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길 Kim GwangGil
전통 도예의 현대적 변용
글 박정기 조선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김광길 교수(서남대)의 <연잎이야기>전이 지난 1월 10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는 고려청자의 고향인 전남 강진康津 출신으로 그간 전통 청자를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 남다른 관심과 정열을 기울여 온 중견 도예가이다. 그는 조선대학교에서 도예를 전공함으로써 도예수업을 시작한 이후,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주로 여러 공모전을 무대로 꾸준히 도예가의 경력을 쌓아왔으며, 그 기간은 이미 15년이 넘는다. 그는 결코 짧지 않은 이 기간 동안 고려청자를 재현해 그 전통을 이어가는 작업을 줄기차게 계속해온 것이다. 그는 특히 화공약품을 섞지 않은 천연 청자유약靑瓷釉藥을 사용하여 고려 청자의 비색翡色을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였으며, 그 성과를 <다완茶碗 이야기>를 주제로 한 2004년의 제2회 개인전에서 보여준 바 있다. 이 전시회에 출품된 각가지 형태와 색의 청자다완들은 전통적인 고려청자 재현의 가능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도 남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정겨운 지리산 자락 남원시 이백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작가의 작업실을 찾는 사람들이 그곳을 천연유약 연구소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많은 소나무의 재灰와 장석長石, 규석硅石, 석회석石灰石 등 천연 유약을 만드는 재료들 그리고 실험과정을 보여주는 각가지 실험도표로 가득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김교수는 그러나 단순히 고려청자를 옛 모습 그대로 되살리는 작업에만 매달려 온 것은 아니다. 그가 추구해온 것은 궁극적으로 고려청자를 포함한 전통 도자기를 현대적으로 되살리는 것, 그 현대적 변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지향과 의도는 이미 <꽃과 접시>를 주제로 한 2002년의 첫 개인전에서 뚜렷이 드러나 있다. 이 전시회에 선보인 도자작품들은 주로 안쪽 표면을 꽃의 형태로 장식한 커다란 접시들로서, 암청색과 회청색, 붉은 빛이 감도는 갈색, 또는 엷거나 검은 녹색 등 우리의 어둡고 유연한 내면세계를 표출하고 있는 듯 강한 정서적인 색채로 칠해져 있으며, 꽃 장식을 제외한 나머지 표면도 마치 거친 땅의 흙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거나 빗살문양이나 직선, 또는 좁은 청색 띠의 문양 등이 첨가되어 마치 우리가 현대 모노크롬 회화작품을 대하는 것 같은 인상과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는 그의 뛰어난 회화적 감각을 사용하여 고려청자를 포함한 전통 도자기의 현대회화적 표현 가능성을 추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04년 <다완 이야기>에 이어 열린 이번 제3회 개인전 <연잎 이야기>의 출품작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 작가의 회화적인 감각이 한층 더 세련되고 심화되었음을 깨닫게 한다. 작가는 마치 연잎에서 청자의 다른 모습을 보고 있는 듯, 연잎의 단순한 원형의 형태와 녹색 속에 전통적인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표출해내고 있으며, 이를 위해 비색청자翡色靑瓷의 기법을 새롭게 현대회화적으로 변화시켜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번 전시회의 연잎 청자들은 전통적인 고려청자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번 전시작들은 이러한 청자의 현대적 변용과 함께 새로운 현대적 확장도 아울러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이 작가가 그 동안 고려청자를 포함한 전통 도자기의 현대회화적인 표현 가능성을 추구해온 논리적인 결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이번 전시회에서 우선 도자조각을 시도하는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작품들 가운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잎 청자들은 조각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는 형태미와 색채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받침대를 붙인 연잎 청자들은 연잎만으로 되어 있는 작품들과는 또 다른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받침대를 첨가한 이 연잎작품의 제작을 위해 청자제작에 흔히 사용되는 성형법이 아닌 ‘주입성형注入成形’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먼저 석고로 틀을 만든 다음 점토粘土나 소지素地를 물에 푼 현탁액懸濁液, 즉 이장泥漿을 석고石膏로 된 틀 사이에 부어넣어 성형하는 기법이다. 이 주입성형은 작은 도자기의 경우는 비교적 용이하지만 적어도 60cm가 넘는 크기의 도자기를 이 기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그러나 거듭된 실패를 극복하고 이번 전시회에 뛰어난 조형미를 지닌 주입성형의 도자작품들을 선보였다.
작가는 이밖에도 이번 전시작들을 통해 도자조각을 시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치 내지 환경조각의 가능성도 아울러 탐색하고 있다. 이것은 연잎이 우리 전통적인 시골풍경의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연잎 작품들과 받침대를 붙인 연잎 작품들을 전시장에 다양하게 설치함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연잎이 덮인 우리의 전통적인 농촌의 연못 풍경을 떠올리게끔 하고 있다. 전통 도예의 현대적인 변용과 확장을 추구하고 있는 김광길 교수의 이번 도예전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도시 한 가운데서 우리 고유의 토착적인 정서를 일깨우고 신선한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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