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덕진도자대학 장기도자연수 프로그램 참가기
매력이 넘치는 곳, 경덕진
글+사진 안정윤 _ 도예가
‘경덕진’이란 지명은 도자사 수업에서나 몇 번 들어본 적이 있고, 경덕진에 갔더니 입이 딱 벌어지게 도자기가 많더라는 여행담 정도를 들었을 뿐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그저 몇 달 전 도예전문사이트인 claypark에서 이번 연수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될 즈음 나는 작업과 일상에 많이 지쳐 있었고 나 자신과 작업을 위해 재충전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었다. 그런 이유로 이 연수를 선택 했지만 정확히 무엇을 하게 될지 어떤 환경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두렵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일단 떠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경덕진 도자학원 기숙사 4층에서 조금쯤 알게 된 것들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중국의 광활함에 비해 경덕진은 작은 지방도시이고 현대적이지도 세련되지도 깨끗하지도 않다. 그러나 도자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매력이 넘치는 국제적인 장소이다.
경덕진은 송나라 때부터 명대와 청대를 지나 오늘날까지 주요한 도자기 생산지로 유명하다. 카올린의 생산지인 카올린산과 가까워서 강을 통해 재료를 공급받기 쉬웠고, 만들어진 도자기는 다시 강을 타고 왕실로 유럽으로 한국과 일본 아시아전역으로 보내졌다. 풍부한 재료와 인력, 기술력으로 여전히 시내 곳곳에서 1000년 동안 생산되었던 중국 최고 도자기들의 정교한 모조품을 살 수 있고, 골목마다 1000년의 기술이 이어져 내려온 공방들이 산재해 있다. 이런 환경은 교육과 작업, 사업 등에 다양한 목적을 지닌 외국인들을 모으기에 충분했고, 그런 이유로 이곳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은 일상적이다.
필자가 참여한 팀은 인원이 적은 관계로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대학WVU연수단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WVU는 이미 오래전부터 경덕진 도자학원과 교류하여 썸머스쿨을 운영해왔고, 몇 해 전부터 가을 학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WVU학생들과 North Cardina에서온 작가들, 알래스카에서 온 대학원생 그리고 우리 한국인 3명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실기수업과 개인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고 그 외에 도자사수업, 중국어수업, 견학 및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기수업은 초빙강사의 워크샵, 주변 공방 견학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도자문화는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왔고 각 분야가 세분화되어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물레 성형의 장인, 굽 깎는 전문가, 판 성형의 전문가, 청화, 분채, 오채, 음각, 도구나 붓을 만드는 사람까지 모두 전문화 되어있다. 각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들의 워크샵을 보며 지도를 받는 다는 것은 도자기법의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경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물레성형에 있어서 특이한 점은 물레를 차고 나서 안팎으로 깎아 내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성형상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보다는 중국자기의 양식에 이유가 있는 듯하다. 왕실에 공급하는 관요에서는 기벽이 얇고 완벽한 형태를 갖은 고급도자를 원했을 것이다. 또한 청화와 분채, 오채 같은 채화자기가 발전했고 정교한 채화를 위해서는 기면이 매끄러워야 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젊은 작가와 학생들은 이러한 전통기법과 함께 현대적인 기법들로 다양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싱지역을 여행 후 돌아와서 자사토로 주전자를 제작하는 수업이 있었다. 이싱 주전자는 얇은 판을 밀어 두드려서 온전히 수작업으로만 만들어지는 정교하고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경덕진에서는 자사토를 구하기 어렵고, 정규학제에 없는 수업이라 이곳 현지 학생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아직 채화수업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곳은 다양한 채화도자가 발전한 곳이라 그 수업을 기대하고 있다. 경덕진에는 관요청화와 민요청화가 공존했는데. 이 둘은 양식과 기법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관요청화는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이 특징이라면 민요청화는 회화적이며 활달한 붓의 필력을 느낄 수 있다. 채화기법은 청화와 같은 고온 하회기법이 있고 청화자기 위에 다시 상회로 채색하는 두채, 상회기법인 분채, 구채, 신채 등이 있다. 채화 이외에 장식기법으로 음각화가 있는데 이는 송대 청자와 청백자에서 유행했던 양식이다.
스튜디오에서의 실기수업이외에 공방과 공장 견학 또한 인상적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대형기물과 도판, 명대와 청대의 정교한 청화와 분채, 모조품 종잇장처럼 얇은 찻잔들이 작은 공방에서 별다른 시설 없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인간이 최첨단의 시스템을 대신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기에 가능하고 기계가 아니기에 완벽할 수밖에 없는 중국 문화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WVU 프로그램 중에 도자사와 중국어수업은 그리 큰 비중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도자사 수업은 내게 무척 유익한 시간이 되고 있다. 중국 도자사는 중국만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 도자기의 역사 무엇보다 한국 도자기의 역사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대학에서 중국 도자사 수업을 받기는 했지만 한자에 대한 거부감과 방대한 역사와 지리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지루하게 여겨져 깊이 있게 공부하지 못했었다. 막상 중국에 와서 이 나라 지도를 보고 한국어 발음이 아닌 도요지의 원래 이름을 들으며, 충분한 자료를 통해 현장감을 느끼며 수업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쉽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특히 송대(AD960~AD1279)도자는 이후 중국도자사와 회화사에 큰 영향을 주었고 고려와 조선 초의 아름다운 도자문화와 깊게 연관되어 있어 더욱 흥미롭다.
수업과 학교 내에서의 생활 이외에 경덕진에는 다양한 교류의 기회를 갖기에 좋은 곳이며 작업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중국 전역에서 작업을 위해 경덕진을 찾은 작가들이 많고 최근에는 해외작가들의 레지던스 스튜디오들도 여러 군데 있어서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몇 주 혹은 몇 달 씩 이곳에 머무르면서 이곳의 풍부한 재료와 기술력 문화적 배경들을 이용해 작업한 후 큰 도시나 해외로 돌아가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 경덕진은 작은 도시이고 각 작업실에서는 워크샵이나 슬라이드쇼 등의 행사들을 자주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서로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
해외에서의 생활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마음을 여는 만큼 찾는 만큼, 그리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일정이 남아있지만 배운 것도 할 것도 너무 많아 시간이 가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처음에 중국에 와서의 긴장감과 흥분은 이제 잠잠해졌고 여행에서 경덕진으로 돌아올 땐 집에 온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지지만 여전히 택시기사에게 좌회전, 우회전도 말할 줄 모르는 외국인이다. ‘아는 것만큼 느낀다.’ 는 명언 같은 말을 알고 있다. 아직 더 많이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 <중국 경덕진 도자대학의 장, 단기 도자연수 프로그램> 참가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 웹사이트 www.claypark.net에서 확인 후 문의할 수 있다.
1, 2 대형기물성형
3 도자사 수업
4 미국도예가의 워크샵
5 슬라이드쇼
6 판성형워크샵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산업공예과 요업디자인전공 졸업
개인전 2회, 단체전 3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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