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글/김영태 계명대학교 미술대학 공예디자인 전공 교수
버나드 리치의 제자인 해리 데이비스는 세라믹리뷰(Ceramic Review)지에 A Some Thought On Attitude B라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그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의 예술작품은 주관적으로 축적된 경험의 산물이라고 정의하면서 환경에 의해 자극과 영향을 받아 표출된 것이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예술가의 잠재의식 속에는 많은 경험들이 기록된 거대한 저장고가 있다고 하였다.
도예가들은 뛰어난 손재주를 가지고 도자기를 만들기 때문에 자칫하면 Hand Building 기술이나 물레로 기물을 만드는 기술의 정도로 작품의 전체를 평가하게 되는 우(愚)를 범할 수도 있다. 도자기를 성형하는 여러 가지 기법은 도예가나 자신이 의도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습득해야 할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진정한 도예가는 숙달된 기술만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해리 데이비스의 주장처럼 도예가의 잠재의식 속에는 도예가가 알게 모르게 경험한 많은 조형요소들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도예가들은 창작에 대한 간절한 열정과 충동을 통하여 잠재의식 속에 깊이 묻혀 있는 실험적 조형요소들을 작품으로 표출시키는 것이다.
오랜 창작생활을 통하여 여러 가지 조형경험을 쌓은 김판준의 역작들을 가지고 의미 있는 개인전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작업노트에서 피력하였듯이 그의 작품들은 그의 고향 경주 남산에 대한 애정 어린 향수와 남천의 맑은 물과 그 속에서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에 대한 동심어린 낭만적 추억, 그리고 그의 어질고 원만한 성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원형에 대한 몰입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한국의 멋들어진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뭇 생명과의 교감을 비교적 담담하고 소박하면서도 천진난만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표현함으로써 그의 작품에는 오만스러울 정도의 세련미나 엄격함이 보이지 않아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한다.
도자기는 생활 속의 소예술이라 불리어지듯 그의 도예작업이 우리들 생활환경을 아름답게 변모시키는 생활 속의 예술품으로 자리하기를 기원하면서 혹한을 이기고 작업에 전염해 온 그의 노고에 격려와 축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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