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세라믹스 - 구조세라믹스
유니크하며 불가사의한 세라믹스- 지르코니아(TZP)와의 만남과 사업화
窪田吉孝 Tosoh Ceramics co., Ltd.
1. 첫머리에
토소가 새로운 지르코니아(정방정 지르코니아 소결체)분말의 개발에 착수한지 이미 4반세기를 넘었다. 간신히 사업으로서의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년 전후인데, 그때까지는 몇 번인가 사업포기도 논의되는 괴로운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사업의 형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몇 번의 행운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기술하는 것은 유니크하며 불가사의한 세라믹스와의 만남에서 사업화까지의 역사이다.
당사처럼 세라믹스와 전혀 인연이 없는 기업이 우연히 만난 ‘지금까지 이 세상에 없었던 제품의 씨앗’을 신규사업으로 키운 과정을 돌아보고자 한다. 이 이야기는 얻게 된 씨앗을 큰 나무로 만들기까지의 이야기로서, 큰 발명 이야기와는 약간 다르다.
사업화 이야기뿐 아니라 많은 성공비화에는 노력만이 아닌 우연이 동반하는 ‘뭔가가’ 존재한다. 본고에서 소개하는 지르코니아 사업화 이야기도 내 독단과 편견으로 선정한 그 ‘뭔가’를 테마로 하여 기술하는 것이다. 먼저 그 ‘뭔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것은 ‘만남’이다.
2. 지르코니아와의 만남
당사가 세라믹스 분말의 개발에 착수한 것은 1978년이었다. 당사의 주력제품은 가성소다와 시멘트, 염화비닐, 폴리에틸렌 등의 소재제품이 중심이었다. 그 무렵, 일본의 소재형 산업은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대한 참여를 목적으로 연구개발 테마의 탐색과 조직, 기구의 개혁 등을 모색하고 있었다. 당사에서도 바이오나 전자와 함께 뉴세라믹스를 신규사업 의 핵심으로 설정하고, 기획연구소의 설립과 신규분야의 인재확보 등 적극적인 자원의 투입을 개시했다. 당시는 두 번의 석유파동 후로, 세라믹스 엔진 등의 에너지 관련 기술이 화제가 되어, 질화규소와 탄화규소가 뉴세라믹스로서 주목을 받고 있었다.
화학회사인 토소가 뉴세라믹스를 신규분야의 핵심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① 고순도를 달성하려면 화학 프로세스가 강점을 가진다
② 원료인 염화물이나 암모니아 등의 처리기술을 갖는다
③ 제올라이트와 실리카, 전해 이산화망간 등의 무기분체의 식견을 갖는다
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점을 살릴 타깃으로 이미드법을 이용한 ‘고순도 질화규소분말의 개발이 테마로 설정되어, 연구에 착수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용자는 기술 분야의 다른 요업세계이며, 당사는 그 분야에서는 완전한 초보자였다. 그러므로 최초로 합성한 질화규소 분말은 섬유상이나 육각주의 결정으로, 지금 생각해 보면 엉뚱한 미술품 같은 결정분말이었다.
그런데 세라믹스 분말의 개발과제 가운데 하나로 쉬운 소결성이 있다. 그 무렵의 당사에서는 소결에 관한 기술이 없어 밀도를 올리지 않은 상태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의 연구실장이 大阪공업기술시험소(현재 産總硏 關西 센터)의 上野力 부장에게 세라믹스의 평가기술에 관한 지도를 부탁하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어떤 세라믹스 메이커를 소개받았다. 그 세라믹스 메이커가 大阪府 堺市에 있는 세라믹스의 노포(老鋪), 니카토(당시의 日本化學陶業(주))로, 그때 만난 분이 현재의 河波利夫 회장이었다. 그 만남이 당사의 세라믹스 사업의 운명을 결정한 최초의 ‘만남’이었다.
그 당시, 기술부장을 지내던 회장에게 당사가 개발한 질화규소 분말에 관한 평가를 부탁하여 간신히 승낙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최초의 질화규소 분말에 관한 평가를 실시한 결과,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섬유상이나 자형(自形)을 보이는 결정입자는 전혀 소결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평가결과를 바탕으로 개량, 평가를 진행하던 어느 날, 회장이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묵직한 세라믹스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상아가 아닐까 여겨지는 느낌의 세라믹스였다.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것은 종래의 지르코니아 내화물과 전혀 다른 새로운 지르코니아이며, 이 새로운 지르코니아의 개발을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였다. 이 새로운 지르코니아는 1500℃ 전후의 소결온도에서 99% 이상의 상대밀도를 얻을 수 있고, 투명감이 있는 보석을 연상시키는 소결체였다. 그리고 굴곡강도는 최대 1500MPa 이상을 보여, 산화물 세라믹스에서는 믿을 수 없는 고강도였다. 이때가 당사와 새로운 지르코니아의 첫 번째 만남이었다. 이는 1979년의 일로서 뉴세라믹스 붐의 여명기였다.
그런데, 이 새 지르코니아는 名古屋공업기술시험소(현재 産總硏 中部 센터)에서 지르코니아 분말의 연구를 하고 있던 高木弘義 선생에게 河波회장이 액상합성법에 대한 기술지도를 부탁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발명되었다. 어느 날, 니카토 공장 한 켠에서 지도를 받은 방법 그대로 지르코니아 분말 합성을 실시했는데, 소결된 결과 평소와 다른 투광감(透光感)이 있는 소결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것을 분석한 결과, 안정화 지르코니아를 합성할 예정이었는데, 조작 실수로 안정화제의 양이 반 이하인 3.5mol%밖에 들어가지 않은, t→m 전이로 붕괴 직전의 부분 안정화 지르코니아 소결체였다고 한다. 후에 高木선생의 말씀으로는 1975년에 발표된 Garvie씨의 논문을 읽고, 이 세라믹스가 지금까지 없던 정방정상으로 된 새로운 지르코니아, 즉 정방정 지르코니아 소결체 TZP(이후 지르코니아로 표기)라는 것은 확신했다는 것이다. 그 후, 니카토의 河波회장은 자사에서의 개발, 상품화를 추진했다.
이 지르코니아의 원료분말은 옥시염화지르코늄과 안정화제인 이트리아가 습식법으로 합성되기 때문에 당시 회장은 원료분말의 양산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곤란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당사를 지르코니아로 이끌어 주었다. 이 만남으로 당사의 지르코니아 분말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3. 프라스코로부터의 스케일 업
이렇게 해서 지르코니아 분말의 개발에 착수한 당사는 우선 분말의 합성방법을 高木선생과 니카토로부터 지도받기로 했다.
최초의 합성은 10리터 정도의 작은 프라스코였는데, 실제로 해보니 회장이 양산을 주저한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원료가 소금이기 때문에 제조과정에서 염산이나 가열로 염소의 발생이 있어 부식 때문에 일반 금속재료로는 장치재료로서는 사용이 곤란했다. 또 원료를 중국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로트가 다른 원료는 사용하여 합성한 지르코니아 분말은 전혀 특성이 달라지는 등의 어려움도 있었는데, 간신히 합성방법의 기본은 습득할 수 있었다.
이 만남으로부터 2년 후인 1981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라믹스 메이커 2개사가 세라믹 엔진의 개발착수를 발표하여, 뉴세라믹스의 개발이 다가왔음을 세상에 깊이 각인시켰다.
또 학회에서는 니카토와 일본 내 섬유 메이커가 연이어서 고강도의 지르코니아를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지르코니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 두 회사의 지르코니아의 특성을 비교하면, 이소결성(易燒結性)과 상압소결체의 굴곡 강도 등의 점에서 니카토 제품 쪽이 우수하다고 느꼈다. 또 섬유메이커는 핫프레스법을 이용하기는 했지만 두 회사 모두 1500
MPa 전후라는 당시 세라믹스 실온 굴곡강도로서는 질화규소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치를 발표했다는 것이 인상에 남는다.
이 1980년대 전후의 시기는 지르코니아에 대한 기본적인 특허가 출원된 시기이기도 해서, 일본을 대표하는 세라믹스 메이커도 지르코니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메이커도 분말의 제조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특허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었다.
이렇게 Garvie씨가 카르시아 안정화 지르코니아 속에 정방정 지르코니아가 실온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Nature에 발표한 이후, 일본 내 여러 세라믹 메이커가 남몰래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아는 한은 1977년에 연구를 개시한 니카토에 이어, 2, 3년 후에는 名古屋 지구의 세라믹스 메이커도 개발을 시작했다고 상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의 탑 그룹과 동시에 분말개발을 개시한 것은 원료 메이커로는 당사가 최초였다고 생각한다. 이때 지르코니아와 최초로 만난 이후 두 번째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개발부대는 갑자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지르코니아는 전혀 새로운 것이고, 그 특성이 멋진 것이기 때문에 기대만 크게 거론되고 아직 구체적인 용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르코니아 분말의 사업화를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분말 합성 프로세서를 확립한 후, 사용자의 용도개발을 위해 하루속히 분말을 공급하고 마지막으로 성공한 용도에 보조를 맞춰서 분말공급체제를 조정하는 긴 안목으로 추진해야 했다.
사용자의 용도개발에는 최소한 10㎏정도의 분말이 필요하며, 지도를 받은 제조장치의 2배인 20리터 유리제 프라스코를 이용하여 분말의 시작을 개시했다. 세라믹스 메이커에 분말 샘플을 제공할 수 있게 되자, 곧 사용자의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장의 반응이 좋은 이유는 이소결성과 보통 설비로 간단히 고강도의 지르코니아 소결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림 1).
따라서 서둘러 본격적인 규모 확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업규모의 스케일 확대는 앞서 기술한 장치의 부식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이 단계가 되자 연구실만으로는 대처할 수 없어 사내의 엔지니어링 부문과 설계부문, 또 재료의 선택에 대해서는 식염전해 프로집단인 전해연구부문의 협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1982년에 연 생산 5t의 벤치 플랜트를 건설, 그 이듬해에는 연 생산 60t의 개발 플랜트가 완성되었다.
4. 불가사의한 세라믹스의 사업화
가. 불가사의함과의 만남
개발 플랜트가 완성된 1983년 당시는 일본경제가 실로 경이적인 거품경제로 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세라믹스 분야에서도 선샤인 계획 등의 대형 국가 프로젝트라는 화제와 많은 기업이 전자, 바이오 이외에 파인세라믹스(이후 파인세라믹스로 표기한다) 분야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지르코니아 원료 분말에도 여러 소재 메이커가 참여하게 되었다. 또 많은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지르코니아를 연구테마로 다루었다. 이때, 파인세라믹스 붐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당사는 이미 개발 플랜트를 보유하고 있어 경합 타사보다도 한 걸음 앞서 있었다.
당사는 이 붐의 물결에 편승, 지르코니아 분말의 시장개발을 추진함과 동시에, 아직 학문적으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정방정 지르코니아의 물성연구를 위해 분말을 제공함으로써 대학 등의 연구를 지원했다. 또, 자사에서도 강도와 인성 등의 연구를 진행, 얻어진 연구 성과는 학회나 논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발표했다. 당시, 기업의 연구개발을 대표하는 것은 노하우나 새로운 견해를 경합 메이커에 제시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았으나, 이 활동이 후에 큰 힘이 되어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한 요인이 되었다.
이 문장의 타이틀로 ‘유니크하며 불가사의한 세라믹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당시 당사에서는 아직 이 불가사의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이 지르코니아의 조성이나 소결조건과 그 특성 등의 연구를 진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서히 그 불가사의함을 알게 되었다. 안정화제로 이트리아를 사용한 지르코니아는 마그네시아나 카르시아를 사용한 정방정 지르코니아와 전혀 다르게, 소결체 속의 정방정의 양과 안정성 제어가 용이하다는 특징이 적어도 당사의 지르코니아로는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트리아를 고용(固溶)한 지르코니아는 안정화제의 양을 종래의 1/4 이하인 2몰%의 첨가량으로도 정방정 주체인 지르코니아 소결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방정 지르코니아 입자의 안전성이 지르코니아의 특성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함으로써 ‘유니크하며 불가사의한 세라믹스’를 실감해 가게 되었다.
나. 저온열화의 놀라움
지르코니아의 개발을 시작한 당초는 소결체 밀도의 측정 정도에 관한 평가기술이 없어 강도나 파괴인성 등은 전혀 평가되지 못했다. 따라서 京都공예섬유대학의 西川友三 연구실로부터 기계적 특성의 평가법에 대한 지도를 받게 되었다. 어느 날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정방정 지르코니아는 ‘저온에서 서서히 단결정으로 전이하고 특성이 저하된다’는 정보를 들었다. 이것은 1981년 무렵의 일로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이 현상은 치명적이라고도 생각되는 약점인데 반대로 잘만 극복하면 보다 멋진 경쟁력 있는 재료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상당히 고마운 정보였다. 사내에서도 즉시 확인실험을 실시했다. 이트리아의 농도와 소결온도를 바꾼 소결체를 대기(大氣)중, 250℃로 설정한 전기로 속에 최장 30일까지 방치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지르코니아는 250℃ 전후의 저온에서 시간과 함께 서서히 표면으로부터 단사정(單斜晶)으로 전이가 진행되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이 사실은 1982년의 요업기초토론회에서 발표되어 당시 지르코니아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세라믹스 메이커에 ‘토소’라는 이름을 강하게 인식시켜 줄 수 있었지 않았을까.
그 후, 이 저온열화에 관한 연로논문이 많이 발표됨에 따라 저절로 정방정상(相)의 저온안정화에 대한 전체상이 파악되었다. 이때 이후 지르코니아의 컨셉 가운데 하나로 ‘저온열화의 제어’가 부가되었다.
다. 브랜드의 확립과 용도개발
파인세라믹스 붐의 도래와 함께 지르코니아 분말의 개발 면에서 앞서 나가며 적극적인 학회발표를 해온 당사에 많은 세라믹스 메이커로부터 분말 샘플의 제공의뢰가 들어왔다. 그 사용자의 수와 수량은 거품경제와도 겹쳐서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고강도 지르코니아 분말 시장에서 토소의 존재는 안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최고 강도인 ‘지르코니아 - 알루미나 복합 세라믹스’를 발표함으로써 토소의 존재가 결정적이 되었다. 이 복합 세라믹스는 지르코니아에 20중량%의 알루미나를 더한 것을 HIP 소결체한 것으로, 2400MPa의 굴곡강도를 달성했다(그림 2). 이것은 1985년의 일이었다. 이 뉴스는 ‘세계최강의 세라믹스’라고 하여 전문지 등에서 센세이셔널하게 보도되었다. 당시 의식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적극적으로 여러 가지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이 토소의 지르코니아 브랜드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확실하다. 이 토소 지르코나아의 브랜드는 당사의 지르코니아 사업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힘이 되어 지금도 살아 있다.
이런 행운이 뒷받침되어 지르코니아 분말의 적극적인 용도개발이 용도 측면에서 착실하게 진전되어 갔다. 우선 최초로 용도개발을 위해 도전한 분야는 절삭공구분야, 자동차 엔진부품, 공업용 및 민생용 칼 종류, 분쇄부재 등이었다. 이러한 용도 가운데에는 엔진용으로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으나 니카토가 개발한 YTZ라고 하는 분쇄 볼 등의 분쇄 부재로서는 훌륭한 성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현재는 30㎛에서 25mm까지의 공이 만들어져, 전자·IT와 도료·잉크, 의약·식품 등의 고품질 첨단분야를 중심으로 니카토의 YTZ는 세계 브랜드로 이용되고 있다(그림 3, 그림 4).
한편, 칼 종류로서는 민생용 야채칼과 과도 등이 일찍부터 실용화되어 당시의 파인세라믹스 붐의 영향을 타고 텔레비전에 방송되어 파인세라믹스의 대표가 되었고, 현재에도 홈센터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또 이러한 용도 이외에 기계부품, 정밀측정부품, 고체전해질 쪽에도 일찍부터 응용이 시도되었다. 사용자에 따라서는 필자 등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생체재료로서도 응용이 시도되었다.
이 지르코니아는 기존 시장이 없기 때문에 분말 메이커로서는 사용자의 새로운 시장개발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당사는 학회활동에 의한 적극적인 정보제공을 하고 또한 소결체 제조기술을 도입하여 소결체의 제조부대를 사내에 설치, 직접 시장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사용자로서의 지식축적에 노력했다. 또 그 지식, 정보를 적극적으로 분말의 기능향상을 위해 피드백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그러한 기능들을 독립시킨 토소 세라믹스(주)를 자회사로 설립했다. 설립 전에는 소결체 사업의 참여가 분말사업에 영향을 주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플러스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 대표적인 성과가 조립(造粒)분말이다. 그 당시, 세라믹스 원료분말은 미조립 분말이었다. 당시의 감각으로는 분말의 조립처리는 세라믹스 메이커의 영역으로 조립분말에 대해 사용자가 경원(敬遠)하는 것 아닐까 예상했었다. 그러나 조립분말은 생각 외로 호평이었고, 이왕 조립되어 있는 것이니 프레스용으로 바인더를 넣어 달라는 요구도 있어서 프레스용 바인더 그레이드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바인더 그레이드의 개발은 쉽지 않았다. 당사의 지르코니아 분말은 서브미크론의 미분말이고, 통상의 조립 처방으로는 단단한 과립이 형성되어 프레스로 과립을 눌렀을 때 제대로 부서지지 않아 내부에 결함이 생기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과립이 잘 부서지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자사의 평가가 적확했던 덕에 현재에는 바인더 그레이드로서 대기업 세라믹스 메이커로부터도 인정받을 정도까지 되었다. 이 바인더 그레이드라는 것도 당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상품 컨셉이 아닐까.
라. 광접속부품에 대한 응용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장개발을 하여 대부분의 용도는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당사이지만, 당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용도가 있었다. 그것은 광파이버의 접속부품용 페룰이었다. NTT의 연구소에 분말을 제고한 것은 1985년 이전의 일로서, 그 무렵은 광파이버망을 구축하기 위한 요소기술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커넥터 등의 수동부품에 관한 정보가 적어 이분야로부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기리고 얼마 지난 1980년대 후반, NTT로부터 지르코니아 페룰의 민간기술이전이 이루어지게 되어 원료 메이커인 당사에 NTT로부터 기초 데이터 제공요청이 있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당사의 소결체 제조부대도 페룰의 제조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에 세 번째 행운의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페룰용으로 지르코니아의 수요증가가 기대되었다(그림 5).
당시 이 페룰 분야에서는 여러 가지 재료가 사용·검토되고 있었는데, NTT의 杉田悅治 박사가 중심이 되어 그 표준화가 추진되어, 지르코니아 페룰을 사용한 광 커넥터가 세계표준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해외의 일부 사용자로부터 저온열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따라서 NTT는 여러 가지 지르코니아 분말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당사의 지르코니아 분말 TZ-3YE가 내저온열화특성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이 확임됨에 따라서 저온열화의 우려도 불식되어 현재 세계의 거의 전부가 지르코니아 페룰이 되어 있다.
이 무렵이 되자, 시장에서는 그밖에도 몇몇 용도가 실용화되어 분말시장이 서서히 살아나 연 생산 60t의 개발 플랜트 건설로부터 5년째인 1988년, 새로운 정밀입자 제어기술 등을 도입한 연 생산 200t의 상업 플랜트가 건설되었다.
당시는 거품경제 전성기로 당사도 지르코니아 플랜트 이외에 질화규소 분말 개발 플랜트도 보유하여 상당한 비용부담이 발생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0년 초에 일어난 거품의 붕괴로 세라믹스 사업도 존망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때, 질화규소분말 개발을 중지하고 사업목표를 지르코니아 하나로만 특화했다. 그 후, 거품의 붕괴로 사용자의 용도개발은 일시적으로는 정체했지만 서서히 용도개발이 시용화되었고, 시장은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995년경이 되자 광커넥터 시장도 활성화되기 시작해 당시의 지르코니아 분말에 있어 페룰은 중요한 용도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후, 연 생산 300t, 700t으로 능력을 확대하여 2001년에는 연 생산 1300t까지 순조롭게 생산능력의 확대가 이루어져 페룰은 지르코니아의 최대 용도가 되었다. 그 해에 IT 거품이 붕괴해 분말수요는 일시적으로 격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임프라를 떠받치는 광통신의 핵심 부분으로써 지르코니아 페룰의 수요는 강하여 현재는 분쇄 볼, 여러 가지 구조재 용도에 이은 코어 용도로서 지르코니아 페룰은 회복되었다.
또 유니크하며 불가사의한 세라믹스인 지르코니아는 지금도 역시 계속해서 새 용도가 개발되고 있다.
5. 맺으며
이상 기술한 것처럼 당사의 지르코니아 사업은 과거에 행운의 ‘만남’을 제공해 주신 니카토와 당사의 공업기술시험소의 여러분, 또 많은 대학 등의 선생님, 기업, 그리고 사용자 여러분의 덕분에 성장했으며 결코 혼자 힘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이 점은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토소는 기술한 바와 같이 ‘TZP’부날 세계의 파이오니어로써 앞으로도 진화할 ‘지르코니아’를 찾아서 더욱더 연구개발과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10년 후에는 본고의 속편이 게재되리라 생각하며 기술을 마치고자 한다. (Ceramics Japan)
그림 1. 고강도 지르코니아 분말의 합성 프로세스
그림 2. 세계 최고강도의 지르코니아
- 알루미나 복합 소결체의 강도 특성
그림 3. 고강도 지르코니아 분쇄 볼(YTZ)
그림 4. 이트리아 첨가 정방정 지르코니아 소결체의 용도개발 예
그림 5. 광 커넥터용 지르코니아 페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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