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도예 활성화를 위한 제언
작가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
부제 : 되돌아보다 - 도예가의 자기성찰(自己省察)
글/사진 이항렬 청강문화대학 도자디자인과 교수
필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이천은 수 백개의 크고 작은 공방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이천이란 말을 들으면 도자기를 떠올릴 만큼 이 지역은 하나의 공예장르를 성공적으로 브랜드화 시킨 경우이다. 호황을 누리는 업체가 있으며 도자기엑스포의 수 백만 관객이 입증하듯 일반인의 관심도 많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은 경제 불황과 값싼 수입도자기에 밀려 고전 중이다. 농사가 힘들면 이농자(離農者)가 늘어나듯 자신이 만든 도자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전형적인 생계형 도예가가 많은 이곳에도 공방을 처분하고 떠나는 이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러한 상황은 비단 지역사회 특정분야의 경제위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도자제품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이미 도자기는 구매의욕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만큼 매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공예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데 사용될 수 있는 기술과 지식의 산물이다”라고 정의를 내려본다면 많은 도자업체들이 묵과하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놓쳐버린 그 기술과 지식의 부재 혹은 빈곤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한 때 일본의 경제호황에 힘입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도자공방들과 양산되던 제품(혹은 작품)들이 급격한 소비감소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감과 자신의 생산품들에 대한 맹목적인 과신으로 신제품개발과 노하우의 축적을 등한시하게 한 것은 아닐까?
이웃나라 중 도자문화의 원류인 중국과 함께 고유한 미의식을 정착시킨 일본에 비해 뚜렷한 색깔이 없는 우리의 음료문화나 식기문화로 굳이 변명할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문화의 차이로 도자제품의 소비위축을 말하기에는 무책임하며, 더욱이 우선 직면한 생존의 문제가 있다.
또한 많은 수의 아카데미 출신 도예가와 그들의 작품도 미술시장에서 이렇다할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시점에서 도자기는 굳이 실용을 위한 공예와 감상을 위한 조형작품의 이분법적인 구분과 각 각의 역할, 그리고 이 두 개념의 소모적 논쟁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제 역할을 찾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지만, 결국 도자기는 일상생활 속에서 즐거움을 전달하는 매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필자도 몇 가지 원론적인 제안과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자 본연의 자세를 유지하는 일밖에는 뚜렷한 대안을 제시할 만한 능력이 없다. 다만 우리 도예가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중요한 과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방치하지는 않았나 하는 조바심에 몇 가지 문제들을 공론화 하여 다같이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도예가는 점토로 어떤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불에 구워 완성하는 일련의 과정을 주된 일로 하는 사람이다. 그 과정을 통해 나온 결과물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신의 철학과 조형의지를 타인에게 선보이고자 하는 이도 있을 것이며, 그 과정을 교육하고 보여줌으로써 미래의 도예가를 양성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들이 있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볼일이다.
도자제품을 생산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공방은 소비층의 기호가 어떻게 변하는지, 현재의 주거문화와 식생활, 인테리어의 트랜드는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하고 싼값의 수입도자기와 경쟁하기 위해 디자인과 가격경쟁력 두 마리의 토끼도 잡아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수의 공방을 지원할 인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노동집약적인 도자산업이 3D업종처럼 인식되는 상황에서 이를 전담할 전문인력은 해마다 배출되는 학위소지자의 수에 비해 초라해 보일 정도로 적다. 고급인력의 활용은 운영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증가를 의미하며 상당수 공방의 열악한 경제수준을 고려하면 상당한 모험인 것이다. 그러나 매출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한 업체의 경우, 신기술의 도입과 고급디자인을 위한 인력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대학의 졸업작품전 전시장 통해 즉석 채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해마다 많은 수의 도예전이 열린다. 특정 분야의 전시회가 많다는 것은 전공자의 수와 더불어 작업에 대한 열의로 해석하면 고무적인 일일 것이나, 바꾸어 말하면 단위 작품당 투자되는 시간이 적어 양산이 가능하단 얘기다. 이는 작품의 질적 저하와 무관하지 않다. 많은 수의 전시회는 다양한 실험, 전공 층의 확보를 위한 조건이라고 자위하기 전 냉철하게 다시 고려해야 할 만한 내용이다. 흙이란 단순한 소재로 형태, 질감, 색상을 통해 현대의 순수미술과 경쟁하기에는 아직도 비평가의 시각이나 미술시장에 대한 영향력에서 변방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실용의 한계성에서 벗어나 흙의 물성을 탐구하는 끊임없는 시도는 공예성에서 탈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상당기간 지속되어 왔고 또 어느 정도의 성과도 이루어냈지만 이 특수한 장르-도자조형-가 미술품 소비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얼마나 호소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전공자가 졸업 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자의 목적이다. 물론 교육자는 전공자 각 각의 개성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하고 이에 맞는 방법론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자칫 획일화된 교육은 전공자의 무분별한 생산을 야기하며 집단적 평가절하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낳게 된다. 따라서 도예교육은 개성과 능력을 갖춘 전공자의 생산이라는 목적에 덧붙여 도예를 이해하고 비평하며 사랑하는 집단, 즉 애호가 층의 확산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올바른 안목을 소유한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은 조악한 도자제품들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므로 우리 도예문화의 토대를 기름지게 만들 것이다. 또한 세계가 인터넷 기반으로 동시화(同時化)되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교육서비스가 요구된다. 필자가 방문했던 일본의 한 교수실(도예과)은 창고인지 연구실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온갖 자료들과 실험편, 프로토타잎 제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학생들의 다양한 지적 욕구를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들의 마련은 한 기업이 소비자의 요구에 즉시 대응 가능한 Quick-Response system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 학생은 소비자로서 양질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고민하고 있는가?
하나의 도자작품이 소비자의 손에 혹은 전시장의 전시대에 올라가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고민하고 연구하였는가? 얼핏 당연해 보이는, 그리고 우매한 질문이다.
제품을 팔기 위해서라면 그것의 디자인, 용도와 형태와의 조화, 포장, 가격, 시장동향 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대규모 도자기축제의 판매부스들을 둘러보면 그게 그거 같다는 말이 공공연히 소비자들 입에서 나온다. 제품의 선택을 소비자에게만 전담하는 것은 소극적이다. 소비자는 좋은 제품이라 생각하면 다리품을 팔아서라도 산다. 우리의 정서, 문화와 유행을 제품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것이며 작가의 개성과 철학은 이미 갖추어져 있어야 할 부분이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대중성, 이들의 융합을 위한 방법은 있을 것이므로 고민은 작가의 몫이다.
요사이 도예 전시장을 가보면 실용적인 작품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한 때 유행처럼 번졌던 도자조형작품들이 더 이상 이슈를 제공하지 못함으로서 스스로 몸집을 줄인 것처럼 느껴진다. 작가들의 실용성으로의 우회는 결국 경제와 직결된 사회현상의 반영을 말한다. 어떤 목적(주로 금전적인 것이 되겠지만)을 위해 작가가 추구했던 조형의지를 희생했다는 뜻도 되는데, 물론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결과이겠지만 오히려 이로서 실용도자기들의 품질이 높아진 느낌이다.
앞으로 도자조형이 작업의 목적이 될 이들은 우리 현대도예의 역사와 문화적 바탕의 일천함을 딛고 진지한 태도로 참여해야 할 것이다. 도자조형은 실용도자와는 다른 접근 방식으로 사회 문화에 기여할 수 있으므로 새로운 조형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 우리 문화예술의 바탕을 흐르는 코드의 정확한 인식, 실험과 검증을 통한 자기발전이 있어야겠다.
우리는 이제 각자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목적을 위한 순수한 자기 투자와 진지한 고민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쓰일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한 국가의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정부는 “문화의 세기에 찬란한 우리의 도자문화를 오늘에 이어..”식의 몽상적인 정책개념보다는 우리 도자문화를 힘겹게 이어가는 소규모 공방─농업으로 보면 빈농에 해당한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도자산업은 한 국가의 문화수준을 나타내는 시금석이며 대통령이 나서서 세계에 우리 관광산업을 홍보하는 시대에 이렇다 할 국가차원의 도자문화 진흥정책이 별로 없는 것과 아직도 옛날 고려청자와 상투 튼 도공의 개념으로 우리 도자문화의 이미지를 이어 갈 계획이라면 이는 문화정책의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에게는 새로운 것에 대한 지속적 탐구, 변화된 문화예술 코드의 정확한 인식, 실험과 검증을 통한 자기 발전이 필요하다. (사진은 제14회 한국현대도예가회전)
필자 약력
도예가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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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