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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구 선생님을 그리면서
  • 편집부
  • 등록 2003-08-25 20:36:00
  • 수정 2016-04-14 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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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종구 선생님을 그리면서 글/조정현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장 한국 도예계의 큰 스승이셨던 황종구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원칙을 어길 때는 냉엄하셨으나, 학생들에 대한 자상하심은 한없이 부드럽고 친근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1958년 한국 도예교육의 태동기였던 시대적 상황은 선생님으로 하여금 교육자로, 도예가로서의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삶과 작가적 정신을 기리는 일은 도예가들에게 소중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선생님과 함께 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삼가 이 글을 선생님의 영전에 올립니다. 선생님의 도예에 대한 생각 도예는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이며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작품을 성형하고 무늬를 조각하고 가마에서 소성하는 모든 과정에 미적감동과 인생관을 함께 녹여 넣어 본인이 느끼고 있는 아름다움이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어야 한다고 했다. 선생님은 우리 도자의 전통미를 잊은 적이 없다. 전통 속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현대와의 접목을 시도하였다. 전통은 영구불변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그 속에 소화시켜 흡수할 때 비로서 창조의 길로 발전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생각을 작품으로 형상화하시었다. 선생님과 도예교육의 만남 선생님의 도예교육은 1947년부터 시작된다. 선친이신 도예가 황인춘옹과 함께 경기도 공예협회이사로 활동하시던 중 개성공립공예학교의 요청에 의해 요업과 교사로 도자를 지도하였다. 이화여대와는 1958년부터 인연을 맺으면서 한국도예교육의 시원을 열게 된다. 당시 김활란 총장은 대학에서 우리민족의 예술과 문화를 연구·교육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선생님에게 이화여대에서 도예교육을 담당하도록 부탁하였다. ’58년에는 장작으로 소성하는 등요의 축조를 비롯해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었고 ’59년부터 도예교육을 시작하였다. 등요 축조로 우리 전래의 소성방법을 가르쳤고, ’64년에는 도염식 석유가마를 직접 디자인하여 설치하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석유가마에서 청자를 구어 내는데 성공하였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기본적인 요소가 우선이었다. 즉 격조 높은 작품제작을 위해서는 인격이 완성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인간교육에 힘쓰셨다. 다음으로, 도예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에서 결실을 볼 수 있다하고 과학적인 지식교육도 소홀함 없으셨다. 점토의 성분, 유약의 재료 등 실재 도자원료의 현장답사를 위하여 학생들과 함께 전국을 찾아다니며 실용적인 학문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더욱 중요하게 강조한 것은 한국인의 정신교육과 문화의 계승이었으므로 전통도예기법을 철저히 교육하였고 거기에 근거를 두고 창작품을 제작하도록 유도하였다. 도예계의 큰 스승 선생님은 선친의 영향으로 도예를 시작하여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도예교육과 도예활동을 하였으나 한국 현대도예에 큰 영향을 주었고 도예발전에 미친 의의는 크다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도예중심의 교육과정 운영으로 타 대학과 대학원에도 도예 관련 학과를 개설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작품을 제작할 때는 그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수없이 반복되는 실험을 계속하고 분석하여 그 연구결과를 활용하였으며 결과물은 논문을 통해 후학들에게 전달하였다. 그 연구내용을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한국 도자의 개관 ·등요의 종류와 발달 ·식염유 : 식염의 열적 변화와 소고 ·1회 소성의 문제점과 해결책 ·고려시대의 상감청자고 ·청자제조기법 : 기술의 전통 도예가는 철저한 장인정신을 가진 숙련된 도공이어야 하며, 도예는 불의 예술이기 때문에 흙에 이치와 불에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과학자이어야 한다고 했다. 작품제작을 위해서는 본인이 직접 원료를 채집·분석하고, 흙을 조합·수비하여 사용하였으며, 성형·조각·시유·소성 어느 과정 하나라도 타인에 참여를 불허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은 일본, 미국, 유럽지역에서 매우 큰 호응을 받으며 순회전을 하였고, 유수한 박물관에 수집되어 우수한 한국의 도자문화를 소개하고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남기신 말씀 “우리나라는 옛부터 독특한 개성을 지닌 미술품이 많다. 그 중에서도 도예품에는 시대적 변천에 따라 민족의 인생관, 생활철학, 그리고 미적 감각이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전통도예는 근대에 이르러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생기를 잃고 오랜 세월동안 침체 상태에 있었다.” “상감청자 기법을 기본으로 한 기형과 문양을 현대 생활양식에 적용할 수 있도록 시도하여 우리 도자미술에 우수성을 소개하고 싶다. 도자는 청자에서 시작하여 청자에서 끝난다고 말한 애도가(愛陶家)들의 심정에 동감한다.” “아직도 청자의 미에 대한 수수께끼는 깊다. 남은 여생을 그 수수께끼의 해명과 현대도예에 맞는 신비의 청자연구에 노력할 것이다.” “항상 우리 민족의 얼을 잊지 않는 바탕 위에 도자 미술의 근본을 알고 나름대로의 우수성에 자각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故 황종구 (1919~2003) 1919년 서울 출생 일본 세또요업학교 별과(別科) 수학 개성공립학교 요업과 교사근무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역임 서울특별시 문화상 수상 광복 25주년 대통령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미술지원 심사위원 한국공예가회 고문 대한민국교육공로장 국민훈장 수상 한국현대도예가회 초대회장 국전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역임 2003년 7월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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