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종훈 _ 단국대학교 도예과 교수
몇해전 서울에서 열린 세계 차茶 대회 때 중국대표가 강연 마지막 즈음에서 “차와 도자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라고 확신에 찬 발표를 하였다.
그 의미는 중국에서 차와 도자가 대중화되었으며 세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강연에서도 그들은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허풍은 떨지 않아도 이미 400여년 전부터 차 문화를 장려하며 도자를 발전시켜왔다. 일본 역시 차 문화를 도자와 함께 세계로 뻗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이건 그 나라의 차茶가 있으며 차와 도자는 뗄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중 차 문화를 미래 산업으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지금 막 꽃을 피우고 있는 차 문화를 도자와의 접목해 대중화되기를 바라며, 익숙해질 수 있는 방법을 살펴본다.
대중화란 “익숙해지는 것”이다.
어느 시대건 도자는 첨단기술이며 귀족적인 품격의 물건이기 때문에 대중은 늘 자기로 된 제품을 갖기를 원했다. 지금도 대중은 여전히 도자에 대한 구매의욕이 크다. 옛날과 달리 격식 없는 문양과 형태를 요구하기도 한다. 도자에 대해 격식 없이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도자와 익숙해지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 첨단의 귀족문화를 어떻게 하면 대중에게 익숙하게 할 수 있는가가 우리나라 도자 대중화의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다. 아직 도자의 영역이 대중들에게는 얼마나 신기하며 귀족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바로 이것들을 ‘익숙하게’ 해 주는 것이 도자 대중화의 큰 덕목이다.
그래서 도자의 문턱을 낮춰야한다.
도자는 예술이기 이전에 기술이다. 필자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도자는 어렵지 않다. 재미있고 장사가 되는 직업이다. 부지런하고 약간의 지혜가 있으면 더 없이 매력 있는 직업이다. 그리고 도자를 하는 개인마다 원료가 다를 수 있고 불 때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비법을 갖는다. 도자를 비법에 의한 신비한 물건으로 만들지 말자. 대중들이 우리를 신비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거나 예술가인양 부러워하는 동안 도자의 대중화는 뒷걸음 치고 있다. 우리들(도기장, 사기장)은 신비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더구나 예술가의 경지에 있지도 않다. 흙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을 빚어서 수요자의 맞춤에 응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자. 도자는 자연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이므로 ‘비법’이라는 것에 혹하지도 말고 주눅들지도 말자” 라며 도예의 문턱을 낮추자고 한다.
특히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청자가 대중화되지 못하고 사양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문턱이 높은 ‘비법’으로 일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이들도 옛 비색에 도전하는 것에 겁을 먹고 있으며 대중들도 비색의 판단이 서질 않아 까다롭게 생각되어지는 청자의 사용을 기피하게 되었다. 따라서 연구, 개발되지 않는 청자는 색상과 형태면에서 발전적이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청자는 소량의 산화 제2철을 불이 산소를 하나 잡아먹어서 산화 제1철로 안정된 산화금속물로 변하게 하는 화학적인 반응이라는 것으로 아주 쉽게 접근함으로서 ‘신비한 예술’에서 자연을 실험하는 기술로 인식되어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예술이라는 형이상학의 틀에서 과학과 기술의 개념으로 전환시켜 디자인된 제품이어야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익숙한 것으로 장사하기
15년 전 일본 동경박물관 학예연구원과의 대화에서 그는 임진왜란 때 잡혀간 우리 도기장, 사기장의 역할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고 일본 도자의 발전은 “유럽과 무역을 해서 발전했다”고 역설하면서 한국의 도자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제시대의 암흑기에 도자가 발전할 수 없었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해방이후의 열악한 조건으로도 그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필자를 사로잡은 단어는 무역이라는 단어였고 쉽게 말해서 장사를 해서 도자가 발전했다는 그 말에 공감을 하였다.
중국 경덕진이 불길에 휩싸여 화공들이 일본으로 갔을 즈음에는 벌써 임란 때 잡혀간 조선의 도기장과 사기장들이 터를 잡아 요구하는 물건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고 잘 만들어진 제품에 중국 화공의 화려한 그림이 새겨 넣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의 도자는 기술면에서 조선의 영향이, 중국으로 부터는 화려한 그림의 덕분으로 제품의 질이 월등히 높아졌고 유럽의 수집가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으며 궁중연회에 자기로 된 그릇이 필요한 터라 유럽의 상선이 후쿠오카를 중심으로 도자의 무역이 성황 하게 되었다. 자연히 일본에 대한 인식이 유럽에 퍼져갔고 무역으로 모인 재정은 일본 근대화에 초석이 되었다. 그 상선이 가까운 일본으로 향하지 않고 조선으로 왔다면 좋았겠지만 준비도 되지 않았고 기회도 오지 않았다.
가까운 나라의 무역에 관한 역사를 그대로 한 개인에게 옮겨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잘 만들어진 그릇에 좋은 그림솜씨로 완성된 제품이 가격까지 알맞다면 사용자가 찾아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도자의 대중화는 이미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어느 작가가 대중이 다가올 수 있는 매력 있는 도자를 기술적으로 만들 수 있으며 또한 대중을 설득하면 팔 수 있는가에 따라 도자의 대중화는 시간문제인 것이다.
필자약력
단국대학교에서 김석환 선생 사사
개인전 13회
화랑 미술제 초대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 초대전
대한민국 미술대전 우수상
현, 한국사발학회 회장, 단국대학교 도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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