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전시의 재점검
졸업작품전의 의의
글 곽태영 _ 건국대학교 디자인조형대학 공예학과 교수
결실의 계절 가을!
그 가을의 중심에 서있다. 지난 10월부터 서울은 물론 각 지방도시마다 수많은 향토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름을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테마와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는 그 수많은 축제에 모두 참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공한 축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입소문으로 들어온 축제 중에서 선택하여 그 축제의 진수를 맛보며 즐기게 된다. 전국에서 650여개 이상의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그중에는 성공하는 축제와 실패하는 축제가 공존하고 있다. 성공하는 축제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고 그 관심은 업그레이드되는 프로그램과 맞물려 신나게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실패하는 축제에 가보면 썰렁하기 이를 데 없으며 왜 이런 데 예산을 써야하는지 의문스러울 뿐이다. 그런 축제일 경우 기왕에 벌여놓은 축제인데 관성처럼 굴러가기 마련이고 매너리즘에서 헤어나지 못하며, 주인 없는 축제로 전락하여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발전보다는 그 해의 의무적인 권위적 행사로 전락하면서 몇 년을 보아도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 식상하게 되고 외면당하게 된다.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대학에서도 졸업작품전이라는 이름의 축제가 열리게 된다. 취업 시기를 고려해서 졸업작품전의 시기가 당겨지는 추세에 있기도 하지만 도예전공의 경우 작업의 특수성으로 인해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졸업작품전의 특징은 매년 새로운 얼굴들이 참여하는 것이며, 준비기간이 4년 혹은 2년으로 한정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1년이 주된 준비시간일 것이다. 마지막 학년은 졸업작품전을 위한 시간일지도 모를 정도로 올인하게 하는 것이 한국 대학의 현실이다. 갑자기 가속도가 붙고 정신없이 달려가고 이내 멈추어 서서 졸업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4년 동안의 땀과 노력의 결실을 한 자리에 모으며, 그 성과를 열매로서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가을 하늘 만큼 높은 미래를 향해 오늘을 되새기며 성숙의 계기로 삼아 도약을 준비하는 장으로 삼겠노라고 늘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부모님들과 선후배 그리고 교수님에게 감사하며 늘 격려와 함께 깊은 사랑으로 지켜봐달라는 부탁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졸업작품전은 동문과 후배를 연결짓는 소중한 자리이며, 인적 네트워킹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사실 졸업작품전이란 것이 졸업을 앞두고 형식적으로는 졸업논문을 대신하는 자격을 부여하며, 대학에서 배양한 자신의 능력을 대외적으로 알리며 공인받는 첫 자리인 셈이다. 따라서 그동안의 성과와 발전된 모습을 확인하고 미래를 설계하며 사회로의 문턱에 서서 진로모색의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졸업은 곧 출발이다
졸업작품전의 중심에는 자신의 작업이 서있어야 한다. 수년 동안의 경험으로 마지막까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신의 조형사고가 고스란히 담긴 정성스런 작품을 담아야 한다. 졸업 작품 준비를 통해 도예의 부족한 과정을 정리해 보고 최소한의 보편적 도예지식을 소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 쏟는 열정이 자신의 스냅사진에 쏟는 정성과 노력보다 우선되며, 작업의 맛을 통해 수련의 깊이를 체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혼과 투쟁하여 얻는 조형의식의 세계관을 소유하며, 미래의 자산인 창작의 의식적 훈련을 통해 얻는 작업에 관한 프로의식을 쌓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그러한 잠재성은 지금을 떠나더라도 수년 후 또는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때 도예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도예는 평생의 업으로 각인될 수 있는 것이다. 흙에는 회귀적 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파동이 숨어있으며 그 냄새는 평생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베어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졸업작품전을 통해 흙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약속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졸업작품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변화의 모색보다는 정체되는 행사로 경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우선 도예전공이 개설되어 있는 대학의 수가 기형적으로 늘어났고, 따라서 졸업생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아 졸업 작품 본연의 깊이 있는 질을 추구하기 보다는 양적인 팽창으로 인한 평면적 사고발상의 형식주의와 평준화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점점 그 학교의 색채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착시키며, 졸업동문의 작품과 유사성을 더하고, 일부에서는 해외 책자나 전시작품의 모작도 보여 지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작업하려는 안이함을 방조하거나 방임하는 오염된 환경은 도예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 부족하지만 신선함이 있는 작품, 정말 젊은 그 끼가 있는 작품들이 졸업인원이 비대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누구도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졸업작품전은 스스로 벗어나는 선언적 의미를 갖는다. 떠나기 위한 모의고사이며 스스로에 대한 알림이다. 이제 너는 떠난다. 아무도 우리를 기다려 주질 않는다. 스스로 원해서 지원하는 전공인원이 원활하지도 않은 요즈음, 취업의 만족도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인프라 조성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젊은 학도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멀티 커리큘럼과 시대적 트렌드와의 조화로운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젠 그들이 스스로 흙이 좋아 흙에 빠져 작업하길 기다리는 교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컴퓨터응용 과목만을 대폭 늘려간다거나 일부의 도예 전공과목만을 가르친다거나 하는 우를 범해서는 더욱 힘들어지는 것이다. 당연히 컴퓨터는 이젠 보편적인 필요도구이다. 또한 도예를 전공하고 물레성형도 제대로 못하는 이들에게 도예의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꽃과 음식과 술과 차와 관련된 도예, 건축과 관련된 도예, 창작적 조형을 담은 도예 등 다양한 모습이 졸업작품전에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타일디자이너를 보고, 정말 물레 잘 차는 친구를 만나고, 조형작가를 꿈꾸거나, 공예디자이너를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도예촌에 대학출신의 공방이 늘어가며 도예 관련 축제나 페어에서 그들의 프로다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직업으로 당당히 어깨를 겨루는 모습이 평생 열어갈 그들의 미래를 밝게 비추고 있다. 그러한 변화들이 졸업작품전에 미래를 열어주는 키워드로 작용할 것이다.
필자가 경계하는 것은 농업분야의 프로젝트나 관련기관이 엄청나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쏟아 붓는 예산에 비해 실질적인 농업인에의 현실적인 만족감이 과연 그만큼 충분할까 하는 것이고, 염려스러운 것은 농업전공 관련 학생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프로그램인지 혼돈스러울 때도 있다.
수많은 도예 관련 미술관과 테마박물관이 지방 각지에 건립되고, 매년 도예축제가 열리고 있다. 디자인테마페어에 가보아도 도예는 빠지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기도 세계도자엑스포가 비엔날레 같은 세계적 규모의 거대 행사가 꾸준히 열리며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륜을 더하면서 일반인들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음에도 정작 대학에 돌아오면 그만한 열기를 확인할 수 있는지 자신이 서질 않는다. 연계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며 전공학생들과 연계된 프로그램의 운영과 지원이 늘어나야할 것이다.
졸업작품전은 다리가 되어

왜 졸업작품전은 끝나고 나면 그 가치의 부여에 의문이 서는 것일까? 늘 같은 형식의 보여줌과 이어지지 않는 멈춤의 전시회로 남는 현실에서 이제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희망을 보여주는 전시사례들이 최근 살아나고 있다. 대학 동문전이 구태의연함을 벗고 신선한 테마를 부여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갖고 변하고 있다. 작업을 같이하는 이들이 모여 형성하는 브랜드 카르텔처럼 대학의 졸업작품전도 고객과 직접 만나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테마전과 획기적인 전시방식, 장소의 선택 등이 참여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쏟게 할 것이다. 재미있는 전시회 즐거운 전시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지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 속에 오늘의 졸업작품전의 의의가 숨어있을 것이다.
졸업작품전에는 부모님들을 모시고 격려해주는 동문들과 주변의 친구들이 모여 치루는 학예회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끼리만 모여 치루는 잔치는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개 졸업작품전을 하는 장소가 학교를 벗어날 경우 해당도시에서는 제일 알려진 공간이거나 서울의 큼직한 갤러리 공간이다. 개인적인 출혈적 투자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초대해야 한다. 아는 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관련업계는 물론 다양한 계층의 관람객을 초대하고 그들의 평가를 받는 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초콜렛과 축하화환의 예비졸업식도 중요하겠지만 졸업작품전을 통해 유망 신진으로 주목받거나 빨간딱지가 붙여질 수 있는 가늠의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가 연구교수로 있었던 몇 년 전, 호주대학교의 짧은 사례를 통해 졸업작품전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서 그 의의를 도출해보고자 한다. 
졸업평가회Assesment의 경우 호주국립대학교와 시드니 내쇼날 아트 스쿨이 동일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졸업작품전 몇 주 전에 모의 전시와 함께 작품심사를 받는데, 이때 작품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심사교수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된다. 2~3명의 해당 전공 교수와 1~2명의 타전공 교수가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집중심사를 하게 된다. 질의와 응답이 끝나면 학생은 자리를 비우고 심사교수들의 본격적인 심사가 이루어지게 된다. 이후 학생을 불러서 점수를 통보해 주면서 심사평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심사평에는 작품만이 아니라 디스플레이에서의 수정사항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지적해 준다. 디스플레이는 본인이 주도하며 전시대나 실내는 원상복구를 전제로 자신의 작품에 맞는 페인팅과 소품 인테리어를 부가할 수 있다.
두 학교 모두 교내에 대형 화랑을 갖고 있다. 졸업작품전은 모든 전공이 연합해서 전시회를 하며 그 내용을 비교하게 된다. 모든 전공이 모이니 다양한 미술관계자들과 영향력 있는 유력 인사들을 한 번에 초대하므로 참석이 용이한 것이다. 오프닝 리셉션에 참석한 엄청난 인원에 놀랐다. 전시를 보기 위해 온 애호가들로 북적되는 졸업작품전은 살아 숨쉬고 있었다. 관계자나 학부모뿐만 아니라 동문은 물론 지역의 작가, 평론가, 화랑 관계자, 그리고 컬렉터들이 대거 모여 들어 작품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졸업작품은 으레 판매를 위해 가격을 정해 내놓게 된다.
외부의 스폰서상이 주어지게 되는데, 졸업작품전에서의 수상은 명예와 함께 경제적인 데뷔를 이끌어 주게 된다. 자넷맨스필드상, 뮤라갤러리상, 지역공예협회상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그밖에 미술협회, 공예협회, 화랑, 도자재료상, 도예잡지사에서 후원이 이루어진다. 내역을 보면 개인전의 지원, 상금, 잡지 1년 구독권, 재료의 공급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게 된다. 수상자에게는 학교에서 레지던스 아티스트로 남아 6개월 한 학기 동안 개인전을 준비하고 해당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초대받게 되어 도예가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전시회를 통해 작품을 검증받고 다른 기성작가에게 픽업되어 공동으로 스튜디오를 이끌기도 한다. 비밀에 붙여졌던 상을 발표하면 모두 환호하며 축하해준다. 끝남의 자리가 새 출발의 파티를 여는 축제의 자리가 되는 것이다. 오프닝의 다과와 와인 음료수 등은 오픈데이의 도예체험, 라쿠소성, 피자판매 등으로 얻어진 수익금으로 지원해 준다. 공동의 관심과 참여로 당해연도의 주인의식을 충분히 심어주는 것이다.
마무리
우리는 학예회수준으로 전락한 졸업작품전을 본 적이 있다. 우리끼리 모여 축하하며 졸업의 면죄부를 주던 부담스런 전시회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는 희망이 있는 도예문화를 가지고 있다. 시스템만 잘 구축하면 양질의 도예인프라를 형성할 수 있다. 우리에겐 지울 수 있는 역사적 전통과 훌륭한 도예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졸업작품전은 과대포장으로 용서되는 전시회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용과 이야기가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회기가 끝나면 팜플렛 속으로 사라지는 망각의 전시회는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엔 지난 수년의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 일인가?
<사진설명>
제3회 토야테이블웨어페스티벌 - 희고희고공방
제3회 토야테이블웨어페스티벌 - 공주대학교 부스
호주의 졸업작품전 심사자료 - 포트폴리오와 실험자료들
호주의 졸업작품전 모의심사 디스플레이
호주의 졸업작품전 심사위원회
필자 곽태영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건국대학교 디자인조형대학 공예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호주국립대학교(ANU)와 시드니 내쇼날아트스쿨(NAS)의 연구교수와 방문작가로 활동했으며 7회의 개인전과 250회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건국대학교 충주캠퍼스 교무처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한국화예디자인학회 부회장, 한국기초조형학회 책임이사와 세계도자기엑스포 자문위원,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사진이 생략되었습니다. 월간도예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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