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유자기 차도구 요장/향림도예원
고운 선을 따라 미끄러져 내릴 듯한 매끈한 도자기 표면에 잔잔한 눈보라가 일어나 아름다운 눈꽃들이 여기저기 내려앉아 신비롭기만하다. 비단 같은 머릿결이라는 말처럼 비단결 같은 도자기라는 표현이 떠오르게 만드는 결정유자기.
중국 명나라 때 처음 만들기 시작하면서 활발하게 제작되던 결정유자기가 결정효과를 좌우하는 번조 여건과 재료 조합에 대한 비발명·비개량 때문에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가 19세기경 영국에서 다시 결정유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되었다. 결정유자기는 번조과정 중 가마 안에서 여러 가지 아름다운 형태의 결정상이 피어난 도자기이다. 작가가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으로 결정유자기를 만들어내지만 번조과정에서의 요변은 작가의 능력을 벗어난 불과 공기의 몫이다.
경남 고성에 위치한 향림도예원은 결정유자기 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는 전통요장이다. 이 곳 주인은 결정유자기 작업을 40년간 해 온 도예가 이계안(60)이다. 27살 일본인 밑에서 작업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결정유와 인연이 닿아 이후로 40년간 결정유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17년 전 이곳에 장작가마를 짓고 현재는 결정유를 이용한 차도구를 제작하고 있다. 처음부터 차도구를 만들어온 것은 아니다. 이전에는 주로 창작작품을 만들었지만 IMF이후 상황에 맞추어 차도구를 제작해 차애호가들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결정유를 사용한 차도구를 만듦으로써 차인들에게 더 깊은 만족감을 제공한다. 차도구의 고급화를 위해 수량에 얽메이지 않고 작업하고 있어 차애호가들이 수시로 드나들며 구입한다. 도예가 이계안은 하루 작업시간으로 16시간을 어기지 않고 지켜왔을 만큼 결정유 작업에 성실하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체력이 약해져 하루 6~7시간을 작업하고 나머지 시간은 찾아오는 손님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그는 결정유자기에 대한 애정과 끊임없는 연구로 황토천목유를 개발했다. 황토의 순기능을 살려 따뜻한 환경에서 몸에 좋은 바이오 물질이 분출되도록 많은 실험과 연구 결과 유약을 개발해 향토천목유자기를 완성해 냈다. 그리고 번조과정에서 연료를 줄일 수 있는 기법을 발명해 낸 결과 ‘2005년 문화예술분야 신지식인’상을 수여받았다. 그에게 상은 검증의 의미이다. 은사님께서 상은 자신의 작품이 다른 이에게 검증 받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가르쳐 주셨고 결과의 객관성을 얻고 싶어 출품하다보니 많은 상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전통 도자기 제작에서 같은 원료를 사용할 지라도 불속에서의 원료변화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그는 장작가마와 가스가마, 기름가마로 번조방법과 가마종류에 따른 차이점을 연구하며 수많은 데이터를 확보해 왔다. 그는 이렇게 끊임없는 실험과 연구로 얻어진 데이터가 언젠가 결정유 작업하는 이에게 도움을 주게 되길 바라고 있다.
이계안 도예가에게 가장 애착이 느껴지는 유약은 천목天目유다. 천목은 불에서 일어나는 결정의 일종으로 다른 유약보다 불의 온도나 원료에 따라 색감과 결정크기에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서 작업 할수록 과정과 그 결과에 몰입할 수 밖에 없고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천목은 태토보다는 유약과 번조가 결정과 반점을 일으키는 데 역할이 크며 원료 속에 포함된 철 외에 망간, 티탄과 같은 물질들은 소량이지만 작품완성도의 차이를 크게 한다. 천목유를 새롭게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직까지 극히 소수이다.
계획대로 작업진행이 잘 풀리지 않거나 유약 실험시 예측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머리를 가마에 박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지금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일어서곤 한다. 분명히 그의 노력과 연구에 대한 그 가치는 변함이 없지만 훗날 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결정유의 가치에 눈을 뜨게 된 이들은 이계안의 결정유자기에 대한 열정을 사랑하고자 할 것이다. 또한 그 때까지 경남 고성의 작은 가마 안에서는 비단같은 도자기 표면에 아름다운 함박눈 꽃송이들이 내려 앉을 것이다. 장윤희 기자 bless_tree@naver.com
향림도예원 경남 고성군 하이면 봉현리 118-3 | T.055.835.8888 | www.wasim.co.kr
< 더 많은 자료는 월간세라믹스 2007년 5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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