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5 - 2004.5.11 통인화랑
서정적 생명력의 발견
글 윤두현 _ 자유기고가
나날은 화창하였다. 때론 한 여름을 연상케 하는 무더운 날씨로 시간을 앞질러 가기도 하며 5월은 그렇듯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었다.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사진기는 옆구리에 매달고 여기저기 전시장을 헤매며 발품하는 일이 이 때만큼 즐거운 계절은 아마도 없을 듯하다. 더욱이 그렇게 돌아다니다 마음에 드는 전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바로 서정적 생명력을 얼마간 발견할 수 있었던, 작가 나소진전이 내게 그 같은 기분을 만끽하게 하는 전시였다.
작가 나소진의 첫 개인전 ‘봄의 공간’전이 인사동 통화랑에서 열렸다. 공방을 운영하면서 근 일년간 틈틈이 이번 첫 개인전을 준비해왔다는 작가는 화기(花器)를 테마로 ‘달밤 한 가운데’, ‘바람에 물들지 않는…’ 등 서정적인 제목이 특히 인상적인 30여점 정도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아울러 논의의 여지는 있는 것이지만, 미적 본질이 기본적으로 보는 즐거움에서 시작된다고 믿는 작가는 작품의 전체적인 영감을 봄의 자연광과 어우러진 전통적 문창살과 꽃창살의 아름다움에서 얻었다고 한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은 우리의 일상에서 거의 사라진 이와 같은 전통적 요소, 특히 선조들의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던 미적 요소를 재발견하고 이를 도예 작품을 통해 현대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화기를 이번 전시의 테마로 한 것 역시 그러한 아름다움에 내재하는 시공을 충실히 반영할 수 있다는 데서 연유한다. 기물에 나타나 있는 문양도 전반적으로 이 문창살과 꽃창살에서 비롯되고 있다.
또한 작가는 기물 표면의 깔끔한 질감을 위해 석고캐스팅기법을 채용했다. 그래서인지 작품들 하나하나에는 그만큼 봄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이 깔끔하고도 단아하게 표출되어 있었고, 그래 전시장을 둘러보던 관람객들의 입가에도 어느새 꽃 내음 가득한 봄의 공간 속을 거니는 듯 엷은 미소가 어리곤 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시의 성격에 맞춰 전시공간 자체에 대해 다양한 연출을 시도해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화기란 일상적 공간 속에서 조화를 이루었을 때 그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인 만큼 다소 죽어있는 듯한 전시공간은 상당히 안타까운 점이었다. 나아가 작품 자체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문창살과 꽃창살에서 얻은 영감이 소극적으로 드러난 감이 없지 않아, 이것은 물론 작가 고유의 선택이겠지만 그 같은 영감을 작품 속에 좀 더 내밀하고도 과감하게 표현했으면 하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적인 생명력을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의 발전적인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전시는 작가에 있어서 충분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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