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스웨덴 도예계의 경향과 도예가들(6)
스웨덴 도예계의 대모, 시그네 페르손-멜린
Signe Persson-Melin
글 김정아 _ 스웨덴리포터 사진 시그네 페르손-멜린 제공
80세의 나이에도 도예가이자 산업디자이너로 활발한 현역 활동을 하고 있는 시그네 페르손-멜린은 스웨덴 도예계 특히 도자 교육계의 대모로 일컬어진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프로산업도자디자이너를 꼽을 때 노벨상 수상식 만찬에 사용되어지는 노벨서비스Nobel service를 디자인한 카린 린드퀴비스트Karin Lindquivist를 지목한다면, 시그네 페르손-멜린은 스웨덴역사상 공예와 디자인분야에서 최초로 교수임명을 받은 여성으로 스톡홀름에 있는 공예·디자인 대학 쿤스트확Konstfack의 도자·유리과가 디자인에 중점design-oriented education을 두고 훌륭하게 발전하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다.
시그네는 1925년 스웨덴의 남부에 위치한 곡창지대 스코네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18세부터 스웨덴의 남부도시 말뫼에 있는 롬마 레르 오 세라믹Lomma Ler & Keramik공장에서 도공으로 처음 도자를 배우기 시작하여 곧 요업산업체들이 밀집해있는 회가네스Hoganas지방에 있는 작은 도자 산업체 안델손 오 요한손Andersson & Johansson으로 옮겨 일을 배웠다. 그 당시 안델손 오 요한손에서는 녹색과 노란색조의 유약을 입힌 토기질 도자를 석탄 가마를 사용해 생산하였는데, 지금도 시그네는 그때의 부드러운 녹색과 꿀 같은 노란색 유약을 종종 회상하곤 한다. 이때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의 토론은 그녀가 점토와 유약 그리고 공예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이 공장의 자문이었던 조각가 로버트 닐손과 그의 아내로 섬유예술가이자 쿤스트확의 전임으로 근무하던 바브로 닐손은 시그네가 형태와 색채, 표면처리와 예술적 표현에 대한 눈을 뜨게 해주었다.
1944년 시그네는 휴직을 하고 쿤스트확에 입학했으나 당시 이 학교가 성형기법과 점토, 유약에 대한 교과 과정이 미흡하다는 것을 알고 한 학기 후 덴마크의 코펜하겐 공예·디자인 대학으로 자리를 바꾸어 학사학위를 받았다. 1948년 스웨덴으로 돌아와 다시 안델손 오 요한손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1949년 시그네는 스웨덴 남부지방의 디자이너들과 건축가들이 참여한 그룹전에 두 종류의 찻주전자와 물고기문양이 조각된 대형접시들을 출품하여 큰 이목을 끌게 되었다. 이 전시회의 성공적인 결과로 그 해 시그네는 쿤스트확의 조소과 석사과정에 특차로 입학하여 안델손 오 요한손에서 만난 조각가 로버트 닐손의 지도를 받아 1950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1950년 여름 시그네는 말뫼의 한 연립주택 지하실을 임대하여 작은 공방을 설립했다. 다음해 대형 전기 가마를 구입하면서 공방을 큰 곳으로 이전하고, 롬마 레르 오 세라믹의 동료였던 덴마크 도공 에른스트 크리스텐센을 물레성형 도공으로 고용하며 공방의 생산량을 확대했다. 실용도자 식기류의 생산과 함께 다양한 건축도자 커미션 작업을 했는데 1950년대에 그녀가 작업한 대표적인 것들로는 스톡홀름 지하철 벽장식과, 지금까지도 스웨덴 최대의 도자 벽장식 중의 하나로 꼽는 스톡홀름 시민회관의 450평방미터의 벽장식을 들 수 있다. 가장 최근의 커미션 작업으로는 트뢰네 교회의 실내·외 건축도자와 이 교회에 필요한 모든 용품의 종합적인 디자인작업이다.
1967년부터 시그네가 디자인한 맥주와 스냅스Snaps(알콜도수가 아주 높은 스웨덴 전통주로 한국의 소주잔같이 작은 잔을 사용한다) 유리잔 시리즈 루벤Ruben과 유리용기 시리즈 씰Sill(씰은 스웨덴식 젓갈음식), 와인 잔 시리즈 부케Bouquet 등이 보다Boda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시리즈는 그녀의 남편인 그래픽 디자이너 존 멜린John Melin이 디자인한 미니사이즈의 제품 설명서를 함께 끼워 판매했는데, 이 안내문에는 제품의 재료부터 제작기술, 사용법까지 자세히 설명되어 이 당시 스웨덴 도자 산업계에 소비자교육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1970년 시그네와 그녀의 남편은 코스타 보다Kosta Boda회사와 결연하여 새로운 개념의 주방과 식탁용기 디자인제품 생산라인을 설립하고 이 라인을 보다 노바Boda Nova로 명명하였다. 이후 1995년까지 25년간 그녀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로 보다 노바를 이끌었다. 시그네는 보다 노바를 통해 투명한 유리주방용기와 유리 식기류를 코르크 마개나 받침 등 두 재료를 병용한 디자인으로 생산하였으며, 도자 제품들은 따뜻한 흰색이나 흑갈색유를 시유한 석기질 식기류들을 같은 재질의 손잡이가 달린 금속제 나이프, 포크, 스픈 세트와 함께 시리즈로 디자인하여 생산하였다. 1981년에 보다 노바에서 생산한 자기질 식기시리즈 체스Chess와, 1980년 뢰르스트란드에서 생산한 프리머스Primeurs시리즈는 그녀의 대표적인 디자인중의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1985년 시그네는 쿤스트확으로서는 최초의 교수이자, 스웨덴역사상 최초의 여성으로 디자인 분야의 교수임명을 받았다. 1995년, 예전 도자회사였던 구스타브스베리Gustavsberg 건물에 동료교수였던 도예가 케네트 윌리암손Kennet Williamsson과 공동으로 쿤스트확을 졸업한 디자이너들을 고용하여 디자인회사를 설립하였다. 1998년에는 말뫼에 새로운 공방을 설립하고 2000년에 이곳으로 완전히 거주까지 옮겨 노년에도 불구하고 일년에 세 차례씩 대형 개인전을 개최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산업 디자인과 대형 커미션 작업을 하는 놀랄만한 정력을 보여주고 있다. 도예가로서의 시그네는 점토의 종류에 구애 없이 디자인에 따라 점토를 선택하며, 번조방법이나 번조분위기도 작품에 따라 선택하고, 작품제작은 대부분 물레성형으로 제작되는데 그녀의 이름을 대표하는 각이진 주전자들은 모두 물레성형후 방망이로 쳐서 변형한 것들이다.
시그네가 수상한 대표적인 상들로는 1958년 런닝상, 1989년과 1997년, 2002년에 문화상, 1994년 시그눔Signum을 위한 디자인으로 독일 후랑크후르트 국제 무역박람회에서 그랑프리, 2001년 프린스 유진메달, 2004년 스웨덴 건축·디자인상들이 있으며, 그녀의 작품들은 스웨덴, 덴마크, 미국, 영국, 일본 등의 유명 박물관들에 소장되어 있다.
시그네는 18세에 도공으로 시작하여 지난 62년간 스웨덴의 공예사에 도예가이자 산업도자디자이너, 도자교육자, 도자 사업가로 큰 업적을 남겼다. 그녀는 도자, 유리, 금속, 나무 등 거의 전 분야의 재료를 다루며 이러한 재료들을 다양하게 혼합하여 작업을 함으로서 오늘날 스웨덴의 많은 도자디자이너들과 도예가 들에게 다양한 재료의 복합사용을 통해 취업의 가능성과 도예계 자체의 영역확대에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스웨덴 산업도자를 상징하는 디자이너이자, 현대 스웨덴 도예계의 대모로 불리는 도예가 시그네는 최근 점토의 재료적 성격과 기술적 개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작업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그녀의 최근 작품들을 비평가들은 현대와 역사의 공존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80세의 도예가 시그네 페르손-멜린 (Signe persson-Melin)
시그네 페르손-멜린 제작, 석기질 점토(Stoneware), 백색 재유약을 시유하고 1295도 환원번조, 작품크기는 가로 24 x 세로 41 x 높이 24.8 cm, 1996년작.
시그네 페르손-멜린 제작, 트뢰네 교회(Trono kyrka) 도자벽화와 실내 장식, 화재로 소실된 트뢰네 교회를 재건하면서 예배당과 세례소의 벽장식 및 이곳에 필요한 다양한 교회용품 디자인을 주문 받아 제작했다. 2001년작.
1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뢰르스트란드(Rorstrand) 생산,
제품명이 중국인(Kinesen)으로 알려진 차주전자,
높이 16.3 x 가로 25.3 x 깊이 10.3 cm, 1986년작.
2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회가네스(Hoganas) 생산,
천(Chun)유약이 시유된 사각형 차주전자, 1990년작.
3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차 주전자, 재료는 주석(Tin;양철),
에스트리드 에릭손(Estrid Ericson)이 설립한 Nytt Svensk Tenn(새로운 스웨덴 주석이라는 뜻)회사의 창립 80주년기념으로 특별 디자인된 제품, 2004년작.
4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보다 노바(Boda Nova) 생산,
접시와 포크, 나이프를 세트로 디자인 한 제품,
접시와 포크, 나이프의 손잡이 재료는 석기질 점토를 사용, 1972년작.
5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보다 노바(Boda Nova) 생산,
체스(Chess) 시리즈 중의 일부,
석기질 점토로 제작하고 백색유 시유, 1980년작.
시그네 페르손-멜린 디자인, 보다 유리(Boda Glass) 생산, 와인 세트, 1974년작.
필자약력
이화여대 및 동대학원 도예과 졸업
스웨덴 국립 욧데보리대학교 대학원 석사(MFA)
핀란드 헬싱키산업미술대학교 대학원 박사(Doctor of Art)
개인전 2회(스웨덴), 국제학술대회 논문발표 3회
핀란드 UIAH 도자연구소 전임연구원 및 도예과 전임강사 역임
현재, 스웨덴 욧데보리대학교 전임강사(공예학부) 및
전임연구원(디자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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