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차문화답사기행은 밀양도예가회원들의 요장에 있는 다실을 탐방하는 것으로 지난 2006년부터 시작돼 다인茶人들사이에서는 이미 입소문으로 정평이 나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차문화 시장과 요장의 현실정에 맞춰 편성된 차문화답사기행은 소비자의 높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지역문화를 만들고 있다.
밀양에서 작업하는 도예가는 총 23명. 밀양도예가회는 현재 구진인, 김창욱, 송승화, 안주현, 윤태완, 이종태, 장기덕 등 장작가마로만 작업하는 도예가 8인으로 구성된다. 밀양투어는 수시답사와 정기답사로 이뤄졌으나 점차 그룹을 이루거나 차회茶會가 원하는 날짜에 방문하는 수시답사의 횟수가 상대적으로 늘어 현재는 수시답사만 운영하고 있는 상태다. 작년 한해에만 56개 팀이 다녀갔다니 밀양도예가회가 탄력받을 만하다. 밀양은 차도구인 도자기와 수백년 된 차茶나무,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인 다실 등 새로운 도예문화의 중심지와 차문화의 중심지로써 성장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가지고 있다. “밀양차문화답사기행을 통해 밀양지역 도예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고 관광객의 다양한 욕구 충족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좋은 계기가 되고 있다”며 밀양차문화투어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로는 회원들간의 단합, 지속적인 연구, 그리고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현대적인 다실 등 세 가지로 꼽는다.
영화배우 전도연을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 한 영화 <밀양>은 전국민이 보진 못했어도 한번쯤은 들어봐 귀에는 익을 것이다. 밀양 전역에서 촬영이 이루어진 <밀양>은 조용히 내리쬐는 햇빛을 오프닝으로, 엔딩씬도 살며시 비쳐주는 햇볕으로, 이곳을 비밀스러운 의미secret shine로 보여준다. “밀양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비밀 밀密, 볕 양陽, 비밀스러운 햇볕. 좋죠?” 하지만 대사 속 의미와는 다르게 밀양은 원래 햇볕이 많다는 뜻이다.
마침 지난 1월 9일과 10일 1박2일간 밀양차문화답사 일정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동행취재를 위해 따라나섰다.
다실은 휴식의 공간이자 소통의 장소다.
도예가 송승화의 토야요.
방한켠에 놓인 독특한 형태의
다관이 눈길을 끈다.
도예가 김창욱의 밀양요.
가루차를 담아 사용하는 차호(포일요)
이번 밀양투어에는 (사)한국차인연합회 부설 다도대학원 6기 졸업생들 열명과 함께 답사길에 올랐다. 밀양시청앞 광장에서 짧은 인사를 하고, 송승화 밀양도예가회장과 기자를 포함한 12명을 태운 승합차는 국도에서 매끄럽게 빠져나와 들판 사잇길을 한동안 달렸다. 잘 가꿔진 정원과 세련된 전통 한옥인 기와집이 그 위용을 드러낸 곳은 도예가 윤태완의 만우요. 여닫이문을 열고 들어서자 서까래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높은 천장아래 아궁이에서 불을 지피고 있는 방과 부엌, 2층 살림집, 거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켠에는 차와 어울리는 다기茶器, 다구多具, 향, 향로 등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고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차와 다과가 내어진다. 아침차대용으로 속을 부드럽게 달래준다는 감잎차와 부산국제시장에서 보따리장수에게 구입했다는 감칠맛 나는 다시마. 이른 아침부터 채비하느라 바빴던 기자에게 차한잔은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볕이 잘 드는 창가자리에 앉아 작가에게 작업과정과 작품에 대해 묻는 등 담소를 나누는 시간들이 이어진다. 이날은 전국적으로 올해 겨울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였지만 이곳과는 상관없다는 듯 햇살은 아주 충만했다.
다음으로 찾은 곳은 토야요로 현재 밀양도예가회장으로 있는 도예가 송승화의 다실. 운치있는 초가집이 낮은 담장너머로 엿보이는데 검둥이강아지 네마리가 앞뜰에서 뛰어노는 모습에서 평화로움이 물씬 풍겨난다. 디딤돌을 딛고 툇마루에 올라서 폭도 좁고 키도 작은 문에 허리를 낮게 숙여 들어서자 방한칸에 아담한 다실이 온전히 드러난다. 부엌과 온돌방 한칸이었던 구조를 한 공간으로 터 다실과 진열공간으로 꾸몄다. 아치형의 천장에는 온전히 서까래가 드러나고 은은한 빛의 조명을 달아 마치 엄마뱃속같은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랄까. 나즈막한 다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으니 말차를 준비하는 작가의 손길에 시선들이 모아진다. 가루차를 넣고 탕수를 부은 다음 차선으로 휘저어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과 함께 마시고 나서는, 백탕기에 담긴 물을 부어 다완바닥에 깔려있는 말차를 말끔히 마시기까지. 이 과정은 차문화가 단순한 의미의 음료가 아닌 총체적인 문화임을 알 수 있다. 때와 장소,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많은 요소들이 달라지며 그만큼 다양한 찻자리가 있는 것이다.
다음 요장인 밀양요는 도예가 김창욱이 손수 지었다는 심플한 단일건물과 장작가마가 입구에서부터 한눈에 들어온다. 세련된 갤러리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다실은 장식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절제미가 돋보인다. 창밖으로 수양산이 시원하게 펼쳐져 그 광경을 보며 마시는 차는 정말 일품일 수밖에 없다. 뒤늦게 얻은 딸아이 이야기서부터 지난 가을에 열렸던 전시와 다관에 새겨진 독특한 부처문양에 대해서도 이야기꽃이 드리워진다. 천인상의 화관을 쓴 머리는 왼쪽을 향해 앞으로 숙이고 약간 미소를 머금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조형작업은 주관적인 생각으로 행해지는 것으로 교감이 어렵지만 다도구는 사용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되고 교감이 우선시되어야하는 부분이 있다”며 조형성과 실용성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왔던 부분을 털어놓는다. 이것은 조형성을 바탕으로 균형잡힌 다관의 형태와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어스름이 질 즈음 포일요에 도착했다. 꼬불꼬불한 흙 길을 따라 들어가면 컨테이너박스로 지은 조립식 건물이 드러난다. 하나는 작업실, 다른 하나는 다실로 낮고 가로로 긴 창문을 통해 평화로운 분위기가 전해진다.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 김해에서 밀양으로 왔다는 도예가 윤창민은 평일에는 온전히 작업에만 몰두하고 주말에서야 가족을 만나러 간단다. 쑥차와 쑥떡이 차려지는 동안 얼음골사과도 더해진다.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잘자라 단맛이 좋다며 얼음골에서 공수해온 사과가 두세 번 더 채워진다. 각 요장마다 다과와 차가 다르게 준비되었듯이 논의거리도 참 다양하다.
이날의 저녁은 작가들과 겸한 자리로 두루뭉술한 메주 덩어리들이 반쯤 가득 채워진 방에서 이뤄졌다. 곧 메주냄새에 익숙해졌지만 작가와의 대화시간은 숙소에서 마련하기로 해 발길을 옮겼다. 넓고 둥글게 앉아 그 중심엔 차와 간단한 과일을 준비해 편안한 이야기들이 이어졌고, 각 요장에서 준비한 특색있는 다잔들을 추첨해 알아맞히는 미니퀴즈, 밀양도예가회에 대한 질문, 작가를 향한 인식 등 소담들이 고즈넉한 밤과 함께 깊어갔다.
다음날, 비교적 언덕이 있는 곳에 위치한 구천요는 도예가 구진인의 요장으로 탁자나 진열대위에는 투박하고 자연스러운 질감의 다완이나 다기구 등 많은 것들이 펼쳐져있다. 일종의 약초인 까마중차와 물고구마가 다식으로 내어진다. 여러 다기들이며 찻물을 담은 잔, 잔을 받치는 차탁, 찻상, 오래된 반닫이합, 창밖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전경이 반영되어 있어 구천요의 다실은 친자연적인 성향을 담은 공간과 같다.
도예가 장기덕의 청봉요는 갤러리 및 도예체험교실, 전통다실 등 다른 요장과 달리 비교적 탄탄하게 구성돼 있다. 우직해 보이는 첫인상의 그는 노동의 반복을 통해 몸으로 깨우치게 된 감각으로 청봉요를 3대째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일까. 도예에 대한 그 열정과 뜻은 보다 완숙해보인다. 마지막으로 찾은 요장은 우곡요로 도예가 이종태의 다실. 살림집 내부에 자리한 다실은 조명의 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찻그릇들로 섬세한 분위기다. 그의 다관은 수구에 홈을 내어 물끊김이 깔끔한 게 특징. 정성과 철학이 담긴 다관은 실용신안 특허로 그 결실을 맺었다.
밀양도예가회원들의 다실공간이 하나같이 편안하면서 세련될 수 있었던 것은 정호경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의 도움이 컸다. 건축학도인 그는 차문화에 매료되어 현대다실공간에 애정을 갖고 연구하고 작업하기 시작했는데, 오늘날의 밀양차문화답사기행를 제안한 것을 보면 차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참으로 각별하다. 차는 건축작업의 원천 중 하나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인 셈. 자택에 마련된 다실에서도 벽장을 찻장으로 활용해 즐기되 결코 뽐내려지 않으려는 그의 성품을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차문화는 정신적인 측면과 생활적인 측면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특성을 지닌다. 바쁜 삶에 쉼표와도 같은 휴식을 주는 차와 다도구의 쓰임은 교양적 기능뿐만 아니라 맑고 조촐한 행복을 동시에 충족시켜 준다는 것이다. 기존의 답사기행은 관광지를 돌며 단순나열해 보여주거나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섭취해 고된 피곤만이 남는다면 밀양차문화답사기행은 섬세한 감성과 잔잔한 감동이 세심하게 곁들여져 피로함마저도 감흥이 인다. 이렇듯 ‘새로움과 차별화’ 체제를 활용해 보는 것이 소비자의 높은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차문화답사기행이 더욱 활성화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연주 기자 maigreen@naver.com
자연건축재료를 이용해 지은 다실은
정서적,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도예가 구진인의 구천요.
장작가마의 불길은
찻그릇에 온전히 담겨진다.
도예가 이종태의 우곡요.
3대째 흐름의 역사가 있는 청봉요.
다기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차를 공부하면서 마시고, 차를 아는 사람이
만드는 다관은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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