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와 무형문화재의 재조명
무형문화재의 신패러다임
글 최연수 _ 한국공예산업연구소 대표이사
문화유산heritage이란 국립국어연구원이 발간한 국어사전에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 또는 젊은 세대에게 계승·상속할 만한 가치를 지닌 과학·기술·관습·규범 따위의 민족 사회 또는 인류 사회의 문화적 소산, 정신적·물질적 각종 문화재나 문화양식 따위를 모두 포함 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국립국어연구원1999:2296)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유산이라는 용어대신에 문화재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 법적 정의를 살펴보면 ‘문화재’라 함은 인위적·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의 4종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문화재보호법 제2조)이 중 본고에서 특별히 다룰 주제인 무형문화재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는 ‘공예기술, 연극, 음악, 무용, 무예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동법 제2조) 특히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는 세계문화유산을 지정·관리하는 유네스코와는 달리 무형문화재 지정 종목 외에 보유단체 및 전승자도 무형문화재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렇듯 무형문화재는 우리 고유의 민족의 정체성Identity을 확인시켜 주는 가치의 본원이며, 전 인류가 함께 공유하고 보존해 나가야할 자랑스러운 세계적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유산의 가치가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올바른 전승활동과 창조적 계승보다는 단순한 보호 정책에 머물렀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과 요구에는 미동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무형문화재의 값진 진가는 동결된 채 그 한계와 상실감으로 위축되고, 경색되는 국면으로 다다르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날로 변화하는 이슈와 트렌드를 분석하여 다시 한 번 우리의 자랑스러운 무형문화재의 잠재적 가치를 오늘의 현실로, 그리고 내일의 미래로 창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여 더 이상 단순한 보호가 아닌 창조적 전승·발전을 위한 교두보를 탄탄하게 구축하는데 목적을 두고자 한다.
최근의 동향
문화유산을 모체로 하는 무형문화재 또한 국내외의 다양한 메가트렌드Mega-Trend와 이슈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유산이나 문화재 자체도 결국엔 이들의 시대적 산물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여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세계적으로 움직이는 변화의 동향을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에 새롭게 요구되는 무형문화재의 신 패러다임을 도출해 보고자 한다.
1) 단절적 변화의 시대 쭻 미래 환경변화를 상정한 전략 개발
예전만 해도 과거 2~3년 추세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과거추세연장식過去趨勢延長式 사고로는 미래에 대응내지 예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1년 단위의 전략계획으로도 변화 대응이 곤란한 지경에 까지 이르고 있다. 그래서 젝 웰치 제너럴 일렉트릭(GE) 회장은 “정확한 미래 전망보다 변화흐름을 가장 빨리 읽는 것이 21세기 경영의 요체”라고 언급한 사실만 봐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과거의 정책이나 현재 상황의 연장선에 연연하지 말고 완전히 새로운 미래 환경변화를 상정한 전략 모델이 절실하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2) 개방화 및 글로벌화 가속 쭻 글로벌 환경변화에 적극적인 대응
국가 간의 경쟁·협력이 복잡하게 교차하고 세계 각국의 벽을 허무는 노력이 가속화 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글로벌 환경은 더 이상 자기만의 자기당착적인 사고와 국수적인 보호정책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이제는 바야흐로 글로벌 환경과 그 무대 위에 서지 않으면 바로 뒤안길로 접어드는 고립적 환경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글로벌 환경변화에 적극적인 대응자세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3) 디지털 및 감성의 시대 쭻 문화 및 감성으로 차별화
고도화된 정보화 사회는 경제,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화 현상을 가속화 시켰으며,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디지털 혁명의 발길은 이미 변곡점에 도달하여 시간과 거리의 개념이 없어졌고, 그 자리를 속도와 가상공간이 대체되는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상공간은 새로운 욕구를 필요로 했고, 그 중에서도 문화와 감성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감성사회Emotional Society 공간을 채우고 풍족하게 할 차별화된 문화콘텐츠의 자원을 충원하는 노력이 절실요구 된다.
4) 네트워크형 사회관계의 확산 쭻 참여지향으로 대전환
사회관계 전반에 걸쳐 수직적 위계질서가 약화되고 네트워크형 양상이 가시화 되면서 더 이상 권위적이고 관리적인 리더십이 퇴조하는 반면, 명령하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섬기는 리더십’이 확산되고 있으며, 다양성을 중시하는 중도적中道的 흐름이 부각되고 가치관이 ‘탈물질’과 ‘참여’ 지향으로 변화됨에 따라 무형문화재의 기본 틀도 참여지향의 자세로 대전환될 조짐이 크다.
5) 고객주도의 소비 트렌드 쭻 고객 및 시장중심의 발전전략 수립
앞으로 시장 주도권은 제품중심Product Driven에서 고객중심Customer Driven으로 전환되어 과거 시장점유율이 중요했으나 이제는 고객점유율이 중시되고, 핵심고객층의 선정, 브랜드파워와 신뢰가 새로운 경쟁요소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형문화재 정책도 더 이상 원형보존, 국가주도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문화재보호법 제1조(목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존의 기본원칙은 “활용할 수 있도록”함에 있다는 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계승·발전은 활용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노력은 법과 정부의 주도가 아닌 고객이 요구하기 때문에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발로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신新 패러다임으로 전환
1)Paradigm1 : 보호의 개념에서 창조적 계승으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문화재보호법 제1조(목적)에서는 “이 법은 문화재를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함으로써 국민의 문화적 향상을 도모함과 아울러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문화재 정책은 아직도 앞 문구인 “보존하여 민족문화를 계승하고”에만 집착한 채 뒤에 이어지는 국민의 문화적 향상과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진정한 활용부분에 대해서는 그저 아랑곳 하지 않는 모습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좀 더 전향적인 차원에서 문화재 정책을 펼쳐 보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무형문화재를 유형문화재처럼 무생물에 어느 정도 보존만 잘하면 존속할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다. 60세 이상의 무형문화재 보유자 수가 이미 전체의 77.7%를 넘는 것을 생각해 봐라. 우리가 안일한 보호정책에 조금만 머물러 있어도 원형의 계승은 물론 후손에게 이렇다 할 말없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는 엄청난 수치를 범하지 않겠는가?
2)Paradigm2 : 문화재Cultural Properties에서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재산적 가치에 주안점을 둔 문화재 개념에서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널리 사용되고 있는 보편적 가치인 문화유산의 개념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오늘 내일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특히 인생이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 무형문화재들로서는 더 더욱 문화유산의 개념이 절실하다고 본다.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이슈는 문화재 정책 곳곳에서 우후죽순 나왔던 말이다. 의미와 언어적 표현에서 보면 당장이라도 환영해야하고 또 그렇게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일 것이다. 하지만 늘 이론과 실제가 차이점을 가지듯 이 역시 제자리걸음만 반복하는 답답한 상황이 한두 개가 아닐 수 없다. 문화유산으로의 접근은 이제 고민하는 선택적 상황이 아니라 반드시 따라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문화재관리가 더 이상 보호관리에서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관리, 창조적인 관리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문화유산의 관점에서 무형문화재를 바로 보아야 올바른 계승과 후손을 위한 창조적 노력의 빛을 발할 것이다.
3)Paradigm3 : 문화산업, 관광산업의 원천Cultural Resource으로
21세기의 화두는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이다. 지금도 이곳저곳에서 문화산업과 관광산업이 미래산업의 주도권을 위해 고속질주 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이 두 산업은 문화산업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산업 즉 콘텐츠 산업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무한한 잠재력과 성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성장력만큼 원형에 대한 인프라 자원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필요조건을 늘 안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은 무한한 잠재력의 원천수를 제공하는 진원지가 아닐 수 없다. 그 만큼 고부가가치적인 산업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원천자원에 대한 철저한 실태파악과 보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가치사슬로의 발전 즉, 원소스 멀티유즈OSMU로 다각도의 활용노력이 선행되어야 무형문화재의 원천자원은 늘 풍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Paradigm4 : 국가주도에서에서 지자체 / 민간 주도로
요즘 모든 정치나 사회현상이 국가주도에서 그 힘의 균형이 지자체와 민간으로 이양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마찬가지로 무형문화재 유산 또한 이러한 흐름을 역류할 수는 없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더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중요무형문화재는 국가기관인 문화재청이 주관하고, 시도무형문화재는 시도가 주관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무형문화재 보유단체가 56개(문화재청 : 2005년 4월 현재)나 존재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모양 상으로는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민간단체가 사이좋게 분담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시민문화재 운동으로 불리기에는 부족함이 역역하다.
하나의 사례로 일본의 기후 현 북서부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1995년)으로 지정된 산간오지마을인 시라카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마을은 합장合掌造り가옥으로 유명한 곳이다. 마치 부처가 기도하기 위해 모은 손 모양을 띄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점점 훼손되고 소멸되어가는 이 합장가옥을 보존하기 위해 1971년 자치조직인 ‘시라카와향 오기마찌 집락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모임白川鄕莢町集落の自然環境を守る會’을 발족하고 ‘주민헌장’을 제정하여 주민스스로 마을을 지키는 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 덕에 1976년 일본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고, 1995년 세계문화유산까지 지정되는 그야말로 국가가 아닌 오지 마을의 몇몇 주민들이 이루어낸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마을사람들은 자치기구와 주민헌장을 통하여 철저하게 환경을 보전하고, 가꾸었으며, 외부 사람들에게는 감성 있는 이야기와 테마(예를 들어 지붕교체하기, 짚풀만들기, 천연염색하기, 합장가옥 체험하기 등)를 만들어 엄청난 지역경제 활성효과까지 창출하기도 하였다. 시라카와를 방문한 관광객은 1989년 66만 명에서 1995년 77만 명으로 증가했고, 관광소비액은 23억 엔에서 28억 엔으로 증가했다.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후에는 관광객이 10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2000년 마을을 방문한 관광객은 120만 명, 이들이 지출한 관광소비액은 52억 엔으로 늘어났다. 이제 관광은 시라카와의 경제를 떠받치는 성장 동력이 된 셈이다. 바로 시라카와의 관광 성공의 비결은 시라카와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5)Paradigm5 : 정보화시대에 걸맞은 실태조사와 통합관리시스템 구축환경으로
21세기의 우리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지식과 정보가 산업자원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지식정보화 사회로 전환됨에 따라 문화재가 갖고 있는 다양성과 내재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고 그 자산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중장기 발전모델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정보화 시대에 적합한 무형문화재 온라인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하여 체계적인 전승활동과 가치창조적인 발전모델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정보환경을 구축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문화유산으로서의 무형문화재를 새롭게 조망해 보았다. 또한 최근 산업 및 사회 동향을 파악하여 무형문화재의 새로운 패러다임 5가지를 제안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무형문화재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며, 인류와 후손에게 창조적인 계승과 발전을 제공해야 하는 역할과 소명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산이다. 더이상 무형문화재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함께 살펴보았다. 일본의 시라카와 마을처럼 작지만 위대한 문화유산의 가능성과 가치를 보여준 사실에 우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는 5천년 역사의 유구무구한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하나하나 손으로 입으로 머리로 지켜가는 묵묵한 무형문화재의 유산이 우리 옆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없어서 못하는 고민은 우리에게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제 부터라도 무형문화재의 신 패러다임을 실천하는 진정한 문화재시민운동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과거에 집착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97년 English Heritage에서 정의한 문화유산의 6대 가치를 앞에서 논의한 신 패러다임과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한다. ①문화적 가치cultural values, ②교육·학문적 가치educational and academic values, ③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s, ④지혜를 주는 자원으로서의 가치resources values, ⑤재충전자원으로서의 가치recreational values, ⑥미적 가치aesthetic values 등의 6대 가치를 우리의 소중한 무형문화재의 올바른 계승과 발전 모델에 하나하나 적용시켜 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무형문화재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져본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졸
중앙대 예술대학원 공예경영관리특론, 강남대 MD과정 강의
현, (주)C42 대표이사, 한국공예산업연구소 대표이사
마케팅 매니져 클럽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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