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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국 도자조형의 물리학적 표현
  • 편집부
  • 등록 2006-01-16 14: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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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국 도자조형의 물리학적 표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여인의 가슴 오브제」 멜번에서 연구작품을 중심으로

 

Robert Nelson 박사 _ 호주 모나쉬대학교 교수
번역+정리 김영철 _ 호주 모나쉬대학교 건축실내디자인 전공 박사과정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형태들은 저마다의 발생기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컵의 형태는 아마도 물이 우리네 입으로 떠올려지면서 손으로 만들어진 형태가 그 기원이 아닐까 싶다. 비록 흘리는 물이 더 많긴 하겠지만…
19세기의 Gottfried Semper 같은 고고학자나 이론가들이 기록하기를 기둥은 나무나 어린 묘목들이 서로 부딪치며 만들어진 형상으로부터 그 형태가 기원했다고 한다. 침대나 침상의 형태는 드넓은 대지의 풍광 속에서 인간이 쉬어가곤 했던 굴 혹은 어떤 넓고 평평한 자연 속의 형태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Anne March가 제안하길, 카메라의 오리지널 형태는 극장과도 같다 했고, 더 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카메라 내부의 구조 형태는 사람의 눈과 같다 했는데 이는 곧 이미지가 투영되는 스크린과 렌즈와도 같다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이는 텔레비전의 오리지널 형태가 창문이나 사람의 얼굴로부터 기원한 것과도 같은 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모든 얘기들은 곧 인간은 상상과 더불어 형태를 창조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플라톤은 위대한 신성함을 물리적 실현보다는 그 근본적인 형태(그리스어 ‘아이디어’)로부터 기원한다고 여겼다. 이러한 그의 유추법에 의해 형태 안의 형태를 향한 무언의 특별함이 발생하는데 이는 곧 창작의 유혹이다. 사실 우린 예술 혹은 공학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창작에 관한 기계적 관례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지각들은 독특하게도 으스스한 전율을 만들어 내곤 한다. 이는 마치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지계적인 문명이 진행 되어 가는 관점과 일상생활의 기술이 진화되어 가는 것을 운명이라 여기며 지켜보는 것과도 같은 이치라 하겠다. 나의 상상 속에서나 혹은 기존의 자료로부터 제안할 수 있는 모든 근원적인 동기 중에 나에게 가장 흥미를 자아내는 형은 병 혹은 항아리 형태를 기본으로 하는 조형이다. 왜냐하면 뒤집힌 손 모양으로 해석되어 온 컵이나 사발과는 달리 병은 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둘러싸여 막혀 있기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의 형태는 몇몇 확실한 모양을 갖춘 식물들을 빼고는 그리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가지처럼 톡톡 치면 안에서 그 진동이 울려 퍼지는 식물들, 수성과일, 호리병박, 멜론, 통처럼 생긴 과육 모양의 가지 속 식물 등등이 좋은 예이다. 여기에 또 다른 주요 전례가 있는데 우리가 어쩌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두려움으로 될 수 있는 한 억압하려고 하는 여인의 가슴이 그것이다.

한국에서 온 도예가 이헌국 교수는 이곳 모나쉬 대학교에서 환경에 적응하기도 전에 일련의 직관적인 작품들을 표현해냈다. 호주 멜번에서 그가 만들어 낸 작품들은 어머니의 원형들을 구 형태를 통해 작가의 심미적인 관찰력으로 표현한 독특하고 심원한 콘셉트의 확장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그의 도예 작품들은 뛰어난 미적 가치를 표현하고 있음은 물론 한국 전통도예의 심미적 정수를 계승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예술적 매혹을 창조함과 동시에 관람자를 지적으로 자극하는 방법으로 구형이라는 매개를 통해 여인의 가슴을 유추법과 더불어 추정함으로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도예가 이헌국 교수의 조형 형태는 다양한 외관들을 수용하고 있는데 이 속에서 전체적인 형태의 흐름을 주도하는 단순한 한가지의 이미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작품의 동기는 여인의 가슴과 젖꼭지로부터 유추, 표현해내는 작은 꼭지들이 달린 유연한 자루들이다.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작가는 복합적인 자루들을 모아(솔직히 우린, 그것들을 여인의 가슴이라 부르고 싶지만…) 혼합물들, 티슈의 부착물들, 늘어진 볼살들, 혹은 낯선 대화들을 통해 내면에서 외면으로 보여지는 그 무엇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마치 여인의 가슴으로부터 출발한 관점으로부터 낯설게 해체시킨 풍선처럼 가슴 형태의 오브제를 빼냈다.
이후 이 오브제는 시간과 더불어 숙성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바늘에 찔린 고무주머니처럼 볼품없이 움츠러들진 않는다. 여인의 가슴은 언제나 팽창된 형태를 유지된다. 여기서 늘어진 정도의 차이는 그의 이슈와는 관계없는 논쟁이다. 그래서 작가는 구형을 우선 강조했고 여인의 가슴이 그 다음으로 보인다. 그가 원했던 근본적인 인용은 볼륨이며 이는 곧 안쪽 공간의 비어있음과 바깥공간의 표피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또한 이 표피막은 다시 빈자리 즉, 유동체가 흐르는 방향으로 늘어난다. 또, 작가는 내부의 공기와 네모난 형태 구조의 내려앉은 벽들을 통해 보다 근접한 고추 열매의 이미지를 유추해내거나, 이상야릇한 향기를 통해서 작품 속 여인의 가슴을 울려 퍼지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헌국 교수는 역설을 즐기는 작가이며 작품을 아이디어의 틀과 도상학적 대위법을 이용하여 고난이도의 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표현을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도치적인 취향은 대표적인 작품 「The meeting-Family」에서 거의 완벽하게 현실화되고 있다. 예를 들면 공기가 빠짐으로 평평해진 은신처를 형성하게 만든 긍정적 의미의 형태가 바로 그것인데, 이는 다시 끼워 맞춘 사발의 형태로 조립되어 진다. 그리하여 긍정적 형태의 작품 속 여인의 가슴은 이내 부정적 형태를 이루게 되는데 이는 볼록한 면이 물러가고 오목한 면으로서 그릇이나 용기라기보다는 마치 리시버로, 커다란 숟가락의 모양으로 형태가 형성된다.
또한 작품 「The meeting-Someone」에서 형상의 반전은 긍정적인 형태로 둘러싸임으로서, 평평한 표피에서 다시 볼록면으로 변화하는 동시에 예민한 모순에 봉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무너지면서도 다시금 만나고 재회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 상부에 붙어있는 익살스러운 젖꼭지를 제외하면 그들은 수동적이며 거만하지도 않다. 그들은 마치 공기, 우유나 호르몬을 모으면서, 음탕하게도 외설적 자태로 누군가 입에 넣어주기를 기다리는 듯이, 아마도 그러한 형태의 내재성을 제안하고 있는 듯하다.
작품 「The meeting-Twin son」에서 가슴 형태의 고집스런 단정은 그들의 미끄러지듯 접혀있는 일단의 무리 안에서 두개의 중앙 가슴 형태가 외부로 향하는 갈라진 틈을 형상화 하는 곳에서 다시금 표현되어 지고 있다. 아마도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작품명에서 이미 남자다움을 드러내듯이, 떠오르며 부유하는 듯한 형태로 거의 남근을 상징하면서도 어찌 보면 방자하고 유기적인 공간으로서의 여행과 이런 종류의 인상적인 예술성은 우리에게 일생의 즐거움과 더불어 힘을 불어 넣어주는 예술적 경향을 느끼게 하고 있다.
고풍스런 질서로 각색되고 기발하고 에로틱한 자극과 함께 이루어진 작품 세계는 정신 분석적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의 예술 속의 엉뚱하고 선정적인 이미지는 경건하고 고풍스런 한국전통 도자예술의 분위기 안에 기분 좋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생각엔 이런 작품세계들은 남성에 의해서만 창작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이란 느낌이 든다. 여성의 가슴을 열망하는 사람들, 그것들을 숭배하고 혹은 억제하는 사람들. 물론 모두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에서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이다. 무의식적으로 남성들에게 여인의 가슴은 조형적인 구성개념으로서 항상 어머니의 가슴으로 남아있다.
당당한, 음탕한, 터무니없고, 기괴한, 때론 엄숙한 그리고 호색적인 이헌국 작가의 도예세계는 방대한 양의 흥미들을 고차원적 심미안으로 압축하고 있다. 여러 관점에서 그의 작품세계는 의심할 여지없이 우리의 식육에 대한 탐닉과 배고픔으로부터 그 무언가를 끌어내고 있다. 또, 그의 작품은 아름다운 광물질임과 동시에 아름다운 육감이다. 이것들은 일상적인 ‘조각품’들이 아니며, ‘병’도, ‘도기’도 아니다. 작가의 조형감각은 모순된 것들을 미리 종합했다는 의미를 가지며 융화되기 어려운 형태와 도해들을 대등하게 조정해내는 모체를 만드는 목표를 달성해 냈다.
이제 우린 그를 통해 가족문화의 경험 그리고 자연과의 새로운 관계를 볼 수 있다. 그것들을 짜내길 원하고, 입에 넣길 원하고, 존경하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며 비록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필자가 한국에서 온 도예가 이헌국의 조형세계를 이해하면서 추천하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작가 이헌국
경희대학교 및 한양대학교 대학원 이학박사
우즈베키스탄 예술원 아카데미 디플로마
호주 멜번 모나쉬 대학교 방문초빙교수
현 경희대학교 예술디자인 대학 교수
한국 전시 학회 수석부회장
아시아 예술과학 학회 감사
한국 미술 협회 공예 위원장

필자약력
필자 Robert Nelson 박사는 예술 디자인 이론 전문가로서 모나쉬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교수이며, 예술디자인대학 부학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호주의 저명한 신문사인 The Age의 예술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밖에 많은 저술과 평론활동을 하고 있다.

1 「The Meeting - family」
2 「The Meeting - Someone」
3 「The Meeting - Twin son」
「The Meeting - Friend」
「The Meeting - Win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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