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도예과 여대생으로 예능계 수석졸업
하고 싶은 공부에 나이는 무관
올해 그는 54세의 나이로 한양여대 도예과를 졸업했다. 졸업에 앞서 3년 전에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수능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박영숙씨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도자기 공부를 시작하게 된 큰 인연은 사회교육원이었지만, 주부로서 가사를 돌보며 작업하다 보니 어느 선에 이르러서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8년전 단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시작한 도자기는 하면 할수록 알고 싶은 것들 투성이였고, 하나를 알게 되면 열가지가 궁금해졌다. 아름아름을 묻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았고, 자신이 느낀 한계에서 조금이라도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대학에서의 소중한 경험 살려 4년제 대학 편입할 터
대학진학이 도자기공부의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대학 2년의 경험은 성공적이었고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막막했던 유약도 제겔식으로 풀어서 조합할 수 있게 됐고, 물레작업 중심의 생활 소품 뿐 아니라, 조형토를 이용한 조형작업과 캐스팅 작업도 배울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젊은 학생들의 재기 발랄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도 가까이서 보니 자신에게도 자극이 됐다.
“나이 때문에 진학을 망설이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나이 먹어서 하는 공부이다 보니, 순간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고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2년간의 전문대학 과정동안 열심히 공부해 졸업할 때 예능계열에서 수석을 차지했다. 졸업 후 4년제 대학에 편입하려했지만 희망대학의 20대 1의 경쟁률을 뚫지 못해 다음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장식과 용도 갖춘 도자소품들
옥탑방에는 그간의 작업 결과물이 가득
박영숙씨의 거실과 주방 곳곳에서 도자기들이 모습을 뽐낸다. 장식뿐 아니라 조형토로 만든 테이블과 의자 등은 훌륭한 찻자리를 만들어 준다. 조합토를 이용해 테이블과 의자를 만들고 단풍나뭇잎을 조각해 유약을 바르고 닦아내 자연스럽게 산화철이 묻어있는 상태로 완성했다. 거실과 주방을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영숙씨가 만든 여러 작품에는 단풍잎 꽃 등의 자연물이 양각된게 많다. 또 이 집의 정겨운 옥탑방은 그만의 공간으로 꾸며졌다. 작은 온실은 식물들이 아닌 도자기들이 차지하고 있다. 보기 좋게 정리하거나 진열한 것은 아니지만 참 많은 그릇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그동안의 열의에 찬 작업과정을 말해주는 곳으로 스스로는 ‘창고’라고 부르지만 ‘전시실’을 방불케 한다. 꽃무늬를 박지기법으로 시문한 청자접시들과 재유 국그릇들, 갖가지 모양의 연적, 청자 아이스크림컵, 다양한 크기의 분청 다기 등도 만들었다. 옥탑방 한켠에는 다양한 크기의 붓들과 화선지에 쓰인 글씨들이 걸려있다. 박영숙씨는 도자기를 시작하기 전에 14년 동안 집중적으로 서예를 배웠다. “서예 할 때도 그랬고 도자기 하면서도 그렇더라고요. 5년 이상하다보니 한계가 느껴진다고 할까요. 이제 좀 되나보다 싶으면 뭔가 자기만의 것을 찾고 싶어지는데, 공부하지 않고는 찾을 수 없어요.”
막내딸 조언들으며 학교생활
도자기하며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에 감사
박영숙씨는 별 탈 없이 하고 싶은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대학에 재학 중인 막내딸에게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생각에 대해 많은 조언을 들었다. 처음 리포트 과제를 할 때 워드작업도 많이 도와줬다. 덕분에 지금은 혼자서도 워드프로세서도 잘 다룰 수 있게 됐다.
도자기를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교수님들을 만나고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을 작업 못지않은 성과로 여기고 있다. 작업을 하는 사람이든 도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도자기를 매개로 만난 사람들과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고, 세속적이지 않아서 좋다.
유약연구할 수 있는 실험가마 갖춘 아담한 공방 소원
현재 서울 내곡동에 자리한 작은 공방에 박영숙씨를 포함해 취미도예가 3명이 모여서 작업하고 있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전원 속에서 자연과 가까이서 지낼 수 있어 좋다. 물레와 작업공간 뿐 아니라 0.5루베 가스가마도 갖추고 있는 곳에서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지금도 좋지만, 조금 더 욕심을 내 이보다 안락하고 예쁜 공간을 갖고 싶다. 여러 가지 유약도 실험해 볼 수 있게 작은 가마도 놓고 좀 더 여유로운 공간에서 작업하고 싶다. 그런 공간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자기도 빚고 글씨도 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1 한식분위기의 창과 도자기화분이 잘 어울린다
2 옥상 온실에 보관중인 많은 도자기들
3 주전자기형에 조형적인 요소를 더했다
4, 5 주전자와 잔은 짬짬히 만들게되는 아이템이다
6 거실을 운치있게 해주는 도자 티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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