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위한 디자인/2007서울리빙디자인페어 참관기
2007. 3.22 - 3.26 서울 COEX 태평양·인도양홀
글+사진 박송훈 수원대학교 공예디자인과 도예
전공 4학년
나의 생각엔 디자인이란? 인간공학에 있어서 발전도 변신도 독창적 산물도 새로움도 아닌 환경속의 인간 그 자체다. 그렇다면 인간과 가장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디자인 중에서도 <인간의 삶>이라는 것 자체를 주제로 하는 디자인페어를 보기위해 지난 3월 24일 토요일 삼성동 코엑스몰을 찾았다.
《네오 노스텔지어》라는 주제로 열린 <2007서울 리빙 디자인 페어>. 이 페어를 통해 진정으로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디자인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가늠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어떠한 디자인이 이상하게 된 것인가? 일일이 만져보고 사용해보고 심사를 한 것인가? 아니면 디스플레이를 위해 제품의 진정한 용도와는 별개로 단지 구경하는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고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끔 해놓은 부스에게 상을 수여한 것인가? 사실, 수상 결과만 놓고 보자면 시상에는 두 가지 모두가 해당된다. 기준도 인간이고 판단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네오 노스텔지어... 태평양홀에서 티켓을 내고 왼쪽부터 돌면 가장먼저 보게 되는 부스가 ‘디자이너스 초이스’였다. 네오 노스텔지어를 주제로 한 전통과 전통 속 자연 그리고 그 안의 유토피아를 검은색 부스와 내부 공간 관람 형식의 디스플레이로 돌과 나무와 인공조형물의 믹스매치를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 할수록 사람들은 과거의 문명에서 유토피아를 찾는다. 하지만 지금 흘러가는 시간의 방향은 첨단을 달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스토리의 옥토에서 자란 나뭇가지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나뭇잎들의 색상은 어떻게 다양해지고 있는가? 이는 전시장의 태평양 홀에 있는 「Hillstate trend forum」의 공간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과 함께하는 한국 전통적인 누각을 첨단기술로 표현하는 것에
서 하나의 색상을 볼 수 있다. 입구의 디지털 스크린에 표현된 물고기들의 헤엄치는 모습은 도심 속 유토피아를 꿈속의 한 장면처럼 그려냈다.
디자인 페어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입구의 태평양 홀에는 기업 위주의 인테리어 관련 가구나 벽지 등이 많았고, 그에 반해 내부 입구로 통한 인도양 홀에는 중소 업체들의 아이디어상품과 생활 공예품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렇게 많고도 다양한 색상의 디자인페어를 관람할 때, 하나의 흐름(트랜드)을 살펴보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보이는 대로만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 세세하고 깊게 보는 것을 좋아했지 전체적으로 보려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높은 곳에서 멀리 전체를 보려하는 것은 풍성한 나무의 나뭇잎을 헤쳐내고 진정한 나무줄기의 흐름을 보려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올해 디자인페어는 실용적이고 우아한 디자인 부분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디자인페어에 비해 환경과 실용성을 더욱 고려했고 한층 첨단적으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였다. 진보적 디자인과는 별개로 전통적이고 형식 그 자체가 장르인 디자인도 사실 사회적 흐름과 함께 흐르는 사람들의 심리는 거스를 수 없었던 듯하다. 아주 작게나마 미래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관객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끌었던 디자인소품과 가구, 패브릭, 부엌가구 분야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 것은 시각적 형식의 간소화였다. 특히 라인을 살려 다리대신 지렛대의 원리로 둥근 돌의 무게로 서있는 깔끔한 세련미를 자랑 하는 의자는 ‘미국 활엽수 수출협회’의 아트퍼니처 최병훈씨의 작품으로 친환경(천연소재-나무)적 이면서 미래지향적인 질적 가치의 향상을 짧은 연
설하듯 간결하게 보여주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간소화가 간결함이 되고, 간결함이 우아함이 되는 것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인간 지향적 디자인과 환경 지향적 디자인이 간결함과 같이 하는가? 그것은 결국 한 폭의 그림에 표현된 적절한 배치의 붓질을 뜻한다. 필요 이상과 이하의 중심점인 적재적소의 것이다. 보통 이러한 간결하면서도 분석적 입장은 시각적 감각의 입장에서는 시원한 맛을 준다. 예를 들어 현대의 에코인테리어에서 친환경적인 시원한 설계는 넓은 공간이 아니라 넓어 보이는 색과 분위기, 그리고 가구배치의 조화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 현대인들은 생활 속 디자인의 우아함이란 단어의 뜻을 감각의 무의식 속에서 위와 같이 해석하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두에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말로 시작을 했다. 사실 오래전에도 그래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 올 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 사회가 열릴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어디서나 통하는 절대적인 말로 본인의 글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 같긴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수많은 인간들의 희노애락이 낳은 바램이 디자인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했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더 많은 사진을 보시려면 월간도예 2007년 5월호를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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