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신 개인전 2002. 10. 15 ~ 10. 22 가나아트스페이스 3F
재미난 방식의 슬립캐스팅
글/조현주 (재)한국공예문화진흥원 전시유통팀장
슬립캐스팅 기법은 많은 이에게 대량생산을 위한 기법으로 인식되어 있다. 석고틀을 이용해 끊임없이 같은 모양의 형상을 뽑아내는 반복적이며 비개성적인 작업방식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혜신은 이러한 우리의 생각을 없애고자 개인전을 통해 ‘재미난 자신의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들은 지금까지의 그의 작품과도 많은 차이를 보였으며, 작품을 보는 이에게 계속 질문을 유발시켰다. 그에게 재미난 자신의 방식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자신이 만족을 느끼며 즐기며 제작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형태적인 면에서도 아름다우며 내용적인 면에서도 자신에게 충실한 방법이다.
전시장을 들어서면서 처음 보여지는 색상을 배색해놓은 상자들은 굉장히 신선해 보였다. 상자에 표현된 기법들은 마치 옵티컬 아트(Optical Art) 회화작품에서 보여지는 눈의 착시현상을 느끼게 했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확실치 않지만 이러한 눈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미술사조 즉, 옵티컬 아트 (주1)의 영향을 받은 듯 했다. 상자에 표현된 순도 높은 색상과 섬세하게 디자인된 패턴들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으며, 앞으로 작가의 작품에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느끼게 하였다. 이 상자들의 제작공정은 매우 까다롭다고 한다. 판화기법 중 석판화에서 색상에 따라 하나 하나의 판들이 있듯이 상자에 디자인된 패턴은 각 색상을 표현할 때마다 그 색상의 흙물을 붓고, 그후 그 다음 색상을 또 붓는 그러한 방법, 즉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한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작업과정 속에서 한 작품 한 작품 제작할 때마다 남들이 모르는 희열과 작품에 대한 애정을 느꼈으며 까다롭고 어려운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노력분투한 결과를 거짓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을 보면서 슬립캐스팅 기법의 매력에 더욱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상자 연작들은 새로운 슬립캐스팅의 비젼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전시된 작품 중 백색의 오브제들은 우리 생활 속의 사물들을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식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테이블 자체가 화폭의 기능을 하며 그 위에 놓인 사물들은 관객들에게 의문을 유발시킨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무수히 놓여진 의미없는 백색의 오브제들은 테이블을 가득 채운 후 벽면에까지 설치되어 있다. 작가가 생명을 주어 완성시킨 오브제가 살아서 벽에까지 올라간 듯… 문득 초현실주의의 몽환적인 상상력이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많은 것을 보이고자 했다. 그 이전의 도벽위주의 작품성향에서 과감히 변신하여 슬립캐스팅의 다양한 표현방법을 보이고자 했으며, 도자예술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실용의 미(美)도 간과(看過)하지 않았다. 전시장 한편에 연출된 식기들은 형태적으로는 현대적인 모던함과 미니멀하게 표현된 표면처리로 인해 많은 이에게 전시기간 중 사랑을 받았다. 노혜신은 전시를 통하여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야기하고자 했으며 이런 작가의 노력은 고스란히 전해져 작품으로 표현되었다. 작가는 분신과도 같은 작품들을 보이면서, 슬립캐스팅 기법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과 창조성이 있는지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고정된 인식을 조금씩 바꾸어 나갔으며 슬립캐스팅 작품에 대한 작품성을 재고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작가의 작업실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는 석고틀과 흙물은 그가 작품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앞으로 계속적인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주1) 옵티컬아트- ‘시각적인 미술’의 약칭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추상미술의 한 동향으로 팝 아트의 상업주의나 상징성에 대한 반동적 성격을 띄고 있다. 팝 아트가 상업성, 상징성을 갖는 반면 옵 아트는 순수한 시각적 작품에 몰두하였으며 다이나믹한 빛과 색의 변조가능성을 추구하였다. 가장 큰 특징은 시각적 착각의 영역을 가능한 확대코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비재현적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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