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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예술을 말한다 - Richard Milette
  • 편집부
  • 등록 2003-03-20 15:32:00
  • 수정 2016-04-17 12: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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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는 예술을 말한다 - Richard Milette 글/사진 김문정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리차드 밀레(Richard Milette)의 작품은 티 폿(tea pot), 그리스 도자기와 같이 익숙한 형태의 용기들이 주를 이룬다. 제작된 도자기들은 같은 형태가 반복되어 마치 공장에서 제작되는 대량 생산품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매우 독특한 내용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리스풍의 고전적인 장식대신 사용된 다양한 형태의 도형 안에 써넣은 단어들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표기된 단어들은 끊어진 토막으로 사용되고, 문장도 중간에 그림이 삽입되거나 빈칸 처리가 되어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 밀레는 왜 그리스 도자기를 사용한 것인가? 그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그 관계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그의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된다. 우선 그리스 도자기는 도자기의 유구한 역사를 상징한다. 또한 작가는 도자기의 전통적인 가치와 역사를 좋아하고 그것을 환유(換喩)적으로 작품에 표현하였다. 그러나 밀레는 전통적인 도자기에 전혀 다른 해석을 가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는 현대 미술 안에서의 도자기 역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다. 도자기가 단순히 ‘공예’라는 범주 안에 존재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밀레에게 도자 작업은 전통적인 도자기 형태를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도자기를 역사와 전혀 연관이 없는 새로운 개념들을 위한 출발점으로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그 도자기는 현대 사회에서 파생된 수많은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빈 캔버스였던 것이다. 정성스럽게 제작한 그리스 도자기를 현대적인 이야기와 결합시켜 작가는 도자기가 어떻게 과거의 기원으로부터 벗어나 현대 미술의 자유로운 표현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또한 도자기들을 반복하여 제시한 것은 단순하게 그것들이 진품으로서 지니는 역사적인 효력을 무산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루어지는 많은 도자 작업이 그저 과거의 형태를 무의미하게 복제하는데 불과하다는 사실을 따끔하게 꼬집으려 한 것이었다. 작가는 언어를 사용하여 그의 주장을 펼쳐 보인다. 도자기 정면에 위치한 부정형의 도형 안에 써넣은 단어들의 조합으로 그는 다양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예를 들면 ‘homo(동성애자)’와 같은 의미의 프랑스어 ‘pede’, 그리고 ‘scum(정액)’과 ‘rape(강간)’과 같은 성적인 내용의 단어들을 나열하였다. 작가는 저속하고 터부시되는 단어들을 도자기 위에 써넣어 그것을 조롱하고 고전적 가치를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도자 예술이 안일한 미학적 가치와 고상한 취미의 범주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동시대의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다루어 사회 참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예술, 그리고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밀레는 예술가로서 우리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편견과 성에 대한 이중적이고 불합리한 태도를 비판하려 하였다. 위와 같이 직접적으로 단어를 제시하는 방법 외에도 작가는 모호한 의미의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밀레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먼저 작가는 책에서 무작위로 발췌한 글들을 새겨 넣고 중간의 단어들을 끊어버리거나 지워 버렸다. 또한 상형문자를 언어와 함께 사용하여 수수께끼를 내놓기도 한다. 그것은 주로 다섯 개의 그리스 도자기에 나뉘어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은 작품으로 인해 관객들은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한 직관을 적극적으로 작품 감상에 개입시킨다. 사실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텍스트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가능성을 얻게 된다. 그것은 획일적이지 않은 개방된 의사소통의 자유이다. 작가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대신 그 어떤 것이라도 정답이 될 수 있다는 다양한 의미를 제공한다. 또한 우리는 그의 수수께끼를 통해 언어와 그림이 함께 소통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상형문자의 힘을 빌어 언어는 상상력을 수반하는 변화 가능한 의미를 획득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작가는 ‘언어’라는 기호의 개념적, 형식적 해체를 통해 라깡의 정신분석적 이론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 일반적인 포스트모던적 담론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포스트모던 예술의 시대에 그의 언어에 대한 접근과 해석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이미지와 결합하여 혼란스러운 의미를 생산해 낸다는 이유로 용납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이미지와 언어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지금의 매스 미디어의 시대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클 것이다. 밀레는 흙을 매체로 하는 작가라기보다는 그릇을 만드는 작가이다. 그러한 그가 ‘공예로서의 그릇’이 아닌 ‘예술로서의 그릇’을 관객들에게 들이민 것은 매우 실험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공예도 예술이다, 아니다 라는 분분한 의견이 이미 오고가고 있는 실정이지만, 그러한 토론은 공예의 범주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변방의 작은 목소리일 뿐이다. 거대한 미술 시장 안에서 공예는 그 위치가 너무도 미약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밀레는 도자기를 캔버스와 같이 다루어 그 위에 포스트모던 예술에서 치열하게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회화 작품의 형식적 구조를 그대로 안일하게 도자기로 옮겨왔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겠으나, 그것은 밀레 작품의 형식적 구조를 제대로 이해 못한 경우일 것이다. 그는 그릇으로 많은 예술의 실험적 작업을 대담하게 진행했다. 그는 인스톨레이션, 기호학, 페미니즘, 호모섹슈얼, 키치... 이 시대의 예술이라면 꼭 다루어야 할 형식과 주제들을 빠짐없이 마치 계획적으로 의도한 것처럼 도자기에 모두 담아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너무 자연스러웠다. 심각한 주제들과 언어의 해체 작업은 도자기의 장식으로 대체되어 도자기 형태와 필연적으로 맞물려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었으며, 도자기가 캔버스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캔버스와 도자기의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음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다시 말해, 공예는 예술일 수밖에 없다는 귀납적 결론을 유도한다. 도조작품이 이미 예술의 대열에 들어선 것처럼, 도자기도 더이상 공예 안에서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예술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밀레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작품으로 이런 거대한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이라는 비판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필자는 밀레의 작품을 하나의 좋은 본보기로 보고 있다. “샘플만 써봐도 알아요”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처럼 우리는 밀레의 작품만 봐도 충분히 도자기가 현대 예술 안에서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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