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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mas Muller 2회개인전 ‘Heaven+Earth’ 2003. 8. 8~8. 19 아티누스 갤러리
  • 편집부
  • 등록 2003-09-22 19:34:22
  • 수정 2016-04-13 09: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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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 글/김문정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토마스 뮐러는 관객들의 이해를 호소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고요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뿐 시선을 끌기 위한 몸짓은 미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관람자는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갤러리 이곳저곳을 천천히 살펴보면 보호색으로 자신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동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과 대면할 수 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흰색 동물들과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은 그 크기에 있어서 매우 상대적이다. 콩알만한 크기의 동물은 벽돌, 동전, 포크와 같은 오브제를 원래 크기보다 더욱 거대하게 느껴지도록 한다. 팝아트의 대표적 조각가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가 일상 용품의 크기 자체를 확대하여 놀라움을 주었다면, 뮐러는 재치 있는 병렬 방법을 통해 상대적으로 일상 그대로의 오브제 크기를 확대시켰다. 동물은 하나같이 물건을 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팽팽하게 연결된 끈은 둘의 관계에 긴장감을 더해준다. 하얗고 작은 동물은 ‘상상’ 혹은 ‘환상’을, 그리고 물건은 ‘현실’을 상징한다. 그 둘은 다른 공간에 존재하면서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 <오렌지>와 <토마토>도 이와 비슷한 구도로 설정되어 있다. 실제의 과일은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 과일을 그대로 본 따 캐스팅한 것은 현실에 대한 ‘기억’을 상징한다. 전시기간동안 과일은 썩어 들어간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실과 기억, 그리고 그것들에 관한 진실의 관계를 보여준다. 전시회의 제목 는 환상과 현실이라는 두 개의 다른 공간을 암시한다. 뮐러는 대상을 단순하게 ‘정의(定義)’하는 것을 거부한다. 다른 개념이나 대상 속에도 그 둘을 단호하게 나눌 수 없는, 마치 가느다란 실과 같은 것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아프리카, 유럽,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의 삶은 작가가 동시에 다른 가치관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작가의 생각은 그 범위가 확대되어 작품에 드러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과 ‘환상’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우리의 실제 삶은 환영을 제외한 현실에서만 영위되고 있는 것인가? 현실과 환영은 어떤 관계일까? 갤러리 안의 작은 동물들은 소곤대는 목소리로 수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다시 침묵한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믿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라는 말이 더 타당한 경우가 많다. 결국 작가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사물이나 개념이 정의되는지 보여주고, 더 나아가 이러한 것들이 다른 가능성과 해석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한다. 작가에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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