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벗한 세라믹 기술 연구자의 세상을 바꾸는 방법
“제가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연구했던 60년대의 요업산업은 국가 기간산업으로서의 기상이 대단했습니다. 또한 그때 당시 요업은 국내 기술을 이용해 수입 원료를 국산 원료로 대체하는 등 수출산업으로서 큰 몫을 담당하고 있었으므로 중요한 산업분야의 하나로 인식되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던 요업산업은 현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순수 국산 원료 및 기술을 보유하고 연구개발을 끊임없이 해나간다면 어려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종근 박사의 세라믹 외길 인생은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 학사 과정을 밟은 후 한국에 돌아와 상공부 국립공업연구소 공업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석고재생 및 시멘트 관련 연구를 하다가 세라믹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시던 선배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세라믹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능력 있는 선배님들의 도움이 꺼져 있던 요업 연구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지피게 된 것입니다.”
이 박사는 1945년부터 국가 수행연구기관에서 요업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공업표준심의회 요업부회 대표위원직을 맡았다. 이후 1965년에는 대한요업학회 회장, 대한요업총협회 회장, 요업부문 정부시책평가위원, 국무총리실 장기자원대책위원, 한양대학교 산업과학연구소 소장, 한국유리공업 기술고문 등 다양한 직책을 맡고 요업 연구에 불타는 의지를 태웠다. “연구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연구소의 환경은 정말 열악했죠. 당시엔 업무에 익숙치 않았던 나를 지도해 줄 사람이나 참고할 연구 자료조차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내가 모든 일들을 스스로 알아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조건 도서관에 앉아 책을 들여다보면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죠. 기술연구소에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열중했던 모든 일들이 현재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는 이 박사의 얼굴 표정에서 뿌듯한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 박사는 당시 국내에서는 한번도 시도된 적 없었던 칠보 제작법을 순전히 책을 통해서 기술을 습득하고 생산에 성공함에 따라 국내 공장을 세우는데 도움을 줬던 그때의 일을 회상했다. “거 참 재밌는 일이예요. 내가 책을 통해 연구했던 기술들이 상품으로 제작되어서 판매가 이뤄지니까요. 이렇게 시작한 일이 결국 국내 세라믹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결국 세라믹 산업 활성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이 박사는 칠보, 법랑의 제조법과 그에 이용되는 채료의제법, 도자기에 이용되는 유상 및 유하 채료의제법과 정색 및 이용범위 등을 집중 연구했다. 이에 칠보, 법랑, 유리, 도자기 등 무기재료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직접 생산 또는 제조공정 상에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했으며, 이로써 한국에서는 최초로 ‘제1회 3·1문화상’을 수상하는 영예까지 안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이종근 박사는 상공부장관 연구상, 대한요업총협회 학술상, 국민훈장 동백장, 한국요업학회 학술상, 대한민국 과학상, 국민훈장 모란장, 한국요업학회 성옥상 등을 수상했다.
국내 기술 이용해 국산원료 대체에 주력한 세라믹 연구 개척자
이 박사는 단순히 연구 결과물을 공장에서 생산해 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요업원료를 순수 국산원료로 대체하는데 주력해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만이 보유한 그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은 전통 세라믹 분야를 뛰어넘어 파인 세라믹스 분야의 국산화에까지 범위를 넓히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이 박사는 세라믹 연구의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이 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연구소에 찾아온 기업인들에게 전수하면서 서서히 세라믹 산업 현황, 세라믹 업계 및 연구소 관계자 등을 섭렵하는 세라믹 분야의 마당발이 되어갔다. 따라서 1970년부터 약 10년간 세라믹 분야의 고문 역할인 정부시책평가위원직을 맡는 등 세라믹 연구뿐 아니라 업체와 관련한 일을 도맡았다. 이종근 박사를 세라믹 연구의 개척자라고 칭하는 기자의 말에 이 박사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는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는데 그치지 않았어요. 연구도 중요하지만 동반자와 같은 업계 분야를 함께 포용해 나갔지요. 학계와 업계가 일체화되어야 비로소 완전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없어요.”
학계와 업계분야의 밀접한 관계위해 힘써온 중매자
학계와 업계분야의 연계성을 중요시 여기는 이종근 박사의 마인드 때문일까. 이 박사는 매번 산업계 인사들이 도맡아 하던 대한요업총협회 회장직을 학자로서는 최초로 맡았다고 한다. 비록 학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오히려 업계에서 더욱 유명했던 이 박사는 세라믹 학계와 업계를 이어주는 중매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내가 세라믹 업계에 심어놓은 학생들만 해도 한참은 될게야. 그때 당시 우리나라 세라믹 주요 공장의 기술자 대부분을 내가 알고 있었지”라고 말씀하시는 이 박사의 눈빛이 빛난다.
최근의 세라믹 분야의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 박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예전에는 세라믹 학계와 업계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는데, 파인세라믹스 분야가 생겨나면서부터 학계와 업계관계가 많이 소원해진 것 같아요. 저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산·학 분야의 친밀한 연계가 바탕이 되어야 세라믹 분야는 발전할 수 있는 거니까요.” 따라서 학계는 업계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실질적인 세라믹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전수해야 한다고 이 박사는 덧붙였다. 산·학 분야의 소원해진 관계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이 박사에게서 세라믹 분야에 대한 진심어린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직접 만든 제품에 애착 느끼듯 순수 국산 기술 갖춘 산업 분야 만들어야 할 것”
국내 순수 기술을 이용해 국산 원료 연구, 개발로 수입 원료를 모두 국산 원료로 대체하는데 큰 공헌을 한 이 박사는 국내 기술 보유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다. “60년대 요업은 순수 국내 기술로 연구해 우리 손으로 직접 제품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세라믹 산업은 중요할 수 밖에 없었지요. 현재는 대부분 외국 기술을 도입하거나 원료를 수입하는 형태로 바뀌었죠. 순수 우리나라의 것으로 만든 제품은 앞으로 점점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전 사업분야를 통틀어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신기술 개발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고 봅니다.”
이 박사는 세라믹 분야의 후학들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의 말을 전했다. “업계와 학계의 연계가 부족한 상황에서 학생들도 업계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하루빨리 학계와 업계가 더 가까워 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순수 기술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순수 국산 산업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 박사는 학계와 업계가 가까울 수록 서로의 어려운 점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말을이었다. “내가 공들여서 발전시킨 것에 애착이 가는 법입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국내 기술력을 적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분야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박사는 자신만의 건강비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열심히 일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히 건강해 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항상 재밌고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임해 보세요.”
윤나리 기자
이종근 박사는 1984년에 대한민국 과학상을 수상했다
한양대학교 정기총회에 참가한 이종근 박사
이종근 박사는 유리부회 심포지엄을 창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 박사 연구실 출신의 석박사 모임 ‘요암회’
1987년 정년퇴임식 고별 강연회를 마치고 찍은 사진
이종근 박사 주요 약력
1942 경성제국대학 예과 이과갑류 수료
1945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 학사
1965 한양대학교 공학박사
1945~1966 상공부 국립공업연구소 공업연구관
1962~1987 공업표준심의회 요업부회 대표위원
1965 대한화학회 간사장
1965~1971 대한요업학회 회장
1966~1980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장
1966~1987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 교수
1968~1982 대한요업총협회 회장
1970~1980 정부시책평가위원(요업부문)
1974~1978 국무총리실 장기자원대책위원
1974~1980 한양대학교 산업과학연구소 소장
1980~1985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장
1985~1996 한국유리공업주식회사 기술고문
1987~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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