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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ory of Teapot⑵ 티팟의 출현과 발전
  • 편집부
  • 등록 2003-08-25 23: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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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수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동서양의 영향과 교류 14세기 경 처음으로 등장한 중국의 티팟은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 뿐 아니라 유럽 등 서양 티팟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다. 티팟은 동서양 최초의 교역 품목 중 하나인 차와 함께 17세기 경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통하여 유럽으로 건너가 오늘날 차문화의 모태가 되었다. 자기제 티팟은 당시의 마요리카나 파이앙스와는 달리 전혀 새로운 소재의 것으로서 유럽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고, 자기 개발에 대한 적극적인 탐구의 노력은 훗날 독일의 마이센에서 자기제법의 발견이라는 성과로 나타났다. 1) 또한 당시의 차무역은 동서양 문화의 이질성을 이해하고 교류수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상업적 목적에 의해서였겠지만 서양인의 기호를 반영한 이미지들이 중국자기에 그려졌고, 유럽에서 자기 제작이 시작되자 청화로 그린 버드나무 문양과 같은 동양의 이미지가 채택되기도 하였다. 특히, 무역의 초기 단계에 차와 함께 포장되어 유럽으로 건너간 중국의 여러 가지 유형의 도자기 중 이싱(宜興)도자기는 중요한 디자인 자료가 되면서 서양세계 전역에 걸쳐 영향을 끼쳤다. 이싱티팟은 크기가 작고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며 나무, 나뭇잎, 과일, 동물 등 자연의 형태를 모티브로 하였다. 중국적 취향을 흠뻑 머금은 이싱티팟은 섬세한 표면, 얇은 기벽,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색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다. 이싱티팟을 비롯한 중국제 티팟은 18세기 미국의 부유층 사이에서도 유행하였다. 당시 미국에서 티팟은 고상함과 풍미, 지위 등의 상징이었다. 메사추세츠 히스토릭 디어필드(Massachusetts Historic Deerfield)의 부큐레이터인 아만다 랜지(Amanda Lange)는 이에 대해 “지방에서 만들어졌던 도기질 도자기(redware)는 티테이블에서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차를 즐길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적당한 도자기 즉, 정제된 흙으로 제작된 백자 티팟을 소유하고자 하였다. 이들에게는 중국제나 영국제 티팟이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미국의 공방도예(Studio Pottery)와 티팟 미국 내 대부분의 공방은 도심의 주변에 위치하고 테이블웨어 등 실용적인 작품을 생산하며 특별한 형태나 유약, 장식 기술 등으로 남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개성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방식이 대량생산에 의한 일회용 식기, 포장음식들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표준화, 규격화된 상업적 식기들의 범람은 오히려 독특하고 창의성이 풍부한 것들의 시장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현대사회에서 공방의 생산품은 개성적이고 실용적이며, 직접 손으로 만든 느낌의 것에 대한 대중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생산의 모든 프로세스를 작가가 전담한다는 운동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공방도예(Studio Pottery)라고 불리는 이 운동의 기원은 1920년,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에 의해 설립된 영국의 한 공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공부했던 리치는 하마다 쇼지(濱田庄司)와 함께 영국 콘월(Cornwell)의 세인트 아이브스(St. Ives)에 작업장을 세웠다. 자국의 재료를 사용하고 견습생들을 대상으로 실용적인 도자기를 생산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자립형 작업장은 ‘리치 전통(Leach tradition)’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도 많은 도예가들의 규범이 되고 있다. 1950년대의 미국에서는 리치와 하마다의 견습생이었던 워렌(Warren)과 알릭스 맥켄지(Alix Mackenzie)가 미네소타(Minnesota)의 스틸워터(Stillwater)에 리치의 모델을 기본으로 한 공방을 세웠다. 리치전통을 따른 중서부의 많은 도예가들은 결국 ‘민게이소타(Mingeisota)’라는 유파로 떠오르게 된다. 일본의 민속예술인 민게이2)와 미네소타의 합성어인 이 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에는 멸시의 뜻이 담겨있었지만, 지금은 애정이 깃든 단어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도예가들이 리치-맥켄지 모델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영국과 일본의 영향에 대한 이해와 탐구를 계속하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켰다. 개인적 표현에 대한 미국인의 관념으로 인해 2, 3세대 도예가들은 앵글로/아시안(Anglo/Asian) 스타일과 그들 자신의 창작의 미학, 그리고 미국 도예의 전통을 혼합한 작업을 주로 하였다. 32년 간 공방도예가로 활동한 톰 터너(Tom Turner)는 “티팟은 작가에게 주어진 난제를 실질적이고 물리적이며 미학적으로 요약한다.”라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단지 물을 따르는 도구로서의 의미만이 아닌 ‘100% 기능적인’ 티팟을 만드는 것이고, 그가 생각하는 가장 훌륭한 ‘기능’은 다름 아닌 시각적 가치이다. 이제 공방도예는 더 이상 간소하거나 실용적인 작품의 생산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방에서 제작하던 대표적인 생산품인 티팟은 실용성이라는 본래의 기능에서 점차 멀어지고 컬렉팅의 주요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실정이다. 티팟 컬렉팅 많은 사람들이 예술작품의 컬렉팅을 취미로 즐긴다. 그들은 전시를 보고, 작가를 만나고,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배운다. 또한, 여러 가지 요건을 고려하여 선택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안목을 과시한다. 이러한 활동들은 매우 매력적이다. 더욱이 컬렉터의 활동에 의해 작가가 지지되고 격려된다는 것을 느낄 때, 이로 인한 만족감은 더욱 증대된다. 도자기 화병이나 접시, 볼 등 다른 일반적인 아이템이 아닌 티팟을 컬렉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티팟은 세계의 문화와 도자기의 역사를 내포하고 있는 오브제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팟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 문화와 사회, 그리고 티팟의 관계에 대해 흥미를 느낀다. 예를 들어, 일본의 다도에서 사용되는 티팟은 매우 경외시되는 문화적 오브제이고, 영국에서의 티팟은 국제적인 교류에서부터 모든 계층의 생활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미국의 많은 도예가들이 제작하는 티팟은 기존의 권위에 대한 불경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컬렉터들은 이러한 티팟의 철학에 매료되며 컬렉팅을 시작한다. 위스콘신(Wisconsin)의 래이신(Rasin)에 위치한 찰스워스텀미술관(Charles A. Wustum Museum of Fine Arts)의 브루스 페픽(Bruce W. Pepich)은 “찾아다니고 고르는 행동은 모든 컬렉터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게 한다. 또한 작가들로 하여금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고무한다.”라고 한다. 1980년대와 90년대, 몇 사람의 중요 컬렉터들은 이 장르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들 외에도 많은 컬렉터들의 지속적인 지지는 티팟에 대한 작가들의 연구노력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3) 그들은 역사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대중들에게는 티팟 디자인 양상의 변화를 보여주었고 작가들에게는 하나의 형식 안에서 독창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였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티팟 전시와 공모전은 도자기뿐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의 티팟제작을 유도하여 금속, 섬유, 기타 새로운 재료들로 만들어진 비실용적인 티팟이라는 종속장르를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1970년대부터 활동하던 개인컬렉터들은 1990년이 지나며 자신의 컬렉션을 현대공예와 디자인 오브제를 수집하는 기관에 기증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티팟은 개인적인 컬렉션의 범위를 넘어서 새로운 장식, 공예와 미술, 그리고 현대미술과 역사적인 예술을 모두 포함하는 공적인 수집품이 되었다. 현대의 티팟은 기능적인 오브제에 대한 모든 영역의 설명을 포함하고 예술과 디자인의 일반적인 움직임을 반영한다. 티팟전문갤러리인 페린 갤러리(Ferrin Gallery)의 레슬리 페린(Leslie Ferrin)은 “수집가들은 이 형식으로 현대 미국 공예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분류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티팟은 스스로 이러한 특징을 만들며 서 있다.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다. 티팟은 동양 대 서양(East versus West)이고, 기능 대 비기능(function versus nonfunction)이며, 예술 대 공예(art versus craft)이다.” (다음 호에 계속) 필자약력 1977년 서울 출생 199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입학 200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200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전공 재학중 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1) 1708년, 아우구스트 2세(August Ⅱ)의 명을 받아 자기 제법을 연구하던 화학자 에렌프리드 티렌하우스(Eherenfried W. Tirchenhaus)와 연금술사 요한 프리드리히 베트거(Johann Friedrich Bottger)는 자기제법 발견에 성공하였고, 이는 유럽에서의 경질자기 제조의 시초가 되었다. 2) 민게이(民藝)는 민속예술, 또는 민중의 예술이라는 의미의 일본어이다. 이 단어는 1925년,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에 의해 처음으로 쓰여졌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도예가인 하마다 쇼지, 가와이 간지로(河井寬次郞)와 함께 민예운동을 창시하였다. 3) 소니, 글로리아 캠(Sonny, Gloria Kamm)부부, 도나 무그(Donna Moog), 샌포드, 다이안 베서(Sanford, Diane Besser)부부, 데이빗 샤락(David Charak) 등은 미국내에서 주목받는 컬렉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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