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JANG.HYOUNG.JIN
자유함으로 빚는 흙의 소중함
장형진은 다도구를 만드는 도예가다. 얼마 전 서울 인사동 아름다운 차 박물관에서 그의 전시가 있어 그곳을 찾았다. 연꽃과 개구리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차도구들과 손가락 한마디만한 작은 미니어처 도자기들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기함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장형진의 다도구에는 연꽃, 개구리와 같은 자연의 이미지가 분명히 보인다. 이는 작품 이미지의 모든 것을 단순화 또는 생략해버림으로 최소한의 이미지를 내포하는 다른 작품들의 것과는 사뭇 다르다. 형태나 야물지게 정리된 곡선은 살아있는 이미지를 살짝 덮어버려 고급스러움을 충분히 더한다.
장형진의 작품에는 작가의 걸어온 삶이 고스란히 보이는 듯하다. 흙과의 인연 이전, 경기도 파주 특수학교 미술교사로 있었던 그는 장애우 아이들을 가르치며 3번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다. 다른 교사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할 때 학생들과 농사를 지어 수확물을 얻어 내기도하는 소중한 기회를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추억도 있다. 하지만 그런 기쁨 가운데 때론 가슴 속에 늘 묻혀있는 열정.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끓어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도자기 향초꽂이를 보고 도자기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다. 1990년 1월,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곤지암의 보원요로 내려가 궂은일을 마다안하고 무작정 도자기를 배웠다. 밤새 흙으로 빚어내면 이튿날 신랄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흙을 만질 때만큼은 너무나 행복했기에 그러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다.

현재 그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대영학교-천사원에서 장애우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곳에 온 지 벌써 18년째다. 처음 이곳에서 도자기를 굽는다며 아무것도 모른 채 가스가마를 들여와 가스가 떨어질 때까지 24시간동안 불을 때었던 일부터 이천과 여주에 위치한 공방에 무조건 들어가 투각이며 전사며 배워왔던 일 등 이것저것 도예작업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든지 앞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시도했었다. 이러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해도해도 채워지지 않는 그의 내면의 갈급함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어느샌가 마음의 병이 생겼고 이내 물레를 돌리지 못할 정도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아픈 몸으로 물레는 돌리지 못했지만 흙에 관한 그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미니어쳐 도자기였다. 전시장에 놓여있던 그의 작품은 자신의 걸어온 길을 담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는 깨달았다. 모든 것이 욕심이었다고 고백한다. “무언가 만들어 내야한다.” 보여줘야 한다 라는 부담감으로부터 생겨난 욕심. 그 모든 것을, 심지어는 도자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유일한 그것마저 포기했을 때, 장형진은 비로소 자신이 살아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모든 것을 마치 포기하듯 내려놓았을 때 누리는 자유함, 그것은 느껴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상상 할 수 없는 평안함이다. 그것은 진정 포기가 아니라 이전에 알지 못했던 더 귀중한 것을 얻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내어놓고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 뿐 아니라 육체적인 쉼 또한 선물한다. 장형진이 역시나 늘 그랬듯, 직접 경험해 깨달아 알게 된 사실이다. ‘배우다’라는 단어에는 다섯가지의 뜻이 있다. 첫째, 새로운 지식이나 교양을 얻다. 둘째, 새로운 기술을 익히다. 셋째, 남
의 행동, 태도를 본받아 따르다. 넷째, 경험하여 알게 되다. 다섯째, 습관이나 습성이 몸에 붙다. 장형진에게 배움이란, 적어도 흙을 만지는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네 번째 의미-직접 경험하여 알게 된 것들이다.
이번 전시는 작가 스스로에게 기분 좋은 전시였다. 6~7년을 웃어 본 적이 없다고 말 할 정도로 너무 오래 지닌 무거움이었지만 이제 비로소 자유함으로 만지는 흙의 기쁨을 맛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기분이 좋은 전시라고 말한다. 전시장을 찾는 이들도 이번 전시장에서 참 편안하다고 고백한다. 사람의 마음은 작품에도 그의 표정에도 드러나다 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그의 완전한 작품이 아니다. 계절이 변하고 해가 바뀔 때마다 채워질 진정한 자유함으로 그는 매 전시마다 더욱더 온전한 작품들을 내어 보일 것이다. 가깝게는 곧 있을 티월드 페스티발에서의 그의 작품도 기대해 본다. 장윤희 기자 bless_tr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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