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한국도예계를 돌아본다
2005년 한국 도예행사·전시
글 홍성희 _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지원센터 연구원
2005년은 IMF 이후 풀리지 않는 경제상황으로 인해 숱한 갤러리와 미술관이 줄줄이 문을 닫고 여전히 고급미술시장이 공예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차가운 현실 속에서 한국 도예계가 순수미술계와는 또 다른 형태로 자생의 방법을 모색했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지난 2005년 한국 도예행사·전시들의 화두는 상업화와 대중화였다. 대중문화콘텐츠로서 도예가 걸어왔던 지난 도예계의 흔적을 곱씹어 보면서 다가올 2006년 우리 도예계의 모습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단체에서 개인으로, 상업화되어가는 전시들
19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 도예계는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주로 학연으로 결집된 단체전을 위주로 도자예술의 지향점 혹은 의미를 제시하고자 했던 윗세대들과는 달리 신세대들에 의해 주도되는 최근 도자전시의 화두는 ‘사회화 내지 상업화’를 모토로 점차 각개화 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사회적인 이슈나 매체에 대한 실험정신을 강조하기보다는 단체전 형식을 빌리더라도 청년작가들을 구성원으로 진부한 타성을 멀리한 채 ‘팔리는 상품’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특징이다. 전시장의 높은 콧대를 공예가들의 손으로 직접 꺾어 보고, 느끼고, 참여하고 즐기는 전시를 표방하는 이러한 신진작가들의 행보들을 보여주는 전시들로 2월에 열렸던 흙의 시나위의 <천개의 컵>展과 3월, 열린 도예가 김종인과 마케팅전문가 하윤민이 기획하여 공예가 20여명이 참여한 <미니마니재미가게>展, 9월의 <클레이 버스>展 등이 떠오른다. 공예가가 만든 고급상품을 표방하면서도 젊은 층의 흥미를 이끌어 도자시장의 틈새를 공략하고 과거 우리 도예의 유산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전시형태는 긍정적이다. 하지만 순수조형작품의 예술적 근간을 외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젊은 도예가들의 현재가 앞으로 완성해야할 자신의 미학적 기반을 형성하고 다양한 예술적 실험에 매진해야 할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그들의 주된 관심이 상업적인 공예품제작에 집중화되는 현상은 향후 우리 도예계 ‘작품경향의 편식화偏食化’라는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이다.
사실 우리 도예계에서 이러한 마케팅을 염두에 둔 전시의 행태가 단지 젊은 작가들에게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2005년 국내에서 개최된 개인전은 2004년과 비슷한 수준에서 약 250여개 정도가 열렸으나1) 그 중 70% 정도가 그릇관련 전시였다. 2004년 실시되었던 도자센서스에 따르면 전국 요장업체 1,734개 중 76%2) 가 그릇형태의 상품을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아직 우리 도예가들이 기술자와 예술가로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이 수치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매년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올 한해 열렸던 그릇전의 주요 아이템 중 단연 으뜸은 찻사발과 차도구였다. 체감으로 느끼는 전시의 수는 늘어나지 않은 듯하나 찻사발과 차도구전은 그 비율이 오히려 증가한 듯하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전시를 연 외국 도예가들의 전시들조차 주로 장작가마에 의한 찻사발 위주였던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많은 차도구전이 열린다는 것은 지난 70년대 말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형성된 차도구의 수요가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임과 동시에 시장의 수요에 부흥하는 기획자 및 판매자들이 차도구에 그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그 많은 차도구를 소비할만한 차茶인구가 얼마나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선뜻 내리기 어렵다. 어려운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식기류의 생산과 판매에 주력하고 있는 우리 도예가들이 만들어내는 사발들은 정호다완, 이라보다완, 김해다완 등 거의 정해진 틀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많다. 흙과 장작가마 번조를 통해 찻사발 혹은 차도구에서 묻어나오는 자연스런 색감과 편안함이 여전히 많은 도예가들의 창작의지를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도예의 모습이 정형화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의 자연적, 문화적인 토대 위에 조선의 사발과 한국적인 것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도예가들과 기획자들의 자성이 간절히 필요한 시점이다.
도예계 전반에 걸친 기물에 대한 관심은 전시 뿐 아니라 행사나 공모전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9월 (재)세계도자기엑스포가 주최한 <제2회 토야테이블웨어페스티벌>은 《홈파티》를 주제로 공모전과 판매전으로 구성되어 도예계의 중요한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도예계의 웰빙붐을 주도했던 지난 행사에서 한 단계 발전하여 일반 가정에까지 현대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테이블셋팅의 개념을 확산하고 나아가 도자소비인구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 실용적이며 의미 있는 행사로 기억됐다.
한편 식기에 식상한 도예인들은 작년에 이어 건축도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단순히 실용적 혹은 장식적 목적에서 제작되던 도벽 혹은 소품 위주의 건축도자관련 전시들에서 몇몇 도예가들은 도자를 이용한 조명, 가구, 건축자재들에 주목하고 있으며 2005년 하반기에 열린 <송준규 건축도자전>, <오윤이 조명전>, <신동원 개인전>, <홍영숙 개인전>등에서는 예술로서 뿐 아니라 건축 혹은 인테리어 현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2004년에 이어 실용성을 염두에 둔 작품들이 대세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조형도자작가들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행보들을 보여주었다. 김수정, 서동희, 한길홍, 오천학 등 중진 도예가들에 의한 전시들을 필두로 <한애규 도예전>, <이태흥 도예전>, <신이철 도예전>, <김대훈 도예전>등이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도자예술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지속되는 대형행사와 축제들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등 20여개가 넘는 도예관련 행사 및 축제들은 지난 발자취와 흔적들을 되돌아보고 나름대로 생존과 변화를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경기악화로 인한 각 지자체의 예산절감에 대한 의지는 그들이 지원하고 있는 행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자구책으로 행사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자생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행사 주체들에 의해 모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세계도자기엑스포의 성공에 힘입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경제를 부흥하기 위한 방책으로 도자기관련 축제유치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면서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올해도 강진청자문화제 등 20여개의 도자기 관련 축제 등이 우리 도예의 대중화에 한 몫을 담당했다.
대표적인 대형도예행사인 <제3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는 4월 23일부터 6월 19일까지 장장 58일 동안 개최되었으며 약 400만 명의 관람객이 여주, 이천, 광주를 방문하였다. 이 세계최대도자예술축제는 <문화를 담는 도자>라는 주제 아래 국제공모전, 세계현대도자전, 세계청자전을 비롯하여 4개의 기획전과 7개의 특별전 등으로 구성, 개최되었으며 이중 국제공모전은 총 70여개 국가의 도예가들이 작품을 출품함으로써 규모면에서나 내용면에서나 내실있는 국제도예공모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비엔날레에서는 세계도예를 한자리에서 조명하는 <세계현대도자전>과 미술사상 최초로 시도하는 중국청자와 고려청자의 비교전시인 <세계청자전>은 요즘 도예계에서 보기 드문 대형 전시로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과 관람객들에게서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4월 26일부터 3일간 치러진 국제도자학술회의는 세계의 도자전문가들이 모여 전 분야에 대한 이슈를 제시하는 장으로서 당초 기획되었으나 대주제의 선정과 발표자들의 발표주제가 체계적인 범주 없이 나열되었고 그 때문에 각 참가자의 발제를 통한 건설적이며 실용적인 대안이 도출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는 하반기에 열린 <아시아 세라믹스 네크워크>같은 행사에도 똑같이 도출된 단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도자학계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전문가들의 살아있는 정보와 의견을 한 자리에서 수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고무적이었다.
반면 일부 축제행사들은 지역의 특징을 잘 살려 특화된 도자축제를 성황리에 치러냈지만 대부분 도자축제들은 공모전, 워크샵, 경연대회 등 비슷비슷한 콘텐츠들로 이루어져 기획력부재를 드러내며 개선점과 한계들 동시에 드러냈다. 이들을 찾는 관람객들이 기꺼이 즐거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다양한 아이템 개발과 축제 간 차별화가 절실하다.
맺음말
우리 사회의 경제상황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지만 90년대 들어 지각 있는 작가들에 의해 주도된 생활공예운동 덕분에 특히 공예시장의 70%정도를 차지하는 도자기의 확산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도예가들이 살 방도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지자체들의 경쟁적인 투자에 힘입은 대형도예행사와 축제들 덕분에 관람객들이 예전보다는 더 많은 도예전시를 찾고 도자애호가의 숫자도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 도예계의 양적·질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중이 생각하는 도예에 대한 인식은 고루하고 고급화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도예가들의 진중한 자성,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과 지치지 않는 예술적모색이며 이를 뒷받침해줄 전문기획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대중화를 전제로 한 콘텐츠의 개발이 시급하다. 대중은 이제 바라보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 직접 만지고 느끼고 참여함으로서 도자기를 가까이하고 싶어한다. 대중의 문화적 욕구에 부흥하되 예술의 다양성과 진취적인 예술적 실험을 멈추지 않는 일, 그것이 2005년 우리 도예계가 성급히 해결해야할 난제이다.
1) 2005년에 열린 도예관련 전시현황은 www.claypark.net의 전시정보와 김달진미술연구소 전시정보에 올려진 정보를 토대로 정확한 수치가 아닐 수 있음을 밝혀둔다.
2) 2004년 실시되었던 도자센서스에 따르면 전국 요장업체 1,734개 중 76%에 해당하는 1,318개 업체가 생활자기 및 전승자기를 주로 생산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도예과 동 대학원 졸업
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현, 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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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