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금철 박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내화물 학문의 솔직한 매력을 닮은 박금철 교수
“세라믹 분야 중에서도 내화물 분야 연구는 재미를 느낄 수 밖에 없어요. 아마도 내화물 분야만이 지니는 솔직한 매력 때문일 겁니다. 내화물 분야는 이론 정립이 가능한 체계적이면서도 실증적인 학문으로 트릭이 필요없는 솔직한 학문이거든요.”
내화물 연구에 전력을 다했던 박금철 교수 얼굴에 엷게 퍼진 미소가 아름답다.
박금철 교수는 1951년에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해 1955년부터 1966년까지 전남대학교 공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66년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으로 옮기면서 세라믹 분야의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박금철 교수는 “1955년부터 규산염 공업이라는 세라믹 분야의 전공과목을 맡고 있었는데 1965년 경 한양대학교 요업공학과에 부임해 계셨던 지응업 박사님께서 금속연료 연구소로 옮기면서 후임으로 나를 추천했고, 고민 끝에 한양대학교로 이직을 하게 된 것”이라고 후담을 밝힌다. 당시 박금철 교수는 전남대학교에서 규산염 공업 외에도 단위조작, 화공열역학, 공업화학계산법, 인조섬유 등 다양한 분야에 연구 및 강의를 하고 있는 터라 쉽게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제가 결정적으로 한양대학교로 옮긴 것은 그때까지 강의했던 광범한 세라믹 분야의 지식을 이용해 좀더 집중적으로 연구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죠. 또한 당시 세라믹 산업이 우리나라의 전통산업이요, 기반산업이라고 생각하고 이 길을 선택했지요.”
박금철 교수는 당시 전남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기 전부터 유리공장에서 현장경험을 쌓고, 또한 국립중앙공업연구소에서 제철연구 등 현장실무의 노하우를 쌓기 위해 노력했다. 박금철 교수는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가 참 기술인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참 기술인을 배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전한다.
내화물 관련 제자 양성, 활발한 산학협동 위한 박 교수의 값진 노력
박금철 교수는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내화물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한다. 특히 ‘돌로마이트에서 마그네시아 추출에 관한 연구’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는 등 제철산업에 필수적인 염기성 내화물 연구에 주력했다. 박금철 교수는 당시 연구와 실험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추억했다. “한양대학교 공업센터에는 실험으로 인해 연구실 불이 꺼질 날이 없었습니다. 연구에 여념이 없었던 그 당시 공업센터 창밖으로 바라보던 서울의 야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내화물이 제철산업에서뿐 아니라 다른 산업에서도 꼭 필요한 국가기간산업이라고 생각한 박금철 교수는 제자양성뿐 아니라 내화물 산업발전을 위해 업체 기술지도 및 공업표준심의회 위원으로 KS 내화물 규격 규정 등 내화물 품질 향상을 위해 힘썼다. 박금철 교수는 “생산업체에 견학, 취업알선 등으로 방문할 때 요업공학과 졸업생들이 열심히 일하며 반겨주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꼈다”며 “이렇듯 현장에 투입된 전문 엔지니어들이 앞선 기술력으로 산업을 발전시켜 나갈 때 경쟁력을 지닐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토록 내화물 분야의 연구를 위해 온 힘을 쏟았던 박 교수는 1984년에 개인자격으로 일본과기청 무기재질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근무할 당시, 박 교수가 한국세라믹학회의 책임을 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연구소장이 베풀어 준 특별한 예우의 하나로 일본 15개 그룹의 리더들이 일정별로 한 장소에 와서 각 그룹의 현황을 설명해 주던 일을 잊혀지지 않는 추억의 하나로 꼽았다.
내화물 산업을 위해 산학협동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박 교수. 박금철 교수는 70년대 무렵 내화물 산학협동을 위해 조합과 학회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내화물심포지엄’을 개최하는 등 내화물 분과위원으로서 주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박 교수는 현재에도 계속 개최되고 있는 내화물심포지엄을 보면 예전에 부족했던 이론을 보완한 좋은 논문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어 향후 더욱 발전될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세라믹 분야의 산학연은 국제적 연계관계를 구축하여 학술교류, 생산기술의 세계화 동향 분석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열의는 결국 산학연이 학회나 협회에 보다 활발한 활동을 통해 세계 각국의 문화를 이해할 때 생겨날 것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한다.
박 교수는 “내화물 산업은 필요 불가결한 산업임과 동시에 에너지 소비가 큰 고온산업에 속한다”며 “따라서 에너지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내화물의 품질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앞으로도 에너지 절약을 위한 내화물 개발에 힘써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전문 지식 갖춘 엔지니어 양성만이 살길이다!”
박금철 교수는 현재 세라믹 기술 분야 흐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전통세라믹 기술분야는 여전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취약점이 있다고 보아집니다. 예를 들어 고급 식기류 제조기술의 경우, 배합원료 또는 배토와 성형, 열처리 등에 관련된 제조설비가 수입되고 있으며, 소수의 인원으로 고수율의 고급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첨단재료 기술기법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기술이 수입된 제조설비에 의존한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내 기술과 인력만으로 원료, 설비장치를 만들 수 있어야 그 나라 산업이 올바르게 유지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전통기술을 체화한 전문 엔지니어의 양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전문 지식을 갖춘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대학에서는 전통기술에 관한 교과강의를 확대해야 할 것이며 연구소나 협회 등 국가 관련 기관에서는 전통기술 발전 프로그램을 갖추어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낙관말고 비관말고 성실하게 살자! 젊은이들이여, 용기를 내라!”
박금철 교수는 항상 ‘낙관말고 비관말고 정진하라’라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한다. 이는 박 교수가 중학교 때 일본 동경국학대학 학장이 쓴 격문을 보고 마음에 간직한 것이라고 한다.
“쓰라린 고통 속에서도 이겨낼 열의만 있다면 결국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때부터 낙관말고 비관말고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자고 마음먹었어요. 지금 생각하니 참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것 같아 뿌듯하기는 하나 진취성과 용기가 부족했구나 싶기도 하네요.” 오히려 자신의 부족한 면을 먼저 고백하는 박 교수의 답변에서 자신을 내세우고 과장하기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과는 다른 박 교수만의 진솔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박금철 교수의 진솔한 성격은 솔직한 학문인 내화물과 어딘지 모르게 닮은 것 같다.
박금철 교수는 후학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세라미스트들이여! 생산현장이나 연구현장에서 각자가 행한 업무가 상식적으로 타당한가를 항상 재검토하고, 용기와 책임의식을 갖고 독창성, 창의성을 중시하면서 혁신해 나가십시오.”
윤나리 기자
박금철 교수 주요 약력
1951. 9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화학공학과 졸업
1951. 9~1954. 6 목포고등학교 교사
1954. 6~1955. 1 국립중앙공업연구소 촉탁
1955. 1~1957. 2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전임강사
1957. 2~1965. 3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
1965. 4~1966. 3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부교수
1966. 4~1968. 3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부교수
1967. 7 세라믹기술사 자격취득
1968. 4~1991. 2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1972. 2 한양대학교 대학원 공학박사학위 취득
1974 ~ 1980 공진청, 동자부 열관리위원회 의원
1976 ~ 1982 공업표준심의회 위원
1978 ~ 1980 신용보증기금 경영지도위원
1980 ~ 1981 산업은행 기술조사 자문위원
1982 ~ 1983 동력자원부 정책 자문위원
1982. 1~1983.12 한국요업학회 회장
1984.12~1985. 3 일본과기청 무기재질연구소 객원 연구원
1991. 3~현재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명예교수
1997.12~현재 한양대학교 세라믹공정연구센터(CPRC)자문위원
2002. 1~현재 요업(세라믹)기술원(KICET)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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