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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상 개인전 2003. 8. 23~8. 31 한전프라자갤러리
  • 편집부
  • 등록 2003-09-22 19:32:55
  • 수정 2016-04-13 00: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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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라는 자연, 그 진화에 대한 의혹 글/김경서 미술평론가 전시공간은 정갈하고 고요하다. 아주 오래 흘러온 시간이 여기에서 잠시 멈춘 듯 하다. 잘려나간 인간의 머리 형상들이 마치 지층 깊은 곳으로부터 막 발굴된 것처럼 이리저리 늘어서 있다.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다가서면, 표정을 잃은 얼굴로부터, 잘려진 단면에 아로새겨진 암각화 이미지로부터, 이제 막 말문을 여는 듯 어떤 두런거림이 찬찬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호상 도조작업의 지속된 관심은 인간이다. 그러나 그에 의해 표현된 인간 형상들은 마치 거대한 기계로부터 분리된 부속품처럼 유기성을 상실한 채 파편화되어 있다. 분리된 머리는 이제 어깨나 다리와 관련이 없을 뿐 아니라, 육신을 통제하고 명령하는 이성의 담지자로서 기능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수직으로 잘려나간 머리의 단면엔 오랜 인류의 흔적인 암각화의 이미지가 문신처럼 각인 된다. 두상 전면의 얼굴 표정은 아예 화석처럼 굳어 버렸고, 단면에 새겨진 암각화 이미지를 통해 역설적으로 그것이 오랜 역사를 이어온 인류의 한 진화의 흔적임을 힘겹게 드러내 주고 있다. 덩그마니 속이 빈 거대한 두상, 그 빔(空)의 표면 위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이호상은 인간의 진화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다. 놀라운 현대문명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마법의 칼로 인간으로부터 자연을 베어내고, 신화를 베어내어 간단한 나선형의 도식으로 환원해 버린다. 그것을 우리는 진화라고 이름해 왔다. 진화라는 굳건한 믿음 아래 또 다른 양질의 인류를 창조하기 위해 유전자를 변형한다. 풍요를 향한 문명의 유혹은 ‘인간이라는 자연’을 파편화되어 넘쳐나는 가상의 세계로 치환하기에 이른다. 이호상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 듯 조심스럽게 두상의 겉껍질을 걷어내어 본다. 그러나 역시 안은 비어 있다. 무엇으로도 존재하지 않는 그곳에 박제된 기억이 투영된다. 그렇게 투영된 기억의 이미지들은 그의 작품 곳곳에 각인 된다. 그의 작업은 설치의 방식을 취함으로써 말없는 이야기를 연장시킨다. 정체된 공간, 그 여백 사이로 이리저리 잘려지거나 표피만 남은 두상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침묵의 서사를 이어나간다. 다시금 이야기의 꼬리는 박물관처럼 진열된 박제화 된 상자의 소품들로 이어진다. 거기엔 현대 물질문명의 잔해들이 화석처럼 시간을 거스르며 갇혀 있다. 우리 주위에 산재된 일상의 잔해들은 그 기억의 근원을 암시하는 이미지들이 새겨진 반투명한 필름에 의해 오버랩 됨으로써, 다시금 인류의 진화는 그 존재의 논리를 떠난 자리에서 탈문맥적 서사를 풀어나가게 된다. 실체를 탈각한 인간 존재는 그와 동시에 주어의 위치를 상실함으로써, 오히려 단선적인 진화론의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다채로운 서사를 창출해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호상의 전략이 숨어있다. 이호상의 도조의 초벌 소성과정은 흙 속 깊이 감추어져 있던 ‘인간이라는 자연’을 상기해 내는 과정이 아닐까? 또한 껍데기만 남은 거대한 두상의 그 텅빈 공간은 거꾸로, 형상을 가능케 하는 존재의 조건이 ‘빔’에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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