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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춘헌
  • 편집부
  • 등록 2006-11-03 16: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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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작가

도예가 김춘헌

언양 지역 문화의 정체성 이어갈 도자기 연구
자연이 좋아 자연 속에서 자연 닮은 작업

그가 기억하고 있는 어린시절은 야산에서 주운 오래된 사금파리를 가지고 놀았던 추억이다. 거기서 지금의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인과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언양 골짜기에서 나고 자라며, 일찍이 수려한 산새와 들판의 아름다움은 그의 탐미의 근원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수석과 분재를 취미로 하기도 하고, 탐미적인 취미는 도자기에 이른다.
도예가 김춘헌(48)씨는 도자기에 대한 오랜 관심 끝에 지난 95년 신정희요에 들어가 가마일을 배우기에 시작한다. 40줄의 나이, 새로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다소 늦은 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일이었다. 힘들고 고된 가마일을 배우고 익히는 동안 자신의 작업에 대한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지난 98년 자신의 가마를 지어 창작에 매진한다. 
도예가 김춘헌씨는 울산시 울주군 석남사 입구의 살티고개에 터를 닦고 작업을 시작했다. 자연이 좋아 자연 속에서 작업하며, 진솔함을 닮은 그의 도자기들을 찾는 이들이 차츰 늘어나게 되고 그는 2003년 대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시작은 늦었지만 진중한 작업 3회 개인전으로 결실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도예 작업에 있어서 나무가 주는 의미를 깊이 생각했다. 물론 도자기는 흙이 기반이 되지만, 나무로 불을 때고, 그 재로 옷을 입히게 되니 나무에 대한 고마움과 신비로움을 안고 작업했다. 그는 “도자기를 ‘흙과 불과 재’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도자기는 사람의 손으로 빚어지지만 자연과 따로 생각할 수 없고, 숲속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 공간 또한 나무가 주는 여러 혜택 중 하나로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2005년 두 번째 개인전은 서울 인사동에서 열었다. 다기와 식기를 차별하지 않는 그의 작업은 1회전에 비해 보다 다양한 작품들로 선보여졌다. 다기와 다완 물항아리 등과 여러 형태의 접시 대접 등은 다양한 느낌의 회령유 이라보유 분청유 백유 등을 입고 있다. 규산질 재를 사용하는 회령유는 신비로운 요변을 보여주기도 하고 담담한 따뜻한 색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올봄에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는 다완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손안에 안기는 맛이 좋은 정호다완 등이 호응을 얻은 전시였다. 매해 봄에 개인전을 열어온 그는 내년에 또 봄전시를 준비중이다. “겨울에는 작업하기가 힘들어요. 게을러지기 쉬운 때죠. 그래서 일부러 봄에 전시를 잡아놓고 작업이 늘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언양지역 질좋은 흙으로 이뤘던 문화의 역사
자신의 도자기로 정체성 이어지길
예부터 언양(옛지명 언양면은 지금의 울주군과 울산시 일부를 포함한다)은 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고, 질좋은 흙을 기반으로 차밭과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들이 만들어졌던 지역이다. 다계리 차리 명촌리 향산리 도리 등의 지명에 그 흔적이 남아있기는 하나, 일제시대 한자표기를 차나 도자기와 관계없는 한자로 대치된 채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이견이 많긴 하지만 대정호사발의 본토라는 주장과 연구가 개별적으로나마 진행되고 있으며, 15세기 이전부터 질그릇가마와 백자를 굽던 지방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도예가 김춘헌은 언양지역에서 출토된 문화재 등을 근거로 가마터들을 찾아다니며 지역 도예의 정체성을 찾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그가 찾아낸 도편 중에 15세기 백자조각을 보여주며 “이지역에 이런 빛좋은 백자 파편이 종종 나옵니다. 국보 172호인 백자상감초화문 편병이나 호암박물관에 소장된 앵무잔 등이 이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작업실 여건이 여의치 않아 백자 작업을 원활히 하지 못하는데 백자작업을 점차 해나가고 싶습니다”고 말한다. 

처음 가마를 짓고는 토련기도 없이 수비한 흙을 정제하고 밟고 발물레를 돌려 그릇을 빚고 장작가마를 피워 완성했다. 수비해 얻어지는 흙의 양이 너무 적어 분청토 산청토 등을 사다가 섞어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역의 흙을 사용해 지역의 특징을 갖는 도자기를 빚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백자토를 찾아내기도 했지만 아직 백자 작업량은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보여준 백자 파편처럼 완전무결한 흰색이 아닌, 미세한 철이 점점히 들어있으면서, 따뜻한 푸른빛이 도는 백자는 그 작업의 목적점이기도 하다.

가파른 경사면에 위치한 가마로 다양한 유약 번조
그의 가마는 25° 경사면에 위치해 있어 불심이 좋다. 가파른 가마경사로 불길이 빨리 이동해 회령유 등 고온에서 소성되는 자기를 때기가 좋다. 두달에 한번정도 재벌을 때는데, 앞쪽에는 회령유를 주로 넣고 뒤쪽에는 분청유 종류의 찻그릇들을 주로 재임한다. 김춘헌 도예가는 식기작업에 있어서도 찾그릇과 우열을 두지 않는다. 차마시는 일보다 밥먹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이고, 밥그릇이나 찻그릇이나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찻그릇이나 밥그릇이나 판매가격의 차이도 없고 식기라고 많이 만들어 쉽게 팔지도 않는다.

요리에 대한 관심으로 식기에도 애정 
차와 함께 도자기문화의 역사를 간직한 언양지역의 정체성을 품은 그릇들을 만들고자 하면서 한편으로는 현대인들의 생활에 어울리는 그릇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군대시절 우연히 취사반에 복무하면서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후 음식점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의 식기작업에 일말의 도움이 되고 있다고 여긴다. ‘불편한 그릇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라며, 자신의 그릇을 설거지해보며 무게감이나 크기의 감을 익히려고 한다. 그의 그릇들은 소박하다. 때로는 그릇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담담하게 대하게 되다가도 손안에서 정이 들고 사용하면서 더 가치를 갖게 된다.

신정희 요에서 사사하던 시절에 대해 묻자. “우리 것의 아름다움에 눈뜰 수 있었던 것”이 큰 소득이었다고 말한다. 신정희 선생 슬하의 여러 제자들과 친분을 갖게 된 것 또한 그의 작업에 좋은 여건으로 작용한다고 여긴다. “우리 골동을 보는 눈 뿐 아니라, 접하는 태도 보는 방법 등을 배웠습니다. 도자기 작업이 그저 생계의 일환이기 보다 진지하게 탐구하는 과정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 옛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것이 사기장으로서의 가장 큰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 속에 찾은 인생의 전환점
큰 감사로 안분지족하는 삶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어울릴까? 그는 매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다. 모두가 어려웠던 98년, 그의 삶에 있어서도 경제적으로는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으나 인생의 전환점이 된 특별한 시기이기도하다. 갖고 있던 골동품들을 팔아 지은 작업장에서 홀로 흙을 밟고 장작을 패면서 도자기에 대한 열의는 깊어갔고, 깊은 고독과 함께 자신 안의 절대자가 더욱 확고해졌다. 개신교회의 집사이기도 한 그는 8년을 작업하며 길지 않은 시간동안 이룬 것들에 늘상 감사하고 있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사진설명>

1. 도예가 김춘헌
2.직접 지은 통나무집에 볼밀이 돌고 있다
3.다기
4.분청다기
5.언양지역의 도자파편들
6.야생화를 꽂아놓은 화병과 다기들
7.사각접시

< 더 많은 사진은 월간도예를 참조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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