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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제도의 개선방안 ─ 없앨 수 없다면 …,
  • 편집부
  • 등록 2003-11-24 23: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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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영민 한전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최선은 공모전이 없어도 되는 것 공모전에 관한 이야기들의 중심이 심사와 관련된 진행상의 문제들로 초점이 맞추어지지만, 기실 공모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모순이나 난점은 1)가치판단의 척도가 취미판단인 예술작품에 서열을 매길 수 없다는 것과 2)‘제도’라는 측면에서, 공모전이 사회적인 권위를 가지게 될 때 생기는 미의식의 획일화 내지는 성향의 단일화라는 측면일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 국전풍의 그림이라는 말로 ‘여인좌상’이 한 시대를 풍미하기도 했으며, 하물며 올림픽 같은 데서도 국가간의 메달 통계는 내지 않는데, 예술작품을 서열화하는 것은 좀 ‘거시기’한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필자는 공모전폐지론자이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제도일 뿐만 아니라, 진행이나 심사관행들이 사적인 영역의 이득을 공적인 영역에서 취하는 관행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면, 게다가 입상과 담합이 그렇게 다른 말로 비추어지지 않는다면, 없애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모전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입상금도 퍽 많아진 듯 하다. 아마도 공모전을 운영하고 입상자를 내는 것이 어떤 식이든, 그리고 누구에겐가는 도움이 되기 때문인 듯한데, 그 도움의 방식이 불분명하며, 식구를 거느리는 일종의 사적 계열화와 관련되는 듯하여 문제이다. 과장해서 말하면, 다수를 볼모로 일종의 속임수가 관행처럼 굳어진 가운데, 권위라는 이름으로 ‘사취(詐取)’하는 시스템 정도가 대부분의 공모전에서 일정부분 자리를 잡은 듯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모전은 계속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든’ 진행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속임수에 가까운 관행들을 개선해 나가는(그러나 개선할 힘을 가진 사람들은 현행 제도가 이득이 될 개연성이 더 큼으로 좀체 개선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차선일 것이다. 서열화를 모호하게 하는 것, 그리고 서열보다 전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공모전이 나름의 권위를 가지면서, -속임수 관행을 암묵적으로 용인하면서-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 작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 이외에 별다른 사회와의 통로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공모전은 출품자들에게는 최초의 gatekeeping system이라 할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최초의 문지기(gate keeper)들이 밀실에서 담합하는 꼴이다. 다시 말하면, 그 서열화가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할 바에는 서열화 보다는 전시의 통로로써 가치를 두는 쪽으로 비중을 옮겨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서열화에 의한 시상보다는 통로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가 될 수 있도록 공모전을 운영하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우선 1,2,3등을 뽑지 않아도 되므로 공적인 영역에서의 사취기능성을 줄일 수 있을뿐더러, 뽑힌자의 뽑은자에 대한 예속을 방지하여 동종교배의 계열화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출품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시상금을 받지 않음으로써 시상금의 분배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시상 후의 스트레스도 많이 준다. 보다 중요한 것은, 공모전에 입상하는 것 자체가 서열화에서 선택된 것이 아니라,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정도로 인식하게 되어 사회와의 ‘통로’로 충실을 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공모전이 진행되는 기존의 방식인 출품작의 전시가 아닌 입상자의 주요 작품들을 전시할 수 있는 모양으로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입상자들의 서열을 매기지 않고, 다만 입상해서 전시를 한다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국민학교(필자가 다녔던 시절에는 국민학교였다)시절 교내 백일장이나 반공포스터 경진대회가 사회적으로 확대된 꼴은 아니었으면 한다. 꼭 심사를 해야 한다면, 인적 구성원을 달리하는 것 대부분의 공모전의 심사 시스템은 운영위원회에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사위원회는 출품작을 두 어 차례 걸러서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1차심사, 2차심사 등으로 나뉘어 있는 거름장치는 각각 심사에 심사자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공정을 기하려는 듯하다. 이러한 시스템은 일부 보완적인 방법으로, 심사에 관람객을 참여케 한다든가 책임제 1인 심사방식을 채택하는 등의 개선안들이 - 일부분 - 시행되고 실효를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심사에 참여하는, 이른바 심사에 적합한 ‘권위’를 지닌 사람의 수가 제한적이라면 그러한 장치들이 크게 공정해질 개연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심사에 적합한 사회적 ‘권위’의 범주를 어디까지 인정하는가하는 것이다. ‘권위’의 폭을 조금은 유연하게 늘려주어, 전문가 집단이라고 상호 인정하는 인적구성원이외의 구성원을 심사에 참여시킨다거나 혹은 공모전 출품자들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전문가집단을 모집단으로 심사자를 선정하는 것 정도면 공정성에 대한 시비는 거의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공모전과 관련한 잡음들은 그 시스템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스템의 운영자들과 관계되는 것이다. 심사에 참여하는 것이 개인적인 명예 정도에 그치는 사람들의 공정한 심사는 도예계를 위해서도 출품자를 위해서도 득이 되는 일이다. 다만 ‘권위’를 권력화하려는 사람만 손해일 뿐. 이를 위해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는 시점을 공모마감 후로 잡는 정도의 개선은 필요할 것이다. 운영위원회는 심사위원회의 구성에 있어서 출품자들의 성향이나 사적인 관계 혹은 학연 등 을 고려하여 일정정도 연관된 사람을 배제하는 방법 정도가 있지 않나 싶다. 출품자들이 조금 더 각성하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물론, 그럴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공정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는 정도의 양식이 공모전 출품자들에게 요구된다. 어차피 공모전이라는 것이 출품작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므로 공모전에 대한 옥석을 가리는 태도가 출품자에게 요구된다. 그리고 온당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심사결과에 대한 공론화에 적극 참여한다거나 심사위원회의 구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일 등, 공모전이 끝난 후의 사후 관리 혹은 책임을 묻는 태도들이 출품자에게 요구된다. 귀찮기도 하고 혹은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겠으나, 공모전이 제대로 운영되는 혜택은 어떤 식으로든 출품자들에게 돌아온다. 출품자는 출품과 시상여부 이외에 공모전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관철시키는 일 중의 일부를 거들어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스스로 여기는 것, 다시 말하면, 출품자이자 감시자가 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공모전들은 밀실에서 나오거나 온당하지 않는 것은 없어진다. 왜냐하면, 출품자를 볼모로 무엇인가 얻고 싶은데, 그것의 운영이 투명해지면 얻을 것이 없어질 수밖에 없다. 사적이득이 없는 공모전을 계속 지속할 모리배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공모전이 없어지는 것이 개선이다. 가장 이상적인 공모전 필자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모전은 가령, 공모전을 꼭 해야 한다면 좀 복잡하기는 하겠으나, 공모전 출품자를 출품자가 아닌 참여자의 형태가 되도록 운영하고 싶다. 공모전의 공고를 심사를 받고 싶은 한 두 작품에 한정하지 않고 참여자가 지속적으로 제작했던 작품들로 확대하고 심사자들이 그 작업을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서 심사자들의 상호 의견교환을 통해서 전시에 참여할 출품자를 선정한다. 이러한 선정과정은 심사자들의 정례적인 모임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 6개월쯤 - 이루어지며, 그 과정은 전문잡지나 신문등을 통해서 매달 공개한다. 다시 말하면 6개월간의 공개심사 후에 전시할 작가를 선정하는 것이다.(문학상 심사에서 보여지는 독회(讀會)같은 것) 그렇게 확정된 입상자들은 선정자들과 연석하여 일종의 프레젠테이션이 이루어지고 상호 작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심사자는 심사의견을 작가에게 전달한다. 그 후, 심사자와 입상자는 전시개념을 수립하고 공동으로 전시를 개최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되면 공모전 과정 자체가 절차로써 중요성을 가지게 되고 입상자들은 참여를 통해서 공모전의 과정자체가 작업이 되고 공부가 된다. 그리고 입상자들에게 지급되는 것은 상금이 아니라 전시를 위한 합리적인 작품제작비여야만 한다. 작품제작비는 작품제작에 사용해야 하므로 분배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공모전을 진행하는 경비의 문제가 발생한다. 출품료를 받을 것이 아니므로, 1년간의 공모전 진행기간에 들어가는 재원은 외부에서 조달해야한다. 대체로 기업의 후원정도가 기대되는 재원인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능할까 모르겠으나, 일정부분 권위 있는 공모전들이 신문사나 기업의 후원을 얻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요원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근래 들어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적인 관심의 고양으로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후원도 기대할 수 있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문화행사들이 그 투자에 비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예산규모를 줄이는 것의 대부분이 기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행사의 진행이 원활치 않게 되는데 기인하는바 크다. 졸속으로 기획하고, 그 기획을 통해서 사적인 이익을 채우고… 그것을 반복하면서 행사는 점점 줄어든다. 다시 말하면, 제대로 기획된 일을 제대로 실행하면, 지방자치단체의 독특한 성격의 행사로 공모전을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후원은 - 최소한 - 후원자들에게 돈을 낸 것만큼의 무형의 이익을 주어야 한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재학 현, 한전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공예문화진흥원 운영위원 서울산업대학교 IT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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