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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예문화산업 유럽시장 전망 밝다
  • 편집부
  • 등록 2004-08-21 11: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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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칠용 _ (사)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한국 공예문화의 보호육성과 발전을 위해 1999년 「문화산업 진흥 기본법」이 제정, 공포된 이래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공예예술가협회는 2000년 9월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디종 보르도 스트라스브르 쌩제르망엉래 노르망디 루엉을 비롯해 벨기에 네덜란드 이태리 등 유럽 4개국에서 2004년 5월까지 모두 15회에 걸쳐 공예 관련행사를 개최하거나 참석한 바 있다. 특히 2000년 디종, 2002년 스트라스부르, 2003년 노르망디, 루엉 등의 행사에서는 ‘한국을 주빈국’으로 참가한 바 있으며 <파리 국제박람회>에는 올해까지 모두 4회 연속 참가하였으며 <2003년 이태리 밀라노 세계 예술품 대축제장>엔 무려 250여만 명의 입장객들이 몰려와 대 성황을 이루는 행사도 있어 크게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본회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행사에서부터 공예품 판매, 시연, 세미나, 심포지엄 등등 각종 이벤트를 개최하였으며 특히 주빈국 행사에서의 공예 체험장, 국악공연, 한복 패션쇼, 직지 찍기 등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그간 행사를 하면서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하멜표류 3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네덜란드 호르큼시 시립박물관의 초청을 받아 2003년 4월 15일부터 30일까지 전통공예 관련 전시, 시연행사를 했던 것이다. 전시를 열고 나서 비로소 우리 공예품들이 유럽인들에게 인기있다는 것을 한번 더 실감했다. 특히 박물관측의 요청으로 2003년 12월31일까지 장기간 연장 전시된 일은 영원토록 잊기 어려운 이야기꺼리로 남아 있다. 필자는 지난 3년여 동안 유럽을 순회하며 행사하는 동안 시라크 현,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한 장 피에르 라파랭 총리, 베르드랑 들라노에 파리시장 등의 한국관 방문과 그 분들에게 기념품을 증정한 것 등은 내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추억거리이며 또한 파리근교 쌩재르망엉래시에선 현대음악의 거장 정명훈씨, 양은영씨 등과 함께 <현대음악과 전통공예>의 협연을 갖게 된 것은 전통공예계의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유럽은 우리에게 결코 낮선 땅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1900년 조선조 고종 황제께서 부원 민병찬을 대표로하여 나전칠기 나막신 칠보 매듭 자수 등 우리의 민속공예품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참여시킨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방 이후 60여년간 우리 음악 미술 영화 연극 등 다른 문화예술분야에서는 각기 두각을 나타낸 예술인들이 많았지만, 유독 공예 분야엔 이렇다할 활동이 없었던 것이 2000년 9월부터 본회에서 유럽진출을 활발하게 하는 것을 계기로 유럽의 여러 TV, 신문 등에선 앞다투어 우리의 공예 관련 행사를 보도하고 있어 앞으로는 우리 공예문화가 다양하게 유럽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는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본다. 이렇듯 건국 이래 전무후무한 한국공예의 유럽 진출을 위한 여러 방법의 현지 조사를 하던 중 프랑스 파리 국제 박람회 조직위원회로부터 <2004 100주년 기념 파리 국제박람회>국가관에 공식 참여해 달라는 초청을 받고 이를 관계 기관에 알려 2003년 6월 문화관광부 문화교류과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 받은 바 있었기 때문에 본회에서는 공예품과 함께 궁중 의상쇼, 한복패션쇼 등 다채로운 한국 알리기 행사를 계획했다. 그러나 2003년 11월 문화교류과 담당자가 바뀌면서 「지원거부」를 통고 받고 본회에서는 너무나 당황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해온 행사준비를 결코 포기할 수 없어 「중소기업청」에 이를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결국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 본회는 우리 공예상품의 수출, 상담, 판매전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어떻게 된 일인지 문화관광부의 <문화교류과>가 <관광개발과>로 부서를 바꿔 (재)한국공예문화진흥원을 통해 이번 파리 박람회에 참가시키면서 무려 3억여원을 지원했다. 민간단체가 그동안 꾸준한 노력으로 진행해 온 것을 정부가 직접 관여하여 많은 재정적 힘으로 누르겠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하나의 정책을 가지고 두 가지 결론을 낸 것에 대한 의문과 아쉬움을 곱씹으며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자립위주의 활동을 추구하고 있는 본 협회에서는 추후 지원 유무에 관계없이 계속 유럽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굳은 신념과 의지를 가지고 미래를 기약하면서 많은 공예인들의 뜨거운 성원과 지원을 기대할 뿐이었다. 필자는 유럽의 다양한 공예관련 행사에 2000년 9월부터 매회 15일씩 모두 15회에 걸쳐 직접 참가하면서 이를 토대로 한 지속적인 유럽진출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9일까지 <프랑스 파리 뽁 드 베르사이유 국제박람회>에서 개최된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13부스에 22명의 공예인들과 함께 참가했다. 당시 수억 원의 매출과 수십억 원의 상담실적을 올린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까지의 우리 공예 해외 진출 비결(?)을 월간 도예 독자들께 공개하고자 한다. 가장 인기 있었던 공예품들 도자기(국보 복제품) 도자기 젓가락 받침 골무 소형종 징 나전칠기보석함(음악) 소형상자(명함통) 자개명함집 손거울 핸드폰줄 매듭 한복(색동) 용호족자 소형미니부채 생활한복 한지 알공예 섬유주머니 꽃신 선호하는 문양, 싫어하는 문양 잠자는 고양이 강아지 쥐 곤충 물고기 등을 선호하며 특히 포르투갈은 닭 무늬를 좋아함, 이태리의 경우 염소 양 등의 그림은 기겁을 함. 가격 공예품의 품종과 품질만 좋으면 가격엔 상관이 없다. 생활한복의 경우 100만원이 넘는 것도 구매가 잘 이뤄지며 70여만원짜리 알공예도 구매자가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인식 많은 유럽인들은 한국을 베트남, 중국 등과 비슷한 생활수준으로 알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북한보다 조금 잘사는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등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유럽에서의 한국관이라 할 수 있겠다. 심지어는 중국의 일부 ‘성(城)’정도로 알고 있는 예까지 있다. 그러나 섬세하고 정교한 공예품을 보면서 놀라고 ‘한국에서도 이러한 공예품이 생산되느냐?’하며 의아심을 갖는다. 그러므로 국제행사 참여시에는 한국 물건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있는 통역과 설명서 등 사전 교육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고유한 문화유산의 의미가 가득 담겨져 있는 공예품의 홍보 전통옹기와 옻칠제품은 멸균 살균 효과가 크며 벼락 맞은 대추나무는 어떠한 효능이 있으며 한지에 담겨져 있는 과학적 희귀성, 천연염색과 건강 등등 우리네 전통공예품에는 수없이 많은 신비스러운 이야기꺼리(물론 입증된)가 넘쳐나므로 이러한 내용들은 잘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문서화하여 공예품을 홍보한다면 큰 효과를 볼 것이 분명하다. 상담도 중요 하지만 현장 판매가 더 효과적이다. 그동안 관계당국에서는 우리 공예품을 외국에 홍보할 때 현지에서 보여주고 그냥 가져오는 방법을 많이 택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그림의 떡’을 홍보한 것에 불과했다고 본다. 그 좋은 증거는 오늘날 침체되고 낙후되어있는 공예문화계를 보면 잘 알 수 있겠다. 현실적으로 공예품을 상담하여 수출로 이어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 보다 더 힘들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품목을 수백, 수천 개씩 주문하여 쌓아놓고 팔려는 공예업체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소량 다품종전략!’바로 이것만이 우리 공예의 유럽진출길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파리의 에펠탑 개선문 몽마르뜨 언덕에서 외국산 공예품을 사본 적이 있는가? 물론 조잡한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제작해 온 열쇠고리나 T-셔츠 등은 보았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의 남대문 동대문 십장생 사군자가 그려진 엽서나 기념품이 유럽시장에서 팔려 나간다는 것은 우리만의 요망사항에 불과 한 것이라도 봐야한다. 공예인들의 선택, 선별권 공예인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려면 제일 먼저 설정할 사항이 있다. 가 : 관광 상품용, 수집용 등 구매 대상에 대해 우선 생각하자. 나 : 전시회 참가시 상담전문 전시회, 판매전문 전시회를 확실하게 구분 하여 각기 현장에 맞는 전시를 택하여 참가 하여야 한다. 다 : 유럽인들의 취향, 선호도를 자세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수십 개 국가에서 참여하는 국제박람회를 직접 방문하여 4~5일간 세밀하고도 정확한 시장조사를 해야 한다. 문제점 위에서 설명한바와 같이 우리 고유문화상품은 유럽에서 인기도 좋거니와 선호도가 매우 높은 유망 종목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문제점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전시, 박람회 등으로 참가할 경우 다음과 같은 내용에 대해 꼭 준비를 해야만 한다. 가 :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경우 꼭 고용계약서를 작성해야하며 노동법에 의한 세금을 수당의 40%이상 추가 부담을 해야 한다는 점도 중시해야 한다. 또한, 근로기준법에 의해 점심시간 2시간 정도는 꼭 외부에서 식사를 하고 오게끔 해야 한다. 나 : 모든 물건은 공항에서 관세를 신고해야 하며 무관세로 통관했다가 현장에서 적발되는 예가 있으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또한 판매 외형의 19.6%가 부가세이며 유럽인들은 5천원이상 구매 시 수표사용이 필수적인데 현장에서 받은 수표를 환금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공예 관련 정부기관의 이해 부족 한국 공예문화는 분명 세계 속에 한국을 가장 확실하게 심을 수 있는 귀중한 자원이라 할 수 있다. 그림 IT 전자 등 아무리 좋은 신상품도 모두가 서양에서 도입된 것이므로 우리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그들을 능가 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 고유의 문화유산이 가득 담겨져 있는 공예야말로 21세기를 맞이한 대한민국에 가장 큰 효과가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부처 어느 부서에서도 공예를 전담하고 있는 공무원이 없는 실정이다. 본인이 그동안 유럽진출을 강행하면서 문화관광부와 중소기업청 강원도 전라북도 충청북도 경상북도 등 나름대로 인맥을 찾아 조금씩 지원받아 활용했지만 그 방법과 과정이 어찌나 힘들고 어려운지 차라리 길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어느 곳에선 지원금보다 지원을 받기위해 뛰어다니는 부대경비가 더 많을 때도 있었다. 그 중에서도 중소기업청이 가장 신사적이고 사무적이면서 공예문화의 유럽 진출에 따뜻한 정감을 가지고 협조해 주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정부 각 부처마다 하나의 정책을 가지고 각기 부서가 달랐고 윗사람이 지시해도 실무자들은 교묘하게 애를 먹이고 어떤 때는 행사를 위해 출국하는 전날 지원 결정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작금의 관 주도 위주의 우리 공예 해외 진출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해당부처에서는 한번쯤 짚어보았으면 한다. 지난 과거에도 그러한 방식은 제대로 효과를 발휘 하지 못해 왔고 그 결과로 오늘날 우리의 공예계 현실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는 해외 행사시에 외형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치중하거나 실적 남기기에 그럴듯한 허식이나 겉치례 등 불필요한 부대 경비를 최대한 절약하고 자제하여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종목에 지원한다면 더 큰 성과를 얻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즉 민간단체에서 추진하는 일들은 철저히 민간 주도의 활동으로 인정하고 그곳에 최대한 지원하여 더 큰 파급 효과를 꾀해 관 주도의 대형 행사에서는 차라리 차원이 다른 대의적 형태로 한국 홍보를 추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갖는다. 에필로그 지난 <프랑스 파리 100주년 기념국제박람회>기간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파리 시내를 비롯해 인근 도시에 3~4군데의 한국공예품들을 취급하는 가게가 생겼으며 이러한 현상을 계속 이어질 것으로 확신하는바 머지않아 우리 공예품만을 취급하는 가게(대리점)가 늘어날 것이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특히 중국인 점포에서는 매듭, 섬유 주머니 등을 선호했고 유럽인들은 종 징 등을, 보석상에서는 음악이 나오는 자개 보석함을 도매로 구매하는 경향이 많아 이 분야에 대한 전문적이고도 기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동안 행사를 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국내 공예계, 특히 학계에서 보는 본회의 유럽진출에 대한 시각이다. 본회에서 유럽 시장에 진출시키려고 하는 품목 중 골무 한지 나전칠기보석함 등 15여개 종목은 현장에서 유럽인들과 직접 상대하며 잘 팔려나가고 관심도가 높은 것을 선정한 것이다. 특히 한국적인 홍보 장치물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엄청난 장치 시설비를 감당할 수 없는 ‘공예계의 영세성’이라는 것이 변명 아닌 변명이겠지만 실상 장터 개념의 ‘박람회’에서 전시장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계산이었고 화려한 장식물 속에 공예품의 독특성과 아름다움이 희석돼 버릴 듯해 그저 한국적인 수수함으로 꾸려간 것인데 일부에서는 한국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비판과 매도를 하고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공예계 현실을 잘 모르는 일반인은 민간단체인 우리가 어떻게 정부의 지원금 일부를 가지고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뛰고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일부 문제 제기를 한 공예인들은 공예계 현실을 잘 알면서도 개인의 힘으로 일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본다. 그 문제제기는 언제 자신의 얘기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반만년 공예 역사의 맥은 그 누가 뭐래도 공예계 장인들이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공예인은 이번 유럽전을 보고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일침을 가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잣대로 세상을 재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유럽 진출에 대한 분위기를 쇄신해서 공예계 발전에 함께하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남을 탓하고 부정하고 편 가르기를 하기 전에 우리 전통공예 장인들이 보고 배우고 따라 갈수 있는 그러한 공예품들을 그들이 먼저 선보여 이끌어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일본 미국등지에서 수입해서 팔거나 사면 예술가고 작가인데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하는 비즈니스는 장돌뱅이로 취급하는 그 편협 된 사고방식과 의식들, 그리고 고급 비즈니스만 인정하는 풍토에 대해 어떤 답을 주어야 할 지 모르겠다. 어찌되었던 현실적으로 우리 공예문화의 진출로가 될 수 있는 유럽시장의 문은 열리고 있다. 그러므로 동남아나 중국의 일부 조잡한 저질 공예품들이 그 곳 황금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기 전에 뜻있는 장인들이 우수하고 아름다우며 가장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공예품들을 만들어 남보다 먼저 그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작은 요망사항일 뿐이다. 필자약력 (사)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한·불 전통문화교류 협회장 (재)한국공예문화진흥원 이사 2002FIFA월드컵 프랑스, 벨기에, 일본 공예전시 집행위원장 2002 월드컵관련 국무총리 표창, 2003 문화훈장 서훈 칠(漆)공연구등 단행본, 월간지 등 80여권 공예 관련 서적 발행 무주 전통공예 한국대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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