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잃은 공간에 던지는 새로운 음표
글/사진 윤두현 전시기획자
건축은 그 시대의 철학을 반영한다. 르네상스의 건축은 ‘가장 합리적인 건축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그 시대의 이념을 반영하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 건축은 자연의 이치에 따른 풍수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아울러 철학은 공간에 개성적인 리듬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이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어떤 철학을 반영하고 있는가? 결론부터 밝히자면 우리의 공간은 철학을 잃었다. 결국 급격한 근대화를 거쳐 현대로 넘어오는 동안 우리가 얻은 것은 다양성이 배제된 획일적 도시이며, 잃은 것은 삶의 공간이 갖는 건전한 리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우리의 환경미술은 조금 추상적인 표현이지만 공간의 잃어버린 리듬, 더 나아가 철학을 다시 찾고자 하는 다소 제한적인 의도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접근 역시 단기적인 문제해결에 집중되어 있어 근본적인 실마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차원에서 작가 정봉준은 환경미술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과 생각할 점을 제시한다.
한전플라자 갤러리 초대전으로 열린 ‘the Bit’전의 작품들은 환경도자다. 작가 정봉준은 첫 번째 개인전에 이어 이번 전시에서도 실용성이라는 문제를 빛의 작용과 함께 지속적으로 파고든다. 우선 그의 환경도자 작품들에 있어 작가가 의도하는 실용성이란 곧 장식적 요소로만 한정되어 있는 환경미술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도자는 환경미술의 다른 분야에 비해 건물 자체에 대한 유기적 접근성이 매우 높은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도자의 이같은 장점은 작가의 의도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된다.
‘bit union’시리즈는 건물의 공간 구획을 위한 칸막이 또는 아예 건물의 일부가 되는 기둥 등 다양한 기능적 실용성과 빛을 반영한 기하학적 미의식이 잘 표현되어 있는 작품들이다. 더욱이 작가는 작품의 현실적인 구체화를 염두한 철저한 사전 검증 과정을 거친다. 작품의 디자인과 3D 입체구현에 의한 다양한 빛의 각도와 이의 영향관계를 확인하는 것 등 대부분의 작업이 컴퓨터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작품을 실제로 제작하는 단계에 있어서는 수작업을 고집하는데, 그것은 손에 의해 빚어진 도자의 독특한 질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기하학적 반복이 두드러진 그의 작품들은 빛과 조화될 때 개개의 형태가 다소간 다름으로해서 발생하는 긴장감을 획득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실용성에 대한 의지와 일련의 작업과정에 따른 결과물들은 많은 부분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리듬을 잃은 공간에 던지는 새로운 음표다.
다만 그럼에도 아쉬움은 있다. 다름아니라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기능성에 치우친 현재적 대안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라는 점이다. 이는 곧 작가의 작품들이 건축의 일부분으로서 기능하는 것 외에 환경미술, 환경도자의 공간에 대한 보다 미래적인 가능성을 실험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의 다름이 아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현재의 왜곡된 공간에 대한 미래적인 방향성을 제시해 줄 무언가가 우리에게는 더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하나의 창조적 행위가 빛을 발하는 때도 역시 다양한 미래적 대안을 실험하고 제시했을 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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