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술품 감상
안덕환의 세 번째 골동 이야기
만물의 모태는 흙이다. 토기를 대할 때마다 흙에 관한 생각들을 하게 되고 때때로 흙에 대한 생각을 잊거나 무관심해 질라면 토기가 다시 일깨워 주기도 한다. 먼저 토기는 가장 무난한 색이어서 색깔로서의 갈등을 야기시키지 않으며 극히 평범한 느낌으로 몰입케 하는 촉매 역할도 하며 내 푼수를 가리게 하는 본보기도 되어 준다.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 누구나 삶에 대한 긍지를 갖고 그 멋으로 살아간다. 사람에 따라 재력이나 자식, 치장 또는 신념이나 지식 등으로 그 멋을 만끽하고자 한다. 참말로 흙에 대한 멋을 알고 나면 그 모든 것들은 우스꽝스러워지며 하찮은 것들로 탈바꿈하기에 이른다. 깨우쳐 보면 흙에는 ‘멋이란 멋’은 없다. 그 없다는 멋이 흙의 멋이다. 근간에 나는 사진기를 메고 흙이 가꾸어 놓은 이곳저곳을 헤메인다. 흙이 없다면 발 디딜 곳도, 사진기를 들고 헤메일 만한 곳도 없을 것이다. 지난날 내 마음이란 창틀 안에 흙이 있는 풍경들을 담아 왔다. 그것이 잘 담겼을까? 나만의 한적한 곳에서 다시 꺼내 보았을 때 나에게 또 어떠한 멋을 선보일는지 두근대기만 하다.
‘만일에 흙이 없었더라면?’ 다행스럽다는 듯이 큰 한숨이 저절로 쉬어진다. 흙은 뉘가 뭐래도 그것만의 멋스럼으로 우리들을 사랑하기만 한다. 그것도 끝없이 영원히 말이다. 우리가 흙의 소산인 까닭일까! 다시 토기를 생각해 본다. 우리들처럼 재잘댐이 없다. 삿대질 하거나 발길질도 없다. 그냥 가꾸어 놓은 표정 그대로다. 흙은 오직 흙의 멋 하나만 간직하고 산다.
토기를 생각하며
신라 토기다. 토실토실 살찐 오리가 입에 고기 한 마리(머리와
꼬리 부분은 깨어져 없다)잡아 물고 만족한 듯 기분 내고 있는 멋진 연출 장면을 보라. 잡은 고기 놓칠세라 빼앗길세라 물속의 고기를 낚아채자마자 고개를 홱 돌려 경계하는 모습이 아닌가. 이 오리는 한눈에 진짜 오리 같다. 실제 덩치가 집오리만은 못하지만 작은 바다 오리만큼이나 되며 막걸리 한 됫박은 족히 찰 것 같다. 이 오리는 도공의 예술적인 감각과 예능적인 기지가 뛰어 난 작품이다. 실상을 머릿속에 그려 담고 손으로 빚을 때 망설이거나 주저함 없이 능란하게 빚어 내었다. 이 오리의 몸매와 인상을 보아 도공의 춘추가 가히 짐작된다.
오리의 몸매는 팔팔하게 튀지 않는 의젓한, 세월아 네월아 상이고 인상은 이 세상만사 풍파 모두 겪어 무엇이든 서두름 없이 느긋한 표정들을 미루어 보면 인생의 여유를 지닌 어느 늙수그레한 영감의 환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오리가 고개를 뒤로 돌리는 때 목살이 주름져 생기는 모양과 게슴츠레한 눈매하며 세상 모든 것을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처럼 매서운 눈초리 같은 예사롭지 않은 솜씨가 더욱 도공의 연륜을 짐작케 한다.
조물조물 만지작거려 앙증스레 빚어 붙인 오리 뒷꽁무니, 아무렇게나 주물러 갖다 붙인 두발은 물을 휘젖고 다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뒤뚱뒤뚱 웃음 짓게 하는 오리걸음도 연상이 되니 이 모두를 훌륭하게 연출시킨 셈이다. 우리 조상의 지혜롭고 슬기로운 예술성의 기지가 대단함을 보여주는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참고] 흙속에 규석분의(차돌멩이) 함유량이 많아 1,300도 정도에서 규석분이 용해되어 밖으로 배퇴되고 재와 범벅이 되어 유약화되는 현상은 거의 없고 신라토기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바로 이 오리 한편에 있는 광채 나는 유약은 그로 인해 생긴 것이다. 이 유약이 후에 고려청자의 청자 유약화에 일조 한다.
옛 도공들의 푸념 도서출판 달항아리
저자 안덕환의 골동품 41점에 관한 사진과 구체적인 해설이 실려 있다. 골동의 미학을 제대로 배우기에 충분한 책이다. 본지의 <고미술 감상>은 매월 「옛 도공들의 푸념」내용에서 발췌·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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