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소피아 모그 (AnnaSofia Maag)의 빙하시대
글 김정아 _ 스웨덴리포터 사진 안나소피아 모그 제공
스웨덴 현대도자공예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과 복합예술의 시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공예인구와 공예시장, 젊은 공예가들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업형태들은 지난 몇 년간 스웨덴뿐만 아니라 덴마크와 노르웨이 등에서도 많은 논란을 빚어왔다. 사실 알고 보면 이 낡은 논란은 현대 공예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도예계로서는 주로 젊은 도예가 들의 작업을 어떻게 성격 지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미술사가들이나, 예술비평가들의 논의로 이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는 작업들은 기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조형도자와, 기능과 조형성을 동시에 내포한 작업들로 집중되어진다. 논란의 이유는 간단하다. 미술을 크게 순수미술과 응용미술로 분리한다면, 공예는 늘 응용미술의 범주에 속해왔다. 이 경우 도자 섬유 금속 유리 목공예 등 전통적인 공예분야는 스웨덴인들로부터 재료로부터 마지막 완성되는 제품까지 전 과정을 거쳐 공예가의 숙련된 기술과 정신을 담은 ‘미와 기능성을 가진 일상생활용품(20세기 초 굿디자인을 제창한 스웨덴 디자인 운동의 이념)’이라는 기대로 제한되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늘날의 많은 도예가들이 이러한 제한에 속박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특히 유의해 볼 것은 지난 10여년간의 스웨덴 대학도자교육이 전통적인 도자공예나 도자 디자인보다는 조형성 예술성 철학적 표현성이 강조된 교육이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오늘날의 추세를 젊은 도예가들의 젊은 열기라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인류최초의 도자는 그릇과 같은 일상생활용기가 아니라, 종교적 또는 주술적 기능을 가진 풍만한 여성의 모습을 가진 조각이었다는 것이 이미 역사책에도 서술된 바이고 볼 때, 모든 도예작품에 기능성을 기대하는 것은 참으로 진부한 사고인 것이다. 결국, 지금의 스웨덴 현대도예는 여러모로 복합예술의 시대로 불리며, 문화의 한 양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복합예술 도예가 군단의 유사성은 재료와 기술, 표현에 국경과 이념을 초월한 다국성과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며, 이들이 주로 인상 받는 모티브는 작가자신의 주변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지난 6월호에 소개한 도예가 에바 힐드가 코일링 기법을 위주로 한 도조를 제작하는 것과 비교해 이번 호에 소개하는 도예가 안나소피아 모그(AnnaSofia Maag)는 스웨덴 현대 복합예술 도예가 군단의 하나로, 전통적인 공방공예가의 물레성형기법을 위주로 하여 전형적인 접시의 형태를 변형한 조형작업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도조와 대형 커미션 작업을 하는 에바 힐드와는 달리 안나소피아는 기능적인 공방도자제품과 표현성이 강한 도예작업을 하는 도예가로 일본과 한국의 전통유약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북극권에서 불과 100km 떨어진 스웨덴의 최북단지역에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안나소피아의 빙하시대
안나소피아의 조용하고 잔잔한 조형적인 접시들은 그녀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대변해 준다. 은은한 북극광의 베일에 덥힌 듯한 은밀한 표현주의적 접시들은 그녀가 살고 있는 북부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오로라와 북극광, 만년설과 두껍게 덮인 얼음과 빙하 등 그녀 주변의 지역적인 자연을 표현해 내고 있다. 1년에 6개월 이상 태양을 볼 수 없고, 9개월씩 눈이 내리며, 2~3시간을 차로 달려도 사람을 만나기 힘든 메마르고 황량한 기후와 빙하기의 얼음이 아직도 완전히 녹지 않아 매년 땅이 융기하고 있다는 스웨덴 북부 지방에 살고 있는 그녀에게 이러한 특수 자연환경이 미친 영향이 크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2001년 HDK 석사논문 작품 주제 역시 ‘빙하시대(Ice Age)’로 분화구와 찌그러진 구멍들, 눈과 얼음의 형상들을 추상화한 작업들로 현재의 작업들은 당시의 작품들과 모티브를 같이 한다.
안나소피아의 작업들은 감각적인 표현이 더해진 자연의 낭만주의를 느끼게 한다. 단순하며 날카로운 작품의 표면과 마치 빙하호와 같은 미묘한 느낌을 주는 혼합된 유약 아래에 숨겨진 압축된 감정은 두꺼운 빙하 깊이 가려져있는 폭발성을 내포하고 있다. 전통적이며 기능을 언제나 동반하는 접시의 형태를 변형한 그녀의 작업은 기능성을 기반으로 한 표현주의와 전통적인 공예에서 조형성을 추구해가는 현대 스웨덴 젊은 도예가 들의 경향을 잘 나타낸다고 평가되고 있다.
2001년 HDK 석사학위 졸업 전에서 언론과 평론가들, 예술품 수집가들의 집중적인 주목을 받으며 하룻밤 사이 스타탄생을 했던 올해 36세의 젊은 여성도예가 안나소피아는 그해 많은 대중매체에 소개되고 신진도예가로서는 드물게 여러 국립미술관에서 작품을 구입해갔으며, 거액의 예술인지원금들과 다양한 예술·공예분야의 상들을 수여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러한 그녀의 성공에 대해, 언론과 비평가들은 그녀의 즉흥적인 성공이 이후 어떻게 그녀의 다음 작업에 연결되어 갈 것인가를 솔직히 염려했었다. 그러나 2001년 이후 지속적으로 연결된 그녀의 활동과 2003년에 열린 세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업들은 이러한 염려가 부질없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비록 기본적인 모티브들, 즉 2001년 졸업 전의 빙하시대에서 연결된 기본적인 작업의 주제와 물레성형에서 변형된 접시라는 기본형태, 백색 자기질점토와 혼합유를 기본으로 한 재료 등에는 변함이 없었으나, 2003년에 보여준 그녀의 작업들은 보다 강하고 풍부한 볼륨과 여유로워진 선으로 억제되어있던 2001년의 작업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안나소피아의 작업들은 인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눈에 덮인 대자연속에 있는 꿈을 서술하는 듯한 파동하는 선들로 원초적인 대자연 앞에서 그저 대수롭지 않은 존재에 불과한 한 인간의 모습을 은유한다.
2003년 이후 그녀의 접시형태들은 점점 장미꽃의 형태를 닮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동안 그녀가 보여주었던 역사와 장소와 시간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뿐만 아니라, 그녀가 가진 예술적 낭만을 암시받을 수 있다. 2004년 현재, 안나소피아의 작업들은 예술과 공예사이의 복합예술을 보여주는 젊은 북유럽 현대도예의 전형적인 모델로 평가되며, 도예뿐만이 아니라 순수미술계를 포함한 현대 스웨덴 시각미술계의 예술가들 중 정제되고 세련된 북구의 우아미와 철학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표현해내는 작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점토는 백색 자기질점토와 종이섬유가 혼합된 자기질점토이며, 유약은 백색 광택유, 백색 고령토를 주성분으로 한 앙고배(일종의 백상감), 진한 동 매트유와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 푸른빛이 강한 청자유약을 즐겨 쓴다. 작업은 거의 전적으로 물레성형으로 이루어지며 번조 분위기는 환원을 주로 한다. 유약에 관심이 많은 안나소피아는 일본과 한국의 전통유약들을 좋아하고 HDK 재학 중에도 동양식 느낌이 나는 유약 실험과 장작 가마 소성을 많이 했던 학생이었다.
안나소피아 모그
안나소피아 모그는 1968년생으로 스웨덴의 전통 민속공예품 달라르나(Dalarna) 목마로 유명한 스웨덴 중부지방 달라르나 태생이다. 미술고등학교를 거쳐 공예전문대학에서 도예를 배운 후 본격적으로 도예가가 되기 위해 욧데보리 대학의 HDK 도예과에 입학하여 2001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1년 이후 세 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2001년부터 많은 국제전시회에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데 대표적인 초대전들은 2002년에 노르웨이에서 열린 ‘Made in Scandinavia’와 2003년의 ‘Contemporary Swedish Ceramics’등을 들 수 있다.
안나소피아는 2000년 이후 한해도 빠짐없이 다양한 예술인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현재 2년간 매달 월급으로 지원되는 국립 예술인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들은 스웨덴 국립 박물관, 뢰스캬 공예·디자인 미술관, 국립 예술협회 등 여러 공공기관에 영구 소장되어 있으며, 2003년 한국에서 열렸던 세계도자비엔날레의 조형도자부문에서 입상한 작품은 이천세계도예센터에 보관되어있다. 작년에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며 올해에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HDK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컴퓨터 회사를 경영하는 약혼자의 고향인 북극권에 정착하여 작업 중인 그녀는, 광대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만족하지만 거리상 다른 도예가 들과의 교류가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 먼 북부지방으로 갈 생각을 하였냐는 질문에 15년간 연애한 약혼자가 그녀가 HDK 재학 중 5년간 HDK가 있는 고센버그로 이사 와서 그녀의 학업을 지원해주었는데, HDK 졸업 후 그 빚을 갚는 셈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하였다.
안나소피아는 6월말 그동안 준비하던 그녀의 홈페이지를 열었다. 그녀의 홈페이지는 www.annasofia.se로 스웨덴어와 영어를 동시에 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1. 작품명 : 스노우 크러스트 훌라워스(Snow crust flowers), 각각 지름 35-45cm
재료 : 종이 섬유가 혼합된 백색 자기질 점토(Paper composite porcelain),
백색 고령토를 주성분으로 한 앙고배와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을 혼합 시유.
제작년도 : 2003
2. 작품명 : 스노우 크러스트 포름(Snow crust form), 지름 35cm
재료 : 종이 섬유가 혼합된 백색 자기질 점토
제작년도 : 2003
3. 작품명 : 지그 로스(Jig Rose), 지름 38cm
재료 : 종이 섬유가 혼합된 백색 자기질 점토, 백색 표면은 백색 광택유, 내부는 진한 동 매트유와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을 혼합함.
제작년도 : 2003
작품가격 : 한화 약 240만원
4. 작품명 : 분화구(Crater), 지름 40cm
재료 : 종이 섬유가 혼합된 백색 자기질 점토, 물레성형, 환원소성, 백색 표면은 백색 광택유, 내부는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
제작년도 : 2003
현재 스웨덴 국립 박물관에 영구 소장된 작품
5. 작품명 : 크레이터 포름(Crater form), 지름 38cm
재료, 기법 : 백색 자기질 점토, 백색 표면은 백색 광택유, 내부는 청자유.
제작년도 : 2001
6. 작품명 : 지그 홀(Jig Hole), 지름 45cm
재료 : 백색 자기질 점토(Porcelain), 백색 표면은 백색 광택유,
내부는 진한 동 매트유와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을 혼합함.
제작년도 : 2003
뢰스캬 공예. 디자인 미술관 영구 소장 작품
7. 작품명 : 아이스 아이(Ice eye), 지름 40cm
재료, 기법 : 백색 자기질 점토(Porcelain), 물레 성형, 환원소성
제작년도 : 2001
작품가격 : 한화 약 240만원
8. 작품명 : 병(Bottle forms), 높이 50cm
재료 : 석기질 점토(Stoneware), 백색 고령토를 주성분으로 한 앙고배와 납 성분이 있는 토기질 유약을 혼합 시유.
제작년도 : 2003
작품가격 : 개당 한화 약 280만원
9. 도예가 안나소피아 모그, 그녀의 작업실에서, 2004
필자약력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 도예과 졸업
스웨덴 국립 욧데보리대학교 대학원 석사(MFA)
핀란드 헬싱키산업미술대학교 대학원 박사(Doctor of Art)
개인전 2회(스웨덴),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3회
핀란드 UIAH 도자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도예과 전임강사 역임
현재, 스웨덴 욧데보리대학교 전임강사(공예학부) 및
전임연구원(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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