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 쥔 시간과 공간
<임란壬亂 400년> 한·일 청년작가교류전
서울 한국공예문화진흥원:2007. 4. 25 - 5. 1
우리는 가끔 전시장에서 혹은 주변에 설치된 현대 예술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을 어떤 식으로 읽어야 할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조용하고 차분했던 과거의 예술에 비해 오늘날의 예술은 완전히 이질적이거나 예술의 문맥 속에 있지 않았던 것들, 혹은 금기시 되었던 것까지, 그 동안 침묵 속에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모두가 각기 다른 소리로 토해내는듯 하다. 때때로 다양한 예술의 표현과 방법론으로 인해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오히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개방성과 일상 깊이 파고든 예술 덕분에 작가는 오히려 관람자에
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려는 제스처를 취하게 되었다.
또한 관람자 역시 예술을 알기 원하며, 나아가서는 참여까지도 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작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에게 머물게 할 뿐만 아니라 관람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저자의 죽음-관람자의 탄생”을 말했듯이 현재의 예술에서 보여지는 다양함과 이야기들은 작가와 관람자들 사이에서 마치 거미가 집을 짓듯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확장되어 가고 있다.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진행된 <임란壬亂 400년 한·일 청년작가교류전>은 한국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와 일본 하기萩陶의 갤러리 사이토앙이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지난 1999년 <큐슈九州 400년 그 후 한국전>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양국 도예가들의 화두인 전통의 계승, 발전 및 현대화, 지역적인 특성에 대한 일련의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한·일 양국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역사적, 정신적 의미와 예술의 범주 자체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도전을 발견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임진왜란 전후로 많은 도공들이 일본으로 이주하여 우리의 도자기술을 전해줌으로써 일본도자기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이처럼 조선 도공에 의해 전해진 비법으로 생산된 많은 도자기들은 외형과 감성의 표현에 있어서 일본 특유의 것으로 정착되어 발전해 나갔다는 사실과 함께 한국이 일본 도예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음을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전시장에 진열된 각개의 사발들은 마치 과거 조선 도공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재현한 듯하며, 높고 낮은 전시대의 배열은 기념비적인 공간을 연출하며 극적인 전시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자 조형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넘나들며 앞으로의 새로운 도자 예술의 방향성을 한 손에 움켜쥔 굳은 의지로 여겨진다. 또한 작가 개개인의 개성이 뚜렷한 작품들과 더불어 오늘날 ‘다완茶碗’이라고 불리우는 사발의 동일한 주제의 선택은 작가 자신이 역사적, 문화적 다의성을 개별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의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들은 어쩌면 일반 관객들에게 매우 복잡하고 어려울지도 모른다. 특히 도예라는 장르는 타 장르와 달리 전통적인 역사를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없으면 더욱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 도공, 그리고 그 후예들이라는 사실에서 벗어나 현재 양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대 도자조형의 모습은 단순한 교류만은 아니다. 작가들을 비롯한 많은 관람자들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교감의 자리와 한일 양국의 도자예술을 이끌어 갈 젊은 작가들의 기량을 한 자리에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러한 교류전이 단발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한일 양국에 대한 역사와 문화와 정신을 공유하고 서로 간의 관심과 이해를 도모하며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 2007년 6월호를 참조바랍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