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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비평과 작가의 자세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7:11:23
  • 수정 2016-04-15 11:3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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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종인 도예가 <도예비평과 작가의 자세>...<김종인, 도예가>라 쓰여진 원고청탁을 받았을 때는 ‘...난 참으로 할 말이 많았는데 이거 잘됐다’ 싶었다. 그런데 난 한달 여 이것 때문에 시달리고(‘왜 주제에 쓰겠다고 했냐’고 자학도 하다가, ‘아니야 나 같은 사람이 말해줘야해’라며 호기도 부리다가...) 급기야는 마감일을 넘기고 기자의 숨넘어가는 비명을 겨~~우 막기위해 이 새벽에 이렇게 앉아있다. (괜히 책상의 없는 먼지도 닦고... 식은커피 또 끓이고... 얼마나 지났지???) 그리고, 왜 복잡한지도 모르면서 복잡하게 뒤엉킨 내 머릿속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도예비평?>, <작가?>, <자세?>란 글자가 찍혀진 모니터를 그나마 째려보면서 난, 오죽하면(?) <비평이 없는 한국도예계>란 특집까지 만들게 되었을까?, 그래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것이 무었일까 생각하니 그건 어릴 적 학교미술교육부터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 원망을 시작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난(475세대)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동네친구들과 깨 진 기왓장(내 기억으론 검붉은 둥근판)을 돌로 요리조리 쪼고, 쫘서 꽤 그럴싸하게 동글동글 다듬은 수제(all handmade) 공깃돌을 커다란 접시치마를 보자기 삼아 한가득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자랑스러웠었다. 또 비가 오면 촉촉이 젖어든 적당한 집앞마당 진흙을 나뭇가지로 파내어(지금 생각하니 난 이미 5-6세에 도예가가 되는 것을 안 천재아니었나?!@#...) 두꺼비집도 만들어 보고, 개미길도 길게 흙벽을 쌓아 만들어 주고, 언제나 재미있던 소꼽에 쓸 흙포도방울도 알알이 만들었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해 진다. 그런데 (유감스럽고 한편으론 슬프게도) 그때 그 시절 이 후 난 기왓장이든, 흙이든 만져보고 뭔 가 만들어 본 것은 -껑충 뛰어- 대학에 들어와서가 그 다음이 아니던가 싶다, 12년간의 학교미술시간을 보 낸 그 다음 말이다. 그럼 난 그 세털같은 많은 미술시간에 뭘 했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미술시간하면 ‘문방구에서 파는 크레파스와 스케치북 그리고 물감’이 우선 전부다. 그리고 ‘하늘은 하늘색-땅은 땅색─사람은 살색으로 칠해야 혼나지 않았던 선생님 말씀’, 미술시간엔 거의 미술책에 나 와 있는 서양유명작가들의 그림을 그대로 베끼는 것으로 보냈고 난 그 중 ‘잘 베껴서’ 반 친구들 앞에 일으켜 세워져 “...얘들아! 이렇게 그려야 된다~~” 하시며 으쓱하게 만들어 주시고, 복도 게시판에 붙는 영광을 주셨을 뿐 만 아니라 사생대회까지 나가게 해 주 신 그 명문대 미대 출신 선생님, 듣는 순간 잊어버리고 마는 괴상한 서양이름의 미술사를 처절하게 읊조리던, 그래서 마치 자장가 같았던, 그 미술시간(난 지금도 그 미술선생님이 뭘 전공했는지 모른다)들만 뇌리에 남아있다. 그리고 난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치렁치렁한 드레스만 입는 종이인형공주를 그려와 일제만화연필을 교환하는 수공예길드를 일찍히 방년 9세부터 시작한 사람이다, 내 옆 짝꿍과 그 기상을 높이려는 운명이었는지 난 미술대학을 지원하게 되었고 그곳이 마침 그릇도 만들고 옷감에 염색도 하는 공예학과였을 땐 난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런데 난 그릇만들고 옷만드는 곳을 가기 위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 ‘카라카스,아그리빠,줄리앙’의 죽은 석고상 앞에서 참으로 많고 힘 든 밤은 새웠지만 어떻게 그릇을 만드는지, 무엇으로 옷감을 염색하는지 질문을 당해 본 적도 배워 본 적도 없이 그것들을 한다고 버젓이 대학문을 들어갔다, 그 죽은 석고상들의 명암만 달달 외우고서… . 그리고 귀찮으니 흙이며, 석고같은 것들은 준비하지도 시키지도 말고 그냥 챠트나 만들고, 아이들한테 그냥 도화지, 물감 가져오라고 해서 적당히 수업하라는 미술대학교생실습을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면 죽은 석고상 그리기의 연장이어 슬픔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 더 슬픔이다. 그리고 빛나는(?) 도자전공졸업장을 2개씩이나 들고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에 오를 땐 2개 꾸러미의 도구만 있으면 무서울 것이 없다 싶었고 내가 도예계를 평정하는 줄 알았다(이건 농담이다). 귀국전(가지고 들어 온 작품보기를 기대하는 것도 모르고) 준비를 이곳에서 해놓고, 내 딴에는 왜, 어떻게, 뭘 말하고 싶은 건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더욱이 그것을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었으며 난 나의 한국도예 조직 사람찾기(평론과 비평을 담당하는) 쓴 맛의 맛보기를 시작하였다. 객관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평론가이고 그래서 찾았을 때,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한 경계선 안에서의...) 많은 선택(?)이 있음을 알았다. 첫째, 얼마짜리 평론을 원하는가? 20? 30? 50? 100? 둘째, 얼마나 한국미술계(공예계 제외)에서 유명한 사람을 원하는가? 물론 그 들을 원한다고 누구나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만나주는 것에서부터 인맥과 학맥 중 어느 하나는 연결되어야 함은 기본이다. 설사(운이 좋아) 그들 중 누구와 연결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내 작업실에 와서 작품제작과정을 볼 시간도, 나 혼자만 심각한 작품세계관을 들을 여유도, 수십장의 사진을 볼 가치도 없다 싶은 듯 했다. 단 몇 장의 슬라이드를 슬쩍 훌터 봐 준 그 제스츄어가 너무나 어려운 미술이론으로 도배된 원고뭉치로 바뀌어서 내 앞에 뚝 떨어지면 난 어느날부터 아무개선생님 글을 받은 괜찮은 작가라고 할 수 있고, 난 미술잡지, 신문 전시소개 0순위에 오르는 영광을 갖게 된다(물론 기자들도 그 작가가 누구인가는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셋째, 얼마나 순수미술사적, 미학적으로 어렵게 진단을 받길 원하는가? 마치 내 작품의 훌륭함은 읽고 또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고도의 미술이론으로 포장됨과 비례라도 되는 듯 하게 말이다. 넷째, 관례적 비평(평론)을 원하는가? (귀국전으로 돌아가서), 모두들 예우상 모교의 은사님께 글을 받아 얼마나 훌륭한 제자인지, 작품인지를 인정받아야 하기도 한다기에 나도 질세라 부탁을 드렸더니 ‘...난 평론, 비평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글을 써 줄 수가 없다’라고 단호히 거절하시는데 난 너무도 감사하게(?) 그 거절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맞기 때문이었다. 다섯째, 대학교수의 비평(평론)을 원하는가? 비평(평론)가의 것을 원하는가?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작업세계에 관련된 것에서 우린 학교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전시장에서 전시를 할 때도 ‘..어디 강의 나가세요?’ 물어서 대답이 없을 땐 ‘취미생?’, 동네취미반 수업도 대학강의를 나가야 ‘훌륭한 작가?’... 독립비평(평론)가 보다는 모모대학교수이면 더 훌륭할 것 같고... 그래서 나도 이 다음엔 돈 내고 겸임교수가 된 사람에게 한 수 받아야 될 듯싶다. 여섯째, 달콤한 비평을 원하는가? 어느 젊은 평론가가 중견작가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게 되어 이상적인 비평가의 자세와 행동을 모두 실천하고 나서 완성된 글을 놓고 그 작가의 작품을 실랄히 비판했다는 이유, 작가에 대한 칭찬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다시 쓰라는 억지를 끝내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며 ‘...그럼 지가 반장통장 다~~~하지...’ 라며 몹시 씁쓸해 하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다. 두서없는 지금까지(가증스럽게 남 이야기 하 듯...그러나 모두 눈치채셨겠지만...)의 고백은 나의 원망과 뒤틀림과 반항과 소외 그리고 변명과 하소연이기에 답답하다. 그리고 반성이다. 그런데 반성하고 난 다음엔 어떻게 해 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난 작업하고, 판매하고, 함께 작업으로 살아나아가는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을테니 누가 나를 말려주든, 때려주든, 잡아주든, 밀어주든, 정리해주든 해야 할꺼다. 거기 누구 없소?????? 필자약력 웨일즈대학교 도예전공석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대학 도예디플로마 마니미니재미가게(2001-)기획자 겸 가게운영 오스리트아아트페어참여작가 버몬트아트센터초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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