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닮은 소통의 미학
글/윤두현 전시기획자
여름의 모퉁이를 돌아 어느덧 가을이다. 한낮의 청명한 햇살은 지난했던 그 여름 생채기의 흔적들을 하나 둘 씻어낸다.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 서정적이다. 가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나는 거리를 걷다보면 자연스레 가슴 한 켠이 잘 익은 감빛으로 물드는 것 역시 가을이 가진 특유의 서정적 소구력 때문일 것이다. 작가 이 인의 이번 전시는 이런 점에서 가을을 닮아있다.
작가가 이번 전시의 작품들을 통해 추구고자 하는 것은 소통이라고 한다. 그리고 작가가 그녀의 언어를 대신하는 흙을 통해 꿈꾸고자 하는 소통이란 곧 만물의 근원으로서 자연이 가진 모성적 포용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결코 막연한 자연주의를 부르짖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적 삶에 대한 시각을 놓지 않고자 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일관되게 온기 어린 소통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은 작가가 조형의 본질적 요소인 점, 선, 면의 조화를 통해 안과 밖, 너와 나, 자연과 인간 등 소통을 방해하는 모든 경계의 허물어짐을 꾀하면서 시작된다. 아울러 이 허물어짐은 단순한 경계의 파괴가 아니라, 경계가 존재하기 이전의 원시적 합일로의 회귀를 위한 허물어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품의 주요 요소로서 일체를 이루고 있는 갖가지의 곤충류들은 관념의 울타리로부터 가만히 걸어나와 작품 외부를 향해 끊임없이 감성의 촉수를 내밀고 있으며, 그것은 감상자로 하여금 서정적 긴장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3차원적 소통공간의 형성에 중요한 인자로써 작용한다. 동시에 거미, 장구벌레, 개미 등의 곤충류는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형상들의 은유적 상징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소통을 추구하는 그녀의 작품들에서 발견된 가을의 서정성은 다소 옅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낙옆더미 아래의 온기처럼 따뜻한 생명력으로 보는 이에게 적잖은 울림을 준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감성을 자극하는 무수한 자극의 범람을 매순간 경험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류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감성을 박탈당한 채 오로지 자극만을 위한 자극의 노예가 되어 공허함 속을 끝없이 맴돈다. 감성을 부르짖으나 정작 감성을 상실하고 있는 시대, 서정을 상실한 인간의 마음이란 얼마나 각박할 것인가? 이미 우리 스스로가 절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서정의 상실은 곧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결국 작가 이 인이 이번 전시를 통해 꿈꾸는 소통이란 기실 우리가 상실해가고 있는 서정성의 회복은 아닐런지, 인사동에서의 소박했던 가을여행을 마치며 미루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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