생산자도 소비자도 혼란 없이 생산·소비할 수 있도록 조화로운 상차림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전통적 식문화와 식기의 다양화 문제
일본의 도자기가 임진왜란 때 끌고간 조선도공들에 의해 발전하여 도자기세계수출 제1위를 점하면서 경제대국의 발판을 만든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의 도자기가 세계도자왕국으로써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임진왜란 때 각 봉건영주들이 자신의 영지에 도자산업 장려에 따라 타지역과 차별화된 도자기술, 제작기법들이 개발되어서 지역마다 다양한 도자기 종류, 도자아이템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 분청사기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시마三島’로 불리는 일본의 전통적인 도자기법이란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듯 분청사기 기법이 새로운 기법으로 보일만큼 다양해져서 실생활에 쓰이는 식기들의 대부분이 미시마기법을 쓰고 있으며 한편 그 경우 일본 오리지날리티를 표현하는 것으로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식기 중 특히 밥그릇을 미시마 그릇수공예적 기술의 대표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최고급 값비싼의 그릇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시마의 오리지날리티는 우리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개발, 변형된 미시마의 존재는 전혀 우리나라와 상관없이 세계적인 도자용어집 등에 일본독자의 도자기술로 소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에 분청사기 애호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다기와 기호품인 다과용 접시 등으로 사용하는 정도이고 식기로서 사용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일상적인 식기의 디자인다양화 문제는 공예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산·학·연의 협업에 의한 문제해결 방법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팅의 목적과 식기의 크기 무게에 관한 문제점
도예가들의 식기는 좋은데 무겁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일쑤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는 소비하기도 하지만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식기로는 가볍고 안 깨지는 상품에 비해 선호도가 낮은 것이 사실이다.
최근 도자세팅이 공모전으로도 이슈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기본적인 사실을 외면하면 세팅의 의미는 그림일 뿐 원래의 목적인 도자식기 판매의 홍보에 힘을 잃게 된다. 신기하게 보이던 세팅전시 초기의 인기와 달리 소비자들은 완벽한 그림으로 구성된 도자식기 세팅은 실생활과 거리감을 느끼고 감상만 할 뿐이다. 세팅전의 이슈는 식탁 위의 그림만들기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면 아름답고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제안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사용하는데 편리하도록 그릇의 크기와 무게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할 것이다.


필자약력
이화여대 도예과, 동대학원 졸업
일본 교토공예섬유대학원 졸업
96년 ‘김명란 테이블세팅전’ 외 개인 작품전 3회
저서 ‘생활도자공예디자인’
현 수원대학교 공예디자인 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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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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