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感 展에서의 공간유희
글/정영숙 문화전시기획자
IT업계에서는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컴퓨터를 접속 할 수 있고 자유롭게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인간을 위한 유비쿼터스(Ubiquitous) 혁명이 시작되었다. 각기 다른 활동을 수행하는 사물과 사람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진정한 유비쿼터스 사회가 실현된다고 한다. 유비쿼터스가 뛰어난 과학의 힘을 바탕으로 실현될 수 있는 이성적인 공간이라면, 권영식 작가의 이번 작품은 오브제(사물과 동식물)를 이용한 자연스런 배치로 사람들로 하여금 감흥을 느끼도록 감성적인 공간을 연출하였다.
권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강조하고 있는 공·감(空·感)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그의 작가노트를 펼쳐보면,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자신의 공간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직 인간만이 자신만의 것으로 공간을 소유하려고 한다’-
작가는 갈수록 정보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가 오직 인간을 위해 변화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현실공간보다 사이버(Cyber)공간에서 기계적으로 길들여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이 숨쉬고 사물이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만물에는 생명이 있고 신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Animism)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에 상징적으로 사용하는 불가사리, 조개, 새, 돌 등 식물과 사물, 그리고 신체의 특정부위를 사용한 오브제이다. 이러한 오브제들은 평면작품인 ‘Mutual Response 0310’에서 나무, 조개껍질, 신체의 코, 입술을 한 화면에 배치해 어울림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작품들도 이와 유사하게 표현되고 있다. 작가가 강조한 공간, 즉 작품에서의 공간을 보면, ‘To see each other’작품처럼 새와 신체 일부 부위의 상징적인 오브제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여 대화 하듯이 놓여 있다. 다음으로 전시장에서의 공간은 어떠한가? 작품과 작품간의 간격, 바닥과 벽면, 그리고 천정을 배려한 유기적인 작품배치를 통해 사람들은 그 곳에서 흘러가듯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고(古)건축에서 보듯이 건축물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문을 열고 닫음에 따라 공간이 끊임없이 축소되었다가 확대되고 외부와 연결되는 것과 유사하다.
권작가는 1995년 ‘천년의 꿈’이라는 조형작품을 발표한 후 긴 침묵을 깨고 세상을 향해 말을 걸었다. 2000년을 전후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고민의 편린들은 조형작품에 국한되지 않았고 조형성과 실용성이 어우러진 쓰임새 있는 ‘그 무엇’의 필요성에 도달했다.
쓰임새 있는 작품이란 무엇인가?
도예를 조형도자와 생활도자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구분할 수 없다. 예컨데 우리가 쓰고 있는 물컵이 물을 마시기에도 좋고, 미적으로 감응을 불러일으키는 것, 작품대에 올려진 조형물이 보는 아름다움도 주고, 그것이 어떤 도구로 사용 가능한 것, 이러한 것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번 작품은 출발하였다.
권작가는 대학에서 10여년을 산업도자를 지도하고 있는 교수로서 산업도자의 재료적인 특징을 살려 회화에서 캔버스처럼, 도판을 제작하여 노련한 테크닉을 보여주었고,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도자기로 작품을 한다는 것은 급속도록 변화하는 시대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뭔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재료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해주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음으로… 긴 시간을 천천히 걸어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흙과 함께 걸어온 권작가의 작품은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시대의 진정한 오브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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